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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한 인연 삼총사 (나의 까미노)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이재원의 여행기 모음 2020. 6. 15.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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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7월, 나는 죽기 위해서 세상 끝으로 날아갔다. 까미노 순례길(vo.la/DptI)을 조용히 걸으면서 내 삶을 정리하고, 마침내 세상(유라시아 대륙의) 끝이 나오면, 바다에 빠져 죽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살아서 돌아왔고, 여전히 살아 있다.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까닭은, 까미노 위에 남아 있다. 

     

    28일 동안 850km를 걸었던, 뜨거운 그 여름의 기록을 다시 정리한다.  (2020년 6월 11일, 이재원 기록) 


    나의 까미노

     

    1. 까미노는 사람이다.

     

    (3) 특별한 인연 삼총사(마틴, 데이비드, 우쉬엔) (2014년 9월 2일, 이재원 기록)

     

    까미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함께 그룹을 지어서 일주일이 넘도록 함께 다녔던 친구들도 있었고, 짧게 만났지만 잊지 못할 인연들도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스치듯 아주 짧게 만났지만 나에게 특별한 기억을 선사한 사람들을 소개한다.

     

    A) 어디서나 나타난다, 상남자 마틴.

     

    까미노에서도 유난히 쩔둑대면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까미노는 아주 오랫동안 걷는 길이기에 누구나 발에 최소한 크고 작은 물집 한 두 개 쯤은 생기게 마련이지만, 이 사람들은 그냥 물집이 아니라 대수술(?)이 필요한 중환자(!)들이다. 양말을 벗어 보면 발을 헝겁과 반창고로 온통 싸매고도 계속 통증을 느끼는 불운한 사람들! 그래서 이런 양반들을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는 없다. "Are you OK?”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사진 맨 좌측이 상남자, 마틴이다>

     

     

    마틴을 처음 만났을 때 그도 역시 엄청나게 쩔둑대며 걷고 있었다. 내가 괜찮냐고 물었더니, 피식 웃는다. 괜찮다는… 말씀이죠? 끙… 조금 불친절한 사람인가부다. "어디서 오셨나요?” "헝가리.” "헝가리 어디요?” "부다페스트.” 대화의 첫머리가 이렇게 단답형으로 진행되면, 대화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때로는 혼자 걷는 것도 까미노의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니까. “OK, take care!” 역시, 피식, 웃는다.

     

    며칠 후, 그를 또 만났다. 네덜란드 친구와 함께 걷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네덜란드 친구도 쩔둑대며 걷고 있었다. "내 친구는 헝가리에서 왔는데, 완전 종합병원이야.” "그래요? 저 아저씨 며칠 전에 봤는데, 그때도 엄청 쩔둑 대며 걸었어요.” "장난 아니지? 그래도 포기는 안하니 참 신기해.” "포기하긴 이르죠. 근데, 저 아저씨 이름이 뭐죠?” "마틴. 헝가리 남자야.” "아… 네...”

     

    며칠 후, 그를 또 만났다. 알베르게에서 딱 마주쳤다. "오~ 마틴, 안녕하세요? 당신 이름이 마틴이죠?”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대?” "며칠 전에 당신과 함께 다니던 네덜란드 친구가 말해 줬어요. 그 친구는 어디에 있나요?” "몰라. 내가 하도 천천히 걸으니까 헤어지게 됐네.” "오, 그렇군요. 발은 좀 어때요?” "발? 한 번 볼래? 흐흐흐… 별로 보고 싶지 않을 텐데.” "(뜨악하며) 아뇨… 별로 보고 싶지는 않네요.” "흐흐흐… 그래, 난 이거 치료 좀 해야겠다.” "그래요.” 마틴은 바늘과 실로 대수술을 수행했다.

     

    며칠 후, 나는 헝가리에서 온 똘똘한 낭자, 수지와 함께 저녁을 함께 먹었다. "근데, 너 그 헝가리 남자 혹시 아니?” "누구?” "마틴이라고, 좀 무뚝뚝한 남자 있는데, 헝가리에서 왔다더라구.” "오! 마틴! 마틴 너무 재미있지?” "엥? 재미있다구? 마틴은 말이 없는 사람이던데, 내가 말을 좀 붙여 보려고 해도 피하던걸?” "오, 리. 그게 마틴 스타일이야. 낮에 까미노를 걸을 때는 완전 조용하고 말도 없지만, 저녁 때 함께 밥을 먹으면 완전! 재미있어! 뭐랄까… 서커스 맨 같아!”

     

    서. 커. 스. 맨? 수지 말로는 마틴은 자기랑은 너무너무 재미있게 대화를 했다고 한다. 너무너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배가 터져 죽을 뻔 했다나 뭐라나…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 가족 이야기까지 했단다. 아니, 그렇게 재미있는 아저씨가 왜 나한테는… 수지는 자기가 헝가리 동포라서 그런 것 같고, 딸 같아서 그런 것 같단다. 흠… 그럴 듯한 가설이다. 그러니까 마틴은 상남자였구만. 수지는 혹시 길 위에서 마틴을 만난다면 절대로 자기가 마틴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고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싫어할 것 같단다.

