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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아이를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0. 4. 25. 07:11728x90반응형
"자, 이 아이를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약 5년 전 개인 상담을 시작한 후, 3년 동안은 매주(혹은 격주마다) 한 번씩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서 회기 내내 부모님 욕만 했다. 문자 그대로 3년 내내 욕을 했다. 온갖 상스러운 욕이란 욕은 다 동원해서 비난을 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끝없이 배설했다. 어떻게 그렇게 매번 욕을 하는데도 하고 싶은 욕이 계속 떠오르던지. 슬퍼하면서 욕을 하고 신나서 욕을 하고 우울해 하면서 욕을 하고 어쨌든 욕을 했다.
내 개인 상담 선생님은 그렇게 3년 동안이나 매 주마다 나의 욕잔치를 참고 진지하게 들어 주셨다. 왜? 그 욕이 끝나야 내 진짜 이야기가 시작될 것을 아셨나부다. 실제로 욕이 잦아들 때쯤, 그 욕 뒤에 숨겨진 내가 발견되었다: 온 몸을 바늘로 찔린 아이. 아프지만 말하지 못하는 아이.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그래도 살아서 숨만 겨우 붙어 있는 아이. 너무나 안쓰러운 아이.
내 어머니는 외조부모에게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받으면서 성장하신 분이다. (그런데도 결정적으로 영혼이 망가지지 않고 기본적으로 선하신 것을 보면 인간은 역시 위대하다.) 특히, 사용하시는 언어가 좀 센 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내가 서울로 전학을 왔을 때, 바뀐 환경에 적응을 못해서 너무 불안해서 온갖 틱 행동을 했을 때, 어머니께선, "발목을 콱 조져버릴까부다!" 라며 겁을 주셨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원래 부모에 대한 미움은 판타지이다. 불완전한 부모에게 사랑을 투사하는 아이가 그 기대와 다른 현실을 맞닥뜨릴 때 마음에 생기는 상처가 미움으로 발전한다. 아이는 어릴수록 부모에게 의지해서 살아야 하니 기대와 다른 현실에 부딪혀도 별다른 대안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상처를 받는 수 밖에. 그런데 막다른 골목이다보니 그 상처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실제보다 뻥튀기를 한다.
그러니 내가 어머니의 센 언어 생활 덕분에(?) 받은 온갖 상처는 일종의 판타지였다. 그래, 우리 어머니는 말만 좀 세게 하시지, 근본적으로 나쁜 분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무서웠다. 아니, 전학 와서 불안해 하는 아이가 보이는 불안 행동(발목을 떠는)을 보고 "발목을 조져버리겠다"는 말을 하시다니... 내 처지에서는 코너에 몰렸는데 아주 숨통을 끊어버리겠다, 는 위협을 받는 것 같았다.
그러니 내가 비싼 돈 주고 3년 씩이나 유료 상담에 다니면서 내내 부모님 욕, 특히 어머니의 폭력적인 언어 생활에 대해서 욕을 할 수밖에. 어머니 혀야말로 찢어발기고 싶었다는 말을 할 수밖에. (으... 그 어린 아이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크면 이런 말을 다 하겠는가! / 어머니 죄송해요. 그냥 제 마음이 그랬다고요.) 숨겨 왔던 내 안의 나는, 7살의 나, 언어 폭력에 속절없이 당하던 나, 였던 것이다.
온몸이 피투성이인데, 생명을 좌우하는 한 번의 결정적 공격을 받은 게 아니라... 자잘한 언어 폭력이 마치 바늘처럼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온 몸에 꽂혀서 피가 난 모양이었다: "긴 칼이나 무지막지하게 큰 망치로 한 방을 맞아도 사람은 죽지만, 바늘로 수천 곳을 찔러도 충분히 죽을 수 있다. 오히려 바늘이 더 잔인한 방법일 수도 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죽어가는 자신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꺼낸 나. 온 몸에 바늘을 찔린 피투성이 7살 아이. 하지만 제대로 아프다고 표현도 못하는 아이. (아... 이 대목에서 심리적으로 내가 어째서 해결중심모델/이야기치료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지가 설명된다. 해결중심모델/이야기치료는 한 마디로, "단 한 번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클라이언트의 손에 마이크를 쥐어주는 모델"이다. 마이크를 손에 쥐고 입술을 뗄 때 얼마나 해방감이 클꼬!)
