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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어봐 - 웬만하면 알려줄게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0. 5. 3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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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 12화 중에서>

    도재학(흉부외과 전공의): 제가 대학 4수, 사시 6년, 합이 10수라, 딴건 몰라도 공부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 그래서 가장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의사를 하면 성공하겠다. 어, 의사를 하면 나도 남들에게 뒤쳐지지는 않겠다 싶어서 또 죽어라고 공부해서 의사가 됐단 말이에요. 근데, 세상에나... 이 직업은 공부도 공부지만 판단을 잘해야 하네? 매 순간마다 디시전 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교수님, 근데 저는... 제일 부족한 게 판단력이에요. 머리 속에 든 건 많은데, 이걸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요, 교수님? 앞으로 저한테 수십 개, 수백 개 판단의 순간들이 올 텐데... 어유, 저는 자신 없는데... 저, 그때마다... 어떡해요?

    김준완(흉부외과 교수): 물어 봐. 판단의 순간들이 밀물처럼 밀려오면 그 중 큰 거 몇 개는, 나한테 물어 봐. 안 바쁘면, 웬만하면 알려 줄게.


    그대는 "인생의 스승"을 만난 적이 있는가? 내 삶을 돌아보면, 멀리서 흠모한 선생님들은 꽤 많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배움을 나누고, 태도를 나누고, 인격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인생의 스승"은 만나보지 못했다. 운도 없지. 남들은 하다 못해 초등학교 때 선생님, 처음으로 자신을 인정해주고 사랑을 전해 주신 선생님이 한 명쯤은 계시던데, 나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운이 좋게도, 나에게 "인생의 제자"는 있다: 비록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인성도 훌륭하고 머리도 좋으며 무엇보다 심장이 살아 있는 안혜연 사회사업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주인공 캐릭터들은 모두 전문의이면서, 의대 교수로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도 한다. 특히, 대학병원이기 때문에 레지던트와 인턴 등 의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학생들을 지도한다: 채송화 - 안치홍(신경외과), 안석형 - 추민하(산부인과), 김준완 - 도재학(흉부외과) 등 각각 개성 넘치는 스승과 제자가 환자들의 목숨을 살리는 임상적 과업을 함께 나누며 기술과 인격을 배워 나간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커플은, 까칠 대마왕, 흉부외과 김준완 교수와, 교수보다 딱 한 살 적지만 깍듯하게 교수를 모시는 도재학 선생 커플이었다.

    흉부외과 치프 레지던트, 도재학 선생.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다룬 다양한 의사들의 이야기 속에서 가장 많이 스승에게 혼나지만 가장 스승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캐릭터가 바로 이 캐릭터이다. 도재학 캐릭터가 마지막 회에서 김준완 교수에게 정말 깊은 고민을 꺼낸다: "교수님, 저는... 제일 부족한 게 판단력이에요. 머리 속에 든 건 많은데, 이걸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요, 교수님? 앞으로 저한테 수십 개, 수백 개 판단의 순간들이 올 텐데... 어유, 저는 자신 없는데... 저, 그때마다... 어떡해요?"

     

    그러자 겉으로는 맨날 소리나 버럭 지르고 학생을 무시하는 듯 했지만, 속으로는 도재학 선수를 깊이 존중하고 있는 김준완 교수는 "(나에게) 물어보라"고 지그시 말한다. "(나에게) 물어보라," 이 말은 어떤 뜻일까? 우선, 진짜로 물어보라는 말 같지는 않다. 아니 도재학 선수가 (매번) 물어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눈빛이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느낌이다: "재학아, 그런 이야기 하지마. 나는... 너에게 판단의 순간들이 밀물처럼 밀려왔을 때, 네가 현명한 판단을 내릴 거라고 믿어. 너는 충분히 할 수 있어. 하지만 정말로 모르겠다면, 그땐 나에게 연락 해. 기꺼이 내 경험을 나누어 줄게."

     

    김준완 교수는 도재학 선수를 무시하지 않는다. 의사로서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생명을 다루는 일, 그 중에서도 중대한 장기인 심장을 다루는 흉부외과 레지던트로서 긴장시키기 위해서 빽(!) 하고 소리도 지르고, 다그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 중심에서는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도재학 선수, 아는 것 많고 책임감 투철한(과거 에피소드에서, 필요하다면, 환자를 살릴 수만 있다면, 주저 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빌기까지 했다) 도재학 선수가 스스로 환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믿. 어. 준. 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내 인생에서 "진정한 스승"은 딱히 없었지만, 앞으로 내가 만날 "진정한 학생"에게는 내가 좋은 선생이 되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을 든든하게 믿어주면서, 그가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꽃 피울 수 있도록 돕는 선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더 마음을 다지게 된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리 대지가 척박하고 날씨가 좋지 않아도 농부의 농사 기술이 훌륭하다면, 능히 여러 가지 조건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뜻일 게다. 농부의 농사 기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술(혹은 태도)은 아마도... 땅을, 그리고 씨앗의 힘을, 

     

    믿. 어. 주. 기.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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