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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의 방: 죄책감에 관한 보고서
    지식 공유하기(기타)/시네마 떼라피: 위안을 주는 영화 2020. 4. 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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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숙한' 죄책감이란? 

     

    하나.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진심으로 미안해 하는 것. 

    둘.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

     

    아들의 방(La Stanza Del Figlio, 2001)

    이재원(2019년 4월 12일 씀)

    남편을 잃고 슬픔 속에서 세상을 등지고 싶어하는 어느 할머니를 만나고 있다는 동료 상담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어떤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2001년 깐느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아들의 방."

    68혁명 세대인 난니 모레티는 로베르토 베니니(인생은 아름다워)와 더불어 현대 이탈리아 영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감독입니다. 현대사회를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영화를 만들던 모레티는, 2001년 갑작스러운 가족의 죽음 때문에 삶이 무너져내리는 어느 가족을 그린 영화로 돌아옵니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 어느 해안가 마을에서 정신과 상담을 하는 조반니. 그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아름답고 현명한 아내와 내성적이지만 착하디 착한 아들 안드레, 농구에 열심인 딸 이레네와 단란하고 평범한 삶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상담 일정 변경 때문에 아들과 조깅을 가기로 한 약속을 미루는 조반니. 그런데 바로 그날, 아들은 친구들과 스쿠버 다이빙에 가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파도에 휩쓸려 익사한 것입니다.

    더 이상 평화롭고 안정적일 수 없었던 가족의 일상.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제대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조반니는 죄책감을 느끼죠. 심각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그날 내가 그냥 집에 있었더라면... 약속한 대로 아들과 조깅을 갔더라면..." 아내 파올라는 아들이 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의 편지에 집착합니다. 이레네는 학교에서 농구 경기를 하다가 갑자기 터져 나온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급기야 내담자에게 집중해야 할 상담시간에 아들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조반니. 더 이상 상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일을 그만 둡니다. 파올라와 이레네도 점점 더 힘든 나날을 보냅니다.

    이 가족에게 안드레의 죽음은 지나간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평온하게 이어지는 일상 속에 숨겨져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폭풍처럼 삶을 흔들고 사라지는 현재진행형의 그 무엇입니다. 조반니는 상담 중에 아들이 생각나 울움을 터뜨리고, 이레네는 옷을 고르다가 갑자기 떠오른 오빠의 죽음 때문에 눈물을 쏟습니다.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의 슬픔을 표현하지만, 소통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각자 자신의 감정을 차마 말하지 못하고 그냥 삭히거나 회피합니다. 감당할 수 없이 거대한 슬픔에 압도되어 솔직한 감정 앞에 제대로 마주서지 못합니다. 각자 자신의 방에 갇힙니다.

    그러던 중 불쑥 나타난 아들의 옛 여자친구, 아리안나.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함께 프랑스로 무전여행 중이라는 그녀를, 가족은 품어줍니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아들의 방처럼 여전히 그를 기억하게 해주는 일종의 끈입니다.

    밤새도록 운전해서 프랑스 국경까지 두 사람을 배웅해 준 세 식구. 아리안나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너무나도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지독한 상실감도, 아들의 죽음 이전에 보였던 충만함도 아닌, 평범한 모습입니다. 다만 안드레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이제 세 사람은 아들과 오빠가 없는 삶을 살아가겠지요.

    아들과 오빠가 없는 삶을 살아가겠지요.

    아들이 죽는다. 슬픔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가족은 일상 속에서 무시로 느끼는 누군가의 부재를 목도하면서 서서히 무너져간다. 그러나 아들이 없는 삶은 계속되고, 이 삶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매우 단순하고 평범한 영화입니다. 기교가 "전혀" 없습니다. 그 흔한 클로즈업도 없습니다. 관객을 울리는 영화가 전혀 아닙니다. 조반니로 출연한 난니 모레티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 속 가족이 느끼는 상실감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기를 바랍니다.

    음악이 좋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오리지널 연주곡도 탁월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주제곡이 특히 좋습니다. 슬픔도, 상실감도, 두려움도, 고통도 조용히 품어주는 듯한 노래가 나옵니다.

    한 번 들어 보시죠.

     

    https://vo.la/Hv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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