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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허들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해결중심 부부-가족치료 이야기 2019. 12. 19.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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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아내 분만 따로 뵐게요.”


    나름 전문가인 나조차도 해결중심모델을 적용하다 보면, 가끔씩 “내가 너무 긍정적인 부분만 들여다 보고 있나?” 혹은 “내가 너무 표면에서만 깔짝대고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A씨는 남편 B씨와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 부부상담을 신청했지만, 어느 정도 관계가 좋아진 다음에는 오히려 관계가 좋아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주저했다. 나는 경험적으로, 바로 이런 시점이야말로 해결중심 테크닉을 잠시 내려 놓고 다른 시도를 해 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부상담 전이었지만 따로 개별 면담시간을 청했다. 그리고 “툭, 터놓고” 물어 보았다. 약간 망설이던 A씨, 말씀하시길: “음... 사실, 제가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던 시간 동안 제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남편을 끝없이 미워하고 증오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때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아요. 신뢰를 완전히 잃어 버렸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요즘 남편이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내가 그때처럼 남편을 사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그렇다고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 머무르고 싶지도 않지만요. 아... 정말 잘 모르겠어요.”


    역시 나름대로 “복잡한(?)” 정서적 이슈가 숨어 있었다. 내가 해결중심으로 상담을 끌고 가다가 다른 방식, 특히 정서적으로 접근해야 할 시기를 제대로 포착한 셈이다.


    남편 말도 들어 보았다: “솔직히, 요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노력해야 하나, 싶기도 해요. OO이를 낳고 나서 그 2년 동안 정말 힘들었다는 사실 잘 알고 있지만, 그리고 그렇게까지 힘들 동안 제가 많이 잘못 행동했구나, 깨닫기도 하지만, 언제까지 사과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역시, 남편 쪽에서도 “할 말”이 있었다. 일종의 “억울함”이다. 아내의 “원통함”만큼이나 이해할 만 하다. 일리가 있다.


    나는 두 사람에게 각각 이렇게 말했다.


    (1) 부인에게: “변화란 누구에게나 어려운 겁니다. 지금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A씨께서 정말 깊이 힘겨워 하셨기 때문이에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우리는 그 마음을 외면해선 안됩니다. 몹시 외롭고, 그래서 화가 났던 마음을 충분히 인정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도 됩니다. 다만, 그 마음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에요. 전처럼 남편에게 욕을 하시면 그건 폭력이에요. 화가 난 내 마음은 알아주고 충분히 안아 주되,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대화로 풀어 나가셔야죠. 절대로 욕은 안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 아직 적절한 시기가 안되었을 뿐이지, 남편을 여전히 사랑하고 아끼시잖아요? 그러니까 여기 계속 오시는 거 아닌가요? 저를 만나러 오시는 이유가 그거 아닌가요? 부인을 못하시는 걸 보니, 맞네요. 그렇다면 조금 더 지켜 보십시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남편을 바라 보십시다.”


    (2) 남편에게: “표면적으로는 부인께서 키를 쥐고 계신 것 같지만, 사실은 선생님께서 키를 쥐고 계셔요. 두 분의 관계가 회복되어서 신혼 때처럼은 아니어도 애정과 활력이 흐르는 강물이 되느냐, 고인 물이 되어서 냄새를 풍기며 썩어 가느냐, 둘 중의 하나입니다. 두 분이 선택의 기로에 서 계신 거에요. 제가 세 가지를 제언 드리고 싶어요.

    첫째, 아내 분께 정식으로, 진정성 있게 사과하는 세레모니가 필요할 것 같아요. 어디 근사한 곳에 가서 고기를 썰고 와인을 마시면서 말씀하시든, 그렇지 않으면 진솔한 손 편지 한 장 쓰시고 작지만 정성스러운 선물과 함께 전하시든, 아무튼 그냥 지나가는 말로 “미안타” 마시고 정식으로 그 2년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거죠. 구체적인 방법은 본인께서 정하셔요.

    둘째, 오해하지 마세요. 공식적인 사과 세레모니를 한다고 그게 끝이 아니에요. 언제까지 사과를 해야 하냐구요? 끝없이요. 영원토록요. 아, 실제로 영원히, 는 아니에요. 제 말씀은, 지금처럼 “아 언제까지 사과를 해야 하는 건데” 라고 생각하시면 아마 영원히 하셔야 할 거에요. 하지만 아예 영원히, 라고 생각하시잖아요? 그러면, 역설적으로 그 시간이 최대한으로 짧아질 겁니다.

    셋째, 이걸 “사과”라는 말 대신 “책임”이라는 말로 바꾸어 보셔요. 남편께선 의도적으로 부인을 괴롭히려고 그러셨던 건 아니잖아요. 뭘 잘 몰라서 그러신 거잖아요. 그러니 너무 지나치게 코너에 몰리실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벌어진 상황, 결과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건 나에게 나쁜 의도가 없었어도 할 수 있는 행위죠. 지금 노력하시는 것은 그냥 인간대 인간으로 아내 분께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시는 거에요. (내담자,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하신 것 같으니 여기까지만 말씀 드릴게요.”


    해결중심모델은 그 자체로 표면에서만 깔짝대는(?) 모델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적용하면서 정서적인 벽에 부딪히고 명백한 악순환을 경험한다면 이는 그야말로 표면에서 깔짝대고 있다는, 매우 강력한 신호가 된다. 그럴 때는, 이 멋진(!) 모델을 잠시 내려 놓고 문밖으로 나가서 통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다. 무슨 특별하고 대단한 모델을 몰라도 괜찮다. 마음을 열고 사람의 감정을 이해해 주는 거다.


    다행히, 이 부부에게는 내 방식이 통한 것 같다. 이제, 두 사람은 마지막 허들을 넘고 있는 셈이다. 결승점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힘차게 피니시 라인까지 달려가는 두 사람의 뒷 모습에 응원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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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명록 링크(아직도 안 적으셨다면? 클릭!)

    https://empowering.tistory.com/guestbook 

     

    연락처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

       _ 휴대전화: 010-8773-3989

       _ 이메일: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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