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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 당장 때려 치울거야!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0. 5. 25.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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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 1화 중에서>

     

    민영 엄마: 선생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 민영이, 욕심 많은 엄마 때문에 고생 많이 했지만, 그래서 좋으신 간호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만나서 3년 동안 행복하게 살다 갔습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구요. 우리 민영이 사랑해 주시고, 잘 치료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1년 전)

     

    안정원 교수(소아외과 전문의): 나한테 편지를 썼더라구. 아직, 한글도 잘 모르는 앤데, 죽기 전에 나한테 편지를 썼어. 으흐흑... 난, 의사로서 자격이 없어. 실력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 나 의사 그만 둘거야. 내일 당장 때려 치울 거야, 씨. 


    "저는요, 공감을 너무 잘 해서 탈이에요. 클라이언트가 한 말에 너무 감정적으로 공감이 되어서, 한 번 그 감정에 압도가 되면 아무 것도 못해요. 우울하고 힘이 빠지고..."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공감이 너무 되어서 탈"이라는 말을, '원조 전문가'라고 자신을 칭하는 많은 동료들에게서 듣는다. 그런데 나는 이런 말 앞에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대가 말하는 '공감'이 진짜 공감(empathy)이 맞을까?"

     

    현대적인 의미에서 공감(empathy) 개념을 처음으로 정교하게 제시한 사람은 역시 칼 로저스(Carl Rogers)라고 할 수 있다. 맞다. 인간중심상담의 그 칼 로저스. 그렇다면 칼 로저스는 공감을 무엇이라고 정의했을까? 한 번 실제로 찾아 보았다. 1957년에 쓴 유명한 논문에서는 공감 개념을 이렇게 정의한다: "클라이언트가 경험하고 있는 내적 세계(감정, 생각 등)를 마치 나의 내적 세계인 것처럼 느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이 정말로 나의 내적 세계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대단히 안타깝게도, 칼 로저스의 정의를 따라가다 보면, "저는요 공감을 너무 잘해서 탈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의 공감 개념 정의는 완전히 반쪽짜리 정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 칼 로저스는 공감 개념을 정서적인 것임과 동시에 대단히 인지적인 것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클라이언트의 정서/감정을 나도 비슷하게(이상적으로는 동일하게) 느껴야 하겠지만, 뒷 부분에 강조하듯이 반드시 인지적인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등장하는 안정원 교수(소아외과 전문의)는 직업과 역할의 특성상 불가피하게 어린 아이들이 죽어가는 장면도 지켜봐야 한다. 그는 슬기고운 의사생활 드라마 안에서 가장 섬세하고 따뜻하며 다정한 캐릭터. 생때같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보고서 눈물을 아닐 흘 수 없으며, 연민을 아니할 수도 없다. 원래 신부가 되고 싶어했다는 히스토리를 감안한다면 이러한 정서적 반응을 더욱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정원 교수는 병원 담벼락 위에서 걷고 있는 모양새다. 지나치게 환자나 환자 가족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열심히 치료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환자 어머니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보인다. 그리고서는 성당 앞 호프집에서 술안주에 감동하는 형님 신부님을 만나서, 울부짖는다: "으흐흑... 난, 의사로서 자격이 없어. 실력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 나 의사 그만 둘거야. 내일 당장 때려 치울 거야!

     

    태어날 떄부터 함께 했고 백일잔치, 돌잔치까지 함께 치른 아이가 허망하게 세상을 떴을 때, 누구나 "멘붕" 상태가 될 수 있겠다. 두 뺨 위로 하염없이 눈에서 나온 물이 흐르고, 그렇게 흐느는 눈물이 호주머니에 들어가 동전 대신 가득 호주머니를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감정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눈물의 호주머니 속에 빨려 들어가서 허우적대서는 아니된다.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클라이언트를 대해야 한다. 

     

    "내일 당장 때려치울 거야!" 라는 외침은 나를 이해해 주는 마음 맞는 좋은 동료 앞에서만 제한적으로 하고, 또 다시 오늘의 책임을 맡기 위해서 클라이언트에게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공감을 하면서도, 동시에 그 감정이 여전히 나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내담자를 침착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공감을 해야 하지, 동정을 하거나 슬픔 속에 빠져서 허우적 대면 아니된다. 

     

    =====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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