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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의 기독교 영화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0. 4. 1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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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내가 19살이었던 해였고, 

    처음으로 강렬한 종교적 경험을 하게 된 해였다.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UBF(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라고 불리는, 

    겉으로는 "초교파적"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극도로 보수적인 개신교 신앙을 따르는 

    선교단체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해 가을, 하늘이 유난히 높아 보였던 날. 

    프랑스어과에 다니는 94학번 동기 여학생 L이 

    모임의 단상에 올랐다. 

     

    "어? 쟤가 저기에 왜?"

     

    다음 순간, 깜짝 놀랐다. 

    모임에서 차세대 리더로 여기고 (모임에서 키우고) 있던 

    영어과 93학번 J형과 연애를 하다가 들켰다고 했다. 

    전도유명한 형제를 꼬셔내는 죄악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보수적인 선교단체일수록, 연애를 금지했다.) 

     

    그녀는 아주 유쾌한 친구였다. 

    마구 까부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촌철살인의 유머를 날려서 

    좌중을 폭소 분위기로 만들어 버리는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예쁘기도 했다.) 

     

    뭔가 좀 이상했다. 

     

    두 사람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J형이 꼬시면 꼬셨지, 

    L이 먼저 대쉬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름대로 여기 저기(?) 알아보니, 

    내 직감이 맞았다. 

     

    사실은, J형이 L을 엄청나게 좇아다녔고, 

    비밀스러운 애정공세(?)를 못이겨낸 착한 L이가 

    마침내 소박한 마음을 허락한 것이었다. 

     

    그런데! 

     

    참말로, 참말로 우스꽝스럽게도, 

    일종의 피해자인 L이 단상에 올라서 

    자기가 하지도 않은 잘못(!)에 대해서

    평펑 울면서 고백하고 있었던 거다. 

     

    차세대 리더인 J형이 아쉬웠던 모임에서 

    희생양으로 L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그래, L이 자기 비판을 하던 그 순간에

    J형은 고개를 숙이고 창피함을 견뎌야 했기에. 

     

    =====

     

    그 시절이 어떤 시절이었나? 

    19살부터 많아 봤자 25살 미만에 불과한, 

    요즘 내 입장에서 보면 그냥 애기들, 같은? 

    문자 그대로, 인생의 절정기, "한창 때" 아니었던가? 

     

    삶의 에너지가 극에 달했을 시점이고, 

    삶의 에너지 중에서도 이성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건강하면서도, 심지어 좋은 것인데, 

    온갖 성구를 들먹이면서, 억지로, 

    틀어 막아 놓았다는 것, 그 자체가 이상한 거 아닌가? 

     

    자고로, 인간적인 욕망을 마음껏 누리라고

    적극적으로 격려하거나 조장하는 종교는 없다. 

    대부분은 절제를 미덕으로 여기면서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대개 욕망에 대한 관념은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 두려움 때문에. 

    종교적인 경건함을 유지하면서도

    건강한 욕망을 긍정할 수 있을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이것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

     

    소위 기독교 영화, 라고 부르는 영화는

    대개는 유치하거나 따분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영화는 예술이고 예술은 자유가 본질인데,

    일단 종교가 끼어 있으면

    여러 모로 자유롭지가 않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렇게도 쉽게 

    금지, 금지, 금지, 하는 것이다. 

    한창 나이의 젊은이들에게 

    금욕을 강요하는 

    보수적인 개신교 선교단체처럼.

     

    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기독교 영화가 있다. 

    보통 말하는 '그 재미'는 아니다. 

    신나게 웃기거나 가벼운 영화는 아니지만, 

    진중한 재미가 있는 기독교 영화가 있다. 

     

    그냥 이렇게 소개할란다. 

     

    바베트의 만찬(Babettes gæstebud: 1987, 덴마크)  

     

    최고의 음식 영화이자, 
    최고의 기독교 영화. 

     

    주제: “이 예술가는 어떻게 경건한 마을 사람들을 음식으로 화합시켰는가?” 

     

    마지막 만찬 씬은 정말로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현란한 카메라 워크나 신들린 연기 없이,

    오로지 소박하고 진솔한 연기와 연출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를 주는 영화. 

     

    돈을 덕지덕지 쳐 발랐지만 결국은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싸구려 영화에 지쳤을 때,

    무슨 신비한 비법처럼 꺼내서 “눈으로 먹는,”

    알싸한 보약 같은 영화.

     

    종교적으로 경건하면서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최고의 기독교 영화, 

     

    아니 그냥 최고의 영화. 

     

    바베트의 만찬(Babettes gæstebud: 1987,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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