상담 선생님: "자, 이 아이를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나: "모, 모르겠어요..."
상담 선생님: "피투성이로 겨우 서 있는 이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줄 수 있을까요?"
나: "모, 모르겠어요..."
상담 선생님: "일단, 안아 줘야지! 어디 아픈데 없냐고 물어 봐야지."
나: "모, 모르겠어요..."
만약, 나와 상관없는 아이였다고 생각했다면 당장 그렇게 했을 거다. 말이 필요 없다. 그런데 나는 나를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나약한 아이를 수용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지만) 강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기 때문이다: 명백하게 어머니의 유산이다. 정서적으로 학대받은 아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강한 나를 추구한다.
모든 것이 분명해진 이후부터, 선생님은 나에게 질문하셨다: "재원씨, 지금 어떤 감정이 느껴지세요?" 며칠 전에 쓴 것처럼, 이 질문을 수십, 수백, 수천 번은 넘게 들었다. 생각 말고, 의견 말고, 내 솔직한 감정이 무엇인지 물어보셨다. 그래도 된다고, 느껴도 된다고, 감정에는 죄가 없다고, 막지 말라고, 수천 번도 넘게 격려를 받았다. 그런데도 답을 못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후 3년을 답을 못했다.
자, 내가 이런 상태였으니, 겨우 숨만 쉬는 정서적 상태였으니,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생길 리가 없었다. 내가 정말로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놈이여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당장 돌아가시게 생겨서(즉, 여유가 없어서) 타인에게 관심을 나누어 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나의 결혼 생활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끝내는 처절한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넌 너무 이기적이야!" 이 말을 듣고 너무나 억울했지만, 도저히 부인은 하지 못하겠더군.
그러므로 나에게는 이혼이 그냥 어떤 사람과 헤어진 사건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오는 과정에서 걸려 있었던 온갖 모순과, 억눌린 감정과, 그러나 누군가 짠, 하고 나타나서 나를 구원해 줄 지도 모른다는 판타지와, 온 세상에 그와 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깊은 정서적 교감을 느꼈던 기억과, 어느날 갑자기 모든 현실이 철저한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는 충격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열쇠는 이미 내 손 안에 있었다. 피흘리는 아이를 어떻게 하고 싶냐고? 안아줘야지. 보호해 줘야지. 어떻게? 과거의 나를 내가 물리적으로 안아줄 순 없다. 내 마음 속 나는 기억에 불과하다. 실체가 없다. 그렇다면 그 감정을 알아줘야 한다. 이건 거창한 작업이 아니다. 행동에 대한 판단 말고, 느껴진 감정을 있는 그대로 포착한 후, 스스로 인정해 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 나를 안아주는 행위다.
공감이란, 그를 위해서, 라기보다는 그와 함께 느끼는 것, 이라고 했다. 함부로 조언하거나 격려하거나 긍정적인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조용히 안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제 내가 나를 공감한다는 것은, 내 감정을 다만 조용히 안아주는 것인데, 그 실질적 내용은, "느껴지는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런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조건없이 수용하는 것"이 된다.
"재원씨,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계세요?"
"억울함이요. 당황스러움도 약간 있네요. 그리고 화도 나요. 왜냐하면..."
이 단순한 질문과 답변이 바로 내가 나를 안아주는 행위가 된다. 그 마음을 알아줄 때,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안아줄 때,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 줄 때, 나는 나를 안아주는 것이고, 내 감정을 수용하는 것이며, 어른이 된 내가 아이였던 나와 비로소 정서적으로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다. 온몸에 꽂혀 있던 바늘을 하나씩 빼서 찔려 있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나는 나를 넘어섰다.
2020년 4월 25일 이재원 기록.'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 > Personal Stor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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