     

    며칠 후, 마틴을 또 만났다. 신기했다. 저렇게 천천히 쩔뚝대며 걷는대도 나같이 빨리 걷는 사람과 또 만나다니. 이렇게 여러 번.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했지만, 역시나 마틴은 건성으로 인사를 받고 피식 웃고 만다. 나는 속으로 수지가 이야기 해 준 것들을 생각하면서 그에게 밝은 미소를 보냈다. '아저씨, 수지가 말했어요. 당신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요.’ 하지만 눈썹을 씰룩거리면서 피식 웃고 내 옆을 지나가는 마틴.

     

    마침내 내가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신기하게도 나는 마틴을 보고 싶었다. 이름만 겨우 알고, 이야기도 별로 안해 보았지만… 왠지 그가 내 까미노의 상징 같았다. 내가 어딜 가든지, 그가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한참 신나게 이야기 하다가도 뭔가 시선이 느껴져서 뒤돌아 보면 그가 피식, 웃으며 앉아 있었다. 오 마틴~ 오늘은 어느 길을 걷고 계신가요? 어디에서 당신의 그 서커스 맨 기질을 펼쳐 보이고 계신가요?

     

    B) 깊고 깊은 눈매, 데이비드.

     

    바로셀로나 토박이인 데이비드는 참 깊고 깊은 눈매를 지닌 스페인 남성이었다. 어느 무니시팔 알베르게 앞에서 처음 만난 우리는, 금방 영혼이 통해서 뙤약볕 아래였는데도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깊고 맑은 그의 눈 속으로, 나는 이미 빠져들고 있었다.

     

     

    <왕페이가 찍은 데이비드 사진. 멋있다>

     

     

    데이비드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고 했다. 상당한 자산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자신의 꿈도 곧 이루어지리라 생각햤다고 한다. 그러나 집안의 재산은 그 윗대에서 상속받은 것, 아버지는 재산을 지키는 법은 잘 몰랐고 여기 저기에 무리하게 투자를 하다가 갑자기 폭삭! 주저 앉았다고 한다.

     

    지금 그의 직업은, 아니 까미노에 오기 직전에 그가 했던 일은, CCTV 회사에서 선로를 깔고 관리하는 일. CCTV도 영상이니, 어쨌든 영상과 관련 있는 일을 한 셈, 이라고 그가 말한다. 그마저도 스페인의 경제 위기 때문에 원치 않게 그만 둬야 했다며 웃는다.

     

    데이비드와는 대화가 아주 잘 통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중국 친구들에게 중국 문화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물어 보고 자신의 생각도 나누어 주었다.

     

     

    <역시, 왕페이가 찍은 사진. 까미노를 걷고 있는 데이비드>

     

     

    어느날, 노천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중, 데이비드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리, 내가 이렇게~ 보니까 말이지, 너는 무척 밝읕 사람이지만 뭔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그렇지?" 잘 모르겠다. 그가 그냥 말을 던져 본 것이었는지. 하지만, 그의 눈빛이 나를 꿰뚫는 것 같이 너무나 깊었기 때문에 나는 내 비밀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깊고 깊은 호수처럼, 참말로 아름다운 눈매를 가지고 있던 데이비드. 그는 외국인과도 얼마든지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음을 배웠다.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까미노에 다시 가게 되면, 바르셀로나로 날아가 그와 맥주를 마시며 또 다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C) 꼭 잡고 싶던 사람, 우 쉬엔.

     

    짧은 머리에 조금은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주윤발을 닮은 느긋한 사진작가 왕페이, 음악 교사라는 그의 부인 웬디, 뷰티샵을 운영하는 밝은 성격의 리나, 십대 소녀처럼 앳된 마틸다까지, 그의 친구들은 모두 중국사람 같지 않게 세련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우 쉬엔은 시골에서 농사 짓다 방금 올라온 것처럼 순박한 웃음을 지닌 중국인이었다.

     

     

    <웃는 모습이 참 순수한 우 쉬엔>

     

     

    <좌로부터 리나(중국), 맷(미국), 마틸다(중국)... 그리고 나>

     

     

    우리는 순례자들이 모두 함께 재료를 준비하고 모두 함께 음식을 만들며 모두 함께 먹고 모두 함께 치우는, 특별한 전통이 있는 성당 부설 알베르게에서 만났다. 성당 앞뜰에 나와 있던 왕페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항저우에 살고 있는 다섯 명의 친구들이 함께 까미노에 왔다는 말을 들었다. 과연 어떤 사람들일꼬?

     

    저녁 시간에 이들을 모두 만났다.

     

    기다리던 저녁 시간이 되자, 우리는 모두 함께 양파와 감자 등을 다듬고, 거대한 통에 야채 스프를 끓였다. 또 모두 함께 식사 준비를 한 후, 밥도 함께 먹었다. 까미노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 모든 알베르게가 신비롭지만, 이곳은 정말 신비로웠다. 코스모폴리탄, 사해 동포주의, 이런 걸 느낄 수 있었다.

