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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타 500과 나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0. 5. 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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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타 500과 나

    토요일 새벽 6시, 동이 트고 있는 시간에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실었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이, 어젯밤에 굉장히 늦게 집에 갔는데 오늘 아침, 아니 새벽에 일정이 있어서 몸이 천근만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현경 누님을 포함하여 선하고 열정적인 동료들을 만날 생각에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가산디지털단지 역 부근에 위치한 휴먼 임팩 사무실 문을 살포시 열고 들어가니, 역시나 우디, 천우석 팀장이 불꺼진 사무실 한 켠에서 몸을 돌돌 만 채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에고... 밤 샌다더니 진짜 밤을 샜군. 안쓰러워라." 잘못하면 깰 것 같아서 까치발로 서서 도둑처럼 스튜디오에 들어간다.

    6시 30분에 컴퓨터를 켜고 정현경 누님이 열정적인 후배들과 함께 하고 계신 연대북스 온라인 모임에 참석했다. 오늘은 내가 게스트 강사로 초청을 받아서, "공감(empathy)"에 대해서 짧은 특강을 하기로 한 날. 향학열로 밝게 빛나는 동료 사회복지사들에게 내가 준비한 자료를 발표했다.

    발표가 끝나고 사무실로 나오니, 이미 우디는 또 다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뭔 일이 그리도 많누.) 순간, 생각했다. 나는 말이 많은 사람. 우디 옆에 앉으면 또 이런 저런 이유로 말을 붙일 거고, 배려심 쩌는 우디는 또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줄 거야. 그래서 좀 떨어진 곳에 앉았다. 그를 방해하기 싫다.

    "재원 샘, 왜 그곳에 앉으세요?" 역시 예민한 우디가 나에게 질문을 한다. "아... 옆에 앉으면 내가 자기한테 또 질문할 것 같아요. 방해하기 싫어요." 이 말을 남기고 잠시 화장실에 갔다...가 왔더니. 우디가 또 뭘 하고 있다: 사무실 불을 켜고, 모니터를 연결해 주고, 컴퓨터 선을 정리해 주고 있다.

    그리고는 비타 500 한 병을 건넨다.

    그 순간 나는, 스페인 생각이 또 났다. 홍안의 젊은 러시아 친구, 드리트리. 팜쁠로냐에서 만났을 거다. 깨끗한 독일 알베르게(저렴한 순례자 숙소)에 묵었을 때, 저녁을 먹고 난 후 수다를 떠는 장면에서 내 건너편에 드리트리가 앉아 있었다. 아, 쟤는 러시아에서 왔나봐, 라고 생각하고는 말았다.

    그 다음에 아침에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서려는데, 안드레아 아줌마가 "Lee" 라고 내 이름을 부른다. "네? 왜 그러세요?" "이거 가져가." 안드레아 아줌마가 내게 건넨 것은 지팡이였다. "이게 뭔데요?" "아, 너, 드미트리 알지? 러시아에서 온 젊은 청년. 걔가 오늘 새벽에 러시아로 돌아가면서 주고 갔어."

    "이걸 저에게 왜 준 거래요?" 나는 드리트리를 잘 몰랐다. 러시아에서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글쎄... 길을 걷다가 언젠가는 만난 순간이 있었던 것 같긴 하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아무런 친분도 없는 나에게 지팡이를 남기고 갔다니.

    안드레아 아줌마가 말한다. "드리트리가 너를 며칠 동안 관찰했나봐. 너에게 지팡이가 없다는 걸 발견하고 너에게 주고 갔어." "아, 정말요? 고맙네요!" "응, 그런데... 이 말도 하더라. 너에게 지팡이가 필요 없다면, 굳이 가져가지 않아도 된대. 대신, 이 지팡이가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하더라."

    내가 드리트리에 대해서 알고 있던 정보는, 그가 러시아에서 왔다는 사실과 20살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나는 드미트리의 배려심 쩌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작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얘는 이런 배려심을 어디에서 배웠을까? 겨우 20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배려심을 보이는 거지?"

    나와 너무 비교가 되었다. 어리석고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결국 끔찍한 일을 경험한 나. 마치 못난 내 모습을 부드럽게 꾸짖기라도 하듯이 드미트리는 뛰어난 공감 능력과 정중한 배려심을 보여 주었다. 스페인에 와서도 내 입, 내 몸, 내 이야기에만 집중하고 있던 내 모습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비쳐 주었다. 

    아까 우디가 준 비타 500 한 병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우디는 내 곁에 있는 또 다른 드리트리다. 나보다 열 다섯 살은 더 어린데도 배려심으로 따지면 나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은 친구다. (그래서 그의 행동을 보면서 종종 좌절감을 느끼곤 한다.) 이 친구는 어떻게 저런 배려심을 갖게 되었을꼬. 어떻게 자라면 이렇게 타인을 배려할 수 있지?

    배려심은, 의미 있는 관찰에서 나온다. 의미 있는 관찰은, 세심한 인식에서 나온다. 세심한 인식은, 반성적인 사고에서 나온다. 반성적인 사고는, 공감 능력에서 나온다. 결국 배려심이란 역지사지 능력, 즉 공감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배려심은 공감적 이해다.

    오늘 새벽 강의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감 능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 가장 좋은 방법은 고통에 대한 반성입니다. 우리가 모든 고통을 다 경험해 볼 순 없지만, 자기가 경험한 고통을 피하지 않고 진지하게 돌아봄으로써 우리는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비타 500 한 병 정도 받아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누구나 베푸는 것은 아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반성이다. 되돌아 보기의 힘이다. 내가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남에게 줄 수 있는 힘은 이성의 힘이다. 배려심이 실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스페인에서 돌아오면서 결심한 게 있다: "드미트리 반 만이라도 닮아가자, 배려심 쩌는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흉내라도 내는 사람이 되자. 그냥 이렇게 살아 왔으니, 계속 그렇게 살다가 죽자, 가 아니라,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자. 그렇게 살아보자."

    나는 이기적인 행동을 할 때가 여전히 무척 많다. 하지만 적어도 드미트리의 배려심을 잊지는 않고 있다. 사전에 충분히 배려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사후에라도 신경을 쓰려고 노력한다. 내가 놓쳐 버린 지점이 있는지 돌아보려고 노력한다. 부족하지만 계속 나아가고 있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부끄럽다.

     

    (*사진 속 인물: 휴먼 임팩트 협동조합의 에이스, 우디 천우석 팀장님.)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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