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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표피만 건드린다고요?지식 공유하기(기타)/기타 2020. 6. 4. 07:18728x90반응형
"강점관점 좋아요. 클라이언트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강점과 자원에 집중한다는 거잖아요? 다 좋은데... 아무래도 표면만 다루는 것 같아서요. 강점관점으로 개입해서 좋아진다고 치자고요. 그런데 심층적인 원인을 다루지 않는데 정말로 좋아질 수 있는 걸까요? 피상적이고 표피적인 개입에 그치는 것 아닐까요?"
이번 학기에 모교에서 내 수업(해결중심 가족상담)을 듣는 학부생들에게 100번도 넘게 듣고 있는 질문이다. 질문의 형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실제로는 단 하나의 질문이다: "해결중심모델이 듣기에도 좋고 실행하기도 쉬워 보이지만, 문제의 본질은 건드리지 않고 표피만 건드리는 피상적인 모델 아닌가?"
답답했다. 벌써 10강이 넘도록 죽고 살고 가르쳐 놓았는데, 아직도 이렇게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다니...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학생들을 비난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늘 생각하는 원칙은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잘 되면 학생 덕분, 잘 안되면 선생 탓"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이런 질문이 끝없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 따져 보았다. 그리고 이유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학생들의 머릿 속에는 개인상담/가족치료에 관한 어떤 고정된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을 것이다: "상담실에 들어가면 편안한 카우치(쇼파)에 눕듯이 기대어 앉는다. 문제를 겪고 있는 내담자는, 인간의 심리와 관계 문제에 대해서 통달한 상담자에게 현재 본인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쭉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상담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그런데 깊이 따져보면, 이러한 이미지는 상담이 시작되는 시기를 나타낼 뿐, 그 상담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와는 거의 상관이 없다. 전통적인 상담에 관한 이미지는 프로이트 이론과 정신역동 모델에 관한 이미지인데, 우리는 이미지만 알고 있다. 프로이트 계열의 상담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다.
프로이트 계열의 전통적인 정신역동 상담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이는 프로이트의 심리성적 발달 이론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엄마 몸에서 분리된 독립 개체가 된다. 하지만 갖 태어난 아기는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문화적으로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 자기 삶을 살아갈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여전히 아기는 엄마 젖을 빤다. 본능적으로 엄마 젖을 빠는 동안 아기는 엄마, 즉 세상과 다시 연결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아빠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아빠는 엄마는 아니지만 아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아빠가 "엄마와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빠는 그냥 아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엄마와 사랑(연애)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면 아기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빠지게 된다: "엄마가 사랑하던 사람이 내가 아니라 아빠라면, 엄마는 나를 버리고 아빠에게 가 버릴 수도 있다. 엄마는 나에게 온 세상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이므로 내가 엄마를 잃게 된다면 나는 죽을 수도 있다."
사실, 이러한 경험을 묘사하는 말로서 "충격"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미약하다. 아기가 경험하는 충격은, "아... 이러다가는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걸린,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심각한 충격이다. 이런 생각을 머리에 떠올리면(의식적으로 사고하면) 너무나 불안해서 살 수가 없는 충격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무의식" 개념이 등장한다. 무의식은 "의식"의 반대말이다. 나의 생각과 경험을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저 너머로 밀어버리고 넘겨버리는 것이 무의식이다. 무의식 구조는 아기가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을 때 생겨난다. 엄마에게 버림 받을 수도 있다는 충격을 무의식 안에 봉인한다.
상담자가 전통적인 프로이트 계열의 정신역동 상담을 진행하면 이렇게 무의식에 봉인된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충격적 경험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게 된다. 너무나도 공포스럽고 너무나도 괴로운 기억을 낱낱이 끄집어 내서 직면하게 된다. "아... 이러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경험을 눈앞에서 목도해야 한다.
이런 것이 프로이트 계열의 전통적인 상담(정신역동 상담)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3~5년동안 경험하게 되는 실제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 머릿 속에 각인되어 있는 전통적 상담의 이미지는 왠지 이렇게 고통스러울 것 같지는 않은 이미지다. 마치 신비한 마법사가 아무런 고통 없이 "심층적인 문제를 한없이 부드럽게" 다루어 줄 것만 같다.
한 걸음만 더 들어가 보자. 전통적인 상담은 100% 효과적일까? 정신역동 상담자는 모두 프로이트처럼 상담의 대가일까? 아니,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사님은 단 한 번도 실패를 해 보지 않았을까? 이토록 치명적으로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낱낱이 끄집어 내었는데, 최종적으로 상담에 실패한다면 내담자에게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
이제는 다시,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품고 있는 전통적인 상담의 이미지로 돌아가 보자. 사람들이 해결중심모델에 관해서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해결중심모델이 듣기에도 좋고 실행하기도 쉬워 보이지만, 문제의 본질은 건드리지 않고 표피만 건드리는 피상적인 모델 아닌가?"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절충적인 해결중심치료자로서 강점관점실천과 해결중심모델이 무조건 옳거나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전통적인 상담(정신역동상담)에 무조건 반대하지도 않는다. 필요하다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상담을 해야 한다고 본다. "효과가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하라(Do whatever works!)"고 말한다. 그러나 TV와 영화에서 얻은,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막연하게 좋게만 각인되어 있는, 전통적인 상담 이미지를 기반으로 "해결중심모델은 심층적인 문제의 원인을 건드리지 않으니 표피적"이라고 말하는 주장에는 역방향으로 날카롭게 의문/비판을 제기하고 싶다:
"좋다. 해결중심모델이 표피적이라고 하자. 심층적인 문제(의 원인)를 다루지 않으니 피상적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전통적인 상담은 무조건 좋은가? 그대는 대중 매체가 부지불식 간에 심어준, 전통적인 상담에 관한 긍정적 이미지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대가 그토록 중시하는 '심층적인 문제(의 원인)를 다루는 개입'이 정말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진행되는지 혹시 알고 있는가? 혹시 실패했을 때 다가올 결과가 어떨지 생각해 보았는가? 머릿 속에 떠올린다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무의식에 봉인해 두었던 그 충격적인 기억을, 낱낱이 끄집어 냈는데...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어떨 것 같은가?"
나는 사람들이 해결중심모델이나 강점관점실천에 관해서 최소한 공정한 태도를 가지게 되길 바란다.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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