     

     

    <코스모폴리탄 식탁>

     

     

    공교롭게도 나는 중국인 친구들이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우리 테이블에 합류한 두 사람. 미국 PR 에이전시에서 일하다가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서 직장을 때려 치우고 중국에 와서 영어 선생님을 한다는 맷 웨이크필드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영어 선생님을 한다는 매리언이었다.

     

    나는 맷과는 UFC 전 웰터급 챔피언 맷 휴즈에 관한 이야기와 90년대의 농구 전설 마이클 조던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매리언과는 미국 드라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중국인 친구들과는 한국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이 빵… 정말 죽겠어. 한국에서는 빵이라고 하면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말야… 아, 그래서 말인데, 지금 내가 뭘 가지고 있는지 알어? 짜잔~ 이거슨, 한국 볶음 고추장이라규!” 중국 친구들이 관심을 보였다. 모두 도전해 보겠다고 했다. 물론, 나는 말렸다. "아아아… 먹어보는 건 괜찮지만, 부디 조심하길 바란다. 이거, 굉장히 맵거든!”

     

    마침 식탁 위에는 동양인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쌀밥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내가 가져 온 쇠고기 볶음 고추장을 밥 위에 짜고 열심히 비벼 먹었다. 반응은? 모두 매워서 힘들어 했지만, 뭐… 썩 괜찮았다. 그래, 볶음 고추장을 가져오길 잘했지. 우리는 코스모폴리탄 디너를 마음껏 즐겼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우 쉬엔을 다시 만났다. 터벅 터벅 길을 걷고 있었는데, 앞에 어떤 동양인이 이상한 포즈를 취하면서 걷고 있는 게 아닌가. 양 손을 위로 뻗었다가 양 옆으로 펴고, 그 다음에는 다시 위로 뻗고… 딱 보니까 우 쉬엔이었다. 짧은 머리가 그임을 증명해 주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그 오묘한 포즈는 단지 어깨가 아파서 취했던 거란다. 하하하… 재미있는 친구.

     

    <홀연히 나타나 요상한 포즈를 취한 동양인, 우 쉬엔이었다!>

     

     

    그날의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대충 씻고 빨래를 마친 후 바에 나오니 우 쉬엔이 앉아 있었다. "어, 우 쉬엔! 반갑다. 나 기억하지? 리?” "그럼, 기억하지. 리. 반가워.” 마침 깊은 눈을 가진 데이비드가 함께 있어서 우리는 재미있게 대화를 했다. 우 쉬엔은 영어를 잘 못했지만, 그 짧은 영어로도 음양의 조화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음을 천천히 보여주었다. "데이비드, 그거 아냐. 서양 사람들은 음양의 이치를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어. 음과 양은 서로 배치되는 게 아니야. 음 속에 또 다른 양이 있고, 양 속에는 또 다른 음이 있어. 좋은 일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니고, 나쁜 일이 무조건 나쁜 일이 아닌 이치와 같지.”

     

    너무 즐거웠다. 그. 런. 데. 우 쉬엔이 일어서려고 하는 게 아닌가. "우 쉬엔, 어디 가려고?” "응, 나 오늘은 넘 짧게 걸어서 좀 더 가야할 것 같아. 앞에 걷고 있는 친구들 만나야 할 것 아냐.” 데이비드와 나는 우 쉬엔을 붙잡았다. "에이~ 왜 그래, 뭐 내일도 있고 모래도 있잖아. 한창 이야기 재미있는데 우리랑 좀 더 이야기 하자, 응?” "아냐, 가야 할 것 같아.” 보통은 이런 상황에 더 이상 붙잡지 않는다. 까미노는 순례자 모두에게 개인적인 길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의 의사를 존중해 줘야 한다.

     

    하지만 나는 왠지 우 쉬엔을 다시 못만날 것 같았다. 그냥 느낌이었다. (실제로 나는 이날 이후 우 쉬엔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계속 붙잡았다. "에이~ 가지 마, 나랑 있자. 오늘만 여기서 자라, 응? 응? 응?” "안돼, 가야 해.” "좋아 그러면 내가 뭘 하면 여기 있을래?” "응? 흠… 그래, 너 담배 안 피운다고 했지? 네가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우면 오늘 여기 묵을게.” "정말? 그럼 담배 한 개비 줘 봐.” "정말? 내가 안 줄 것 같아? 여기!”

     

    나는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다. 담배 냄새에 민감해서 가까이 가기만 해도 역겹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우 쉬엔을 마냥 붙잡고 싶었다. 이야기가 너무 즐거웠다. 그래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콜록… 콜록… 콜록.... 나는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계속해서 기침을 해 댔고 데이비드와 우 쉬엔은 재미있다며 키득키득 웃고만 있었다. 그렇게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웠다.

     

    승! 리! 그날 우 쉬엔은 데이비드, 그리고 나와 함께 재미난 이야기를 세 시간 동안 더 나누었다.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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