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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 제 직감이 잘 맞는 거 같아요."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0. 4. 23.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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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요즘) 제 직감이 잘 맞는 거 같아요."

     

    나는 지난 5년 동안 격주로 개인 상담을 받아왔다. (정말 긴 시간이다.) 정신역동모델을 사용하시는 내 개인 상담 선생님이 나에게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넘게 하신 질문이 있다: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세요?" 

     

    처음에는 아무런 답변을 못했다. 당시에 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 마음 속에 떠오른 이미지: "추운 겨울날, 꽁꽁 얼어 붙은 호수 위에 서 있다. 내 발 밑에는 두께가 1m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육중한 얼음벽이 누워 있다. 그 밑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물. 어느 순간, 내 얼굴을 매달고 있는 시체 한 구가 떠내려 온다. 나와 너무 얼굴이 비슷해서 깜짝 놀란다. 갑자기 그가 눈을 뜬다. 나, 나였다. 순간 나는 호수 속에 들어가 있다. 얼음벽 너머에서 나를 들여다 보는 내가 보인다. 살려 달라고,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외친다. 물 속이라서 소리는 안 들리고 내 목 너머로 물만 들이킨다. 그렇게 살려 달라고 외치면서 흘러 내려간다. 

     

    나: "음...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H 선생님: "아뇨, 그건 생각이고요. 재원씨 감정을 말씀해 주세요."

     

    나: "..."

     

    감정을 물어 보셨는데, 나는 생각을 말했다. 그래서 감정을 말한다고 말했는데, 역시 생각이란다. 또 다시 감정을 말했는데, 또 생각을 말한 것 같다고 하신다. 이런 식으로 선생님에게 끝없이 "지금 어떤 감정이 드세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답변을 제대로 못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나: "선생님, (요즘) 제 직감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신기해요."

     

    H 선생님: "그게 뭐가 신기해요? 여기 오실 때마다 우리가 한 게 그건데?"

     

    나: "아! 그, 그렇죠? 여기 와서 한 게 그게 다죠? 아... 내가 그래서 직감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구나!"

     

    H 선생님: "그럼요. 몇 년 동안 우리가 만나면서 연습하고 훈련한 게 감정을 인식하고 알아주는 거였잖아요."

     

    나는 늘 "막내 같다"는 말을 들으면서 살았다. 기본적으로 눈치가 심각하게 없고, 타인에게 관심도 없고, 그런데 또 내 마음은 불안했고, 그래서 내 마음 속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불안을 잠재우느라 바빴고, 그러니 더욱 눈치가 없었고, 분위기 파악이 안되고, 결국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쳤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이 좋다. 호기심이 들고 더 친해지고 싶다. 나이나 성별이나 기타 등등 사람들 사이에 놓여 있는 벽을 뛰어 넘어서 친구가 되고 싶고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다. (물론, 기본적으로, 아무나 친구 삼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니, 사람들의 표정이 보인다. (싹 다 맞출 수는 없지만)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감정을 종종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인생 최초로, 내가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내 판단을 믿을 수 없으니(예컨대 연애와 관련해서) 불안하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그래서 실수하고(조언해 준 사람 잘못은 전혀 아니다!) 후회했다. 그런데 요즘엔 내가 내 직감을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미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직감이나 눈치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내 감정에 대해서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내 감정을 내가 정확하게 인식하고, 상대방의 감정과 태도도 인식하고,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되, 내 감정에 충실하고 내 감정에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인간에게 두려움의 결과는 관계의 단절이다. 자고로, 두려운 사람이 피하는 법이다. 

     

    어쨌든, 늘 성숙하고 싶었던 나는, 지난 5년 동안 한편으로는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생각이 드는 좀비 생활을 통해서,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나에게 의미 있는 교훈을 준 인생 수업을 받는 동안, 드디어 조금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분명히 성장했다. 내 직감을 믿어도 되는 멋진 어른이 되었다. 

     

    나는 나를 극복했다. 

     

    =====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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