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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at's not fair! (나의 까미노)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이재원의 여행기 모음 2020. 6. 14.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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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7월, 나는 죽기 위해서 세상 끝으로 날아갔다. 까미노 순례길(vo.la/DptI)을 조용히 걸으면서 내 삶을 정리하고, 마침내 세상(유라시아 대륙의) 끝이 나오면, 바다에 빠져 죽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살아서 돌아왔고, 여전히 살아 있다.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까닭은, 까미노 위에 남아 있다. 

     

    28일 동안 850km를 걸었던, 뜨거운 그 여름의 기록을 다시 정리한다.  (2020년 6월 11일, 이재원 기록) 


    나의 까미노

     

    4. That is not fair! (2014년 8월 31일, 이재원 기록)

     

     

    <폰페라다의 공립 알베르게, S. Nicolas de Flue>



    산티아고까지 200km 거리에 있는 폰페라다. 이곳에는 커다란 공립 알베르게인 San Nicholas de Flue가 있다. 최근에 사설 알베르게가 생기기 전까지는 이곳이 폰 페라다의 유일한 알베르게였다고 한다. 침대 수는 총 150개. 기부제로 운영되며 직원들은 자원봉사자라고 한다. 여러 가지 자료와 길 위에서 들은 풍문으로, 이 알베르게에서는 발 맛사지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즐거운 기대감을 품고 길을 걸었다.

     

    <산티아고까지 200km 남았단다!>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한 알베르게. 와우! 그런데 왜 이리 사람들이 많냐? 500km를 걷는 동안 한 번도 알베르게에서 기다려 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는 사람들이 밀리다 못해서 아예 가방으로 줄까지 세워 놓았다. 숫자를 헤아려 보니 나는 25번째인 것 같아서, 일단 신발을 벗고 가방 옆에 털썩 주저 앉았다.

     

     

     

     

    사실, 까미노에 오기 전에 읽었던 자료에 의하면… 7, 8월은 여름 성수기라서 까미노에도 사람이 넘쳐나고 그래서 매일 좀 더 좋은 알베르게를 먼저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일어나서 새벽부터 피 튀기는(!) 달리기 경주가 벌어진다고 들었다. 근데, 웬 걸. 나는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경쟁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마을마다 1등으로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알베르게 구하는데 늘 어려움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근래에 스페인의 여름 날씨가 너무 더워서 성수기가 7, 8월 여름 시즌에서 5~6월로 옮겨 갔다고 한다.)

     

    가방으로 줄을 세우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얼굴도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처음 경험해 본, 알베르게에서 가방으로 줄 세우기>

     

     

    그러나 여기가 어딘가? 늘 새로운 즐거움이 넘쳐나는 까미노 아닌가! 알베르게가 열리는 2시까지는 꼼짝없이 이렇게 죽치고 앉아 있어야 하나, 생각하던 차에 마침 직원들이 빨간 코를 달고 나와서는 짧은 공연을 선사해 주었다. 와우!!! 역시!!! 짱이야!!!

     

     

    <빨간 코를 착용하고 플라맹고를 추는 알베르게 직원. 고마웠다>

     

     

    이윽고 2시가 되어서 알베르게 등록이 시작되었다. 직원들의 공연을 보면서 아, 여기는 순례자 정신이 살아 있는 좋은 알베르게구나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요금도 기부제였다. 아싸!!! 보통 기부제 알베르게에 가면 직원들의 친절도나 서비스 등을 고려해서 각자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금액을 낸다. 나는 일단 기부제 알베르게에는 무조건 5유로를 내고 사람들이 친절한 것 같으면 8유로까지 냈다. (어떻게 아느냐고? 딱 보면 느낌이 팍 온다.)

     

    [원래 알베르게는 종교적인 순례자들을 위해서 성당 같은 곳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어서 옛날에는 무료로 빵과 포도주를 대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부금만으로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요즘엔 사설 알베르게도 많이 생기고 일정 금액 이상으로(보통 하룻밤 숙박에 8~10유로) 돈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보다 한참… 그러니까 1시간은 늦게 온 것 같은 남녀 청년 두 사람이 새치기를 하는 게 아닌가? 보아 하니 먼저 도착한 까미노 친구가 자기 일행을 발견하고 자기 순서에 그냥 끼워준 것 같았다. 이런 망할 놈들…

     

    사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자기와 함께 길을 걸어온 동료들을 만나면 그렇게 끼워주고 싶은 생각도 들겠지. 나라도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원래 엄청 소심한 남자. 보통 한국에서는 불의를 보고도 꾹 눌러 참는 호연지기를 가진 자이기 때문에 그냥 못 본 척,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날은 특별히 더운 날이었고 그렇게 힘든 와중에서도 정말 많은 순례자들이 자기 순서를 차곡차곡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친구를 불러 들인 사람은… 덩치가 무척 큰, 바다에서 뼈가 굵은 베테랑 선원 같은 거인이었다. 에고… 이걸 어쩌나? 하다가 그 아저씨에게는 차마 말을 못하고, 그 뒤에 있던 한 낭자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말을 붙였다. 하하...

     

    나: "얘, 넌 어디서 왔니?”

    낭자: "응, 크로아티아에서.”

    나: "근데, 내가 보니까 너 나보다 늦게 왔잖아.”

    낭자: "응...”

    나: "사람들 기다리는 거 안 보이니?”

    낭자: "끙… 알고 있어. 근데, 어쩔 수가 없었어… 내 까미노 친구가...”

    나: "그건 알겠어. 하지만 이건 공정하지 않아.”

    낭자: (짐을 챙겨서 들어가면서) "끙… 알아, 미안해…”

     

    그녀는 얼굴에 온통 미안하다는 말을 붙이고는 조용히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그냥... 용서를 해줄까 하다가, 말 안하면 나중에 길에서 만났을 때 괜히 미워할 것 같아서 그냥 말을 했는데… 또 말을 하고 나서는 내가 이해할 걸…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끝난 일. 속은 시원했다.

     

    내 차례가 되어서 알게르게에 들어갔고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나서 알베르게 뜰로 나왔다.

     

    <분수에 발을 담그고 쉬고 있는 순례자들>

     

     

    와우! 사람들이 작은 분수에 발을 담그고 편히 쉬고 있었다. 여기에 발을 담그고 물로 마사지를 하는 건가? 신기한 마음에 나도 자리를 잡고 발을 담갔다.

     

    <내 다리. 정말 수고가 많다!>

     

     

    와우! 시. 원. 했. 다.

     

    그리고, 행. 복. 했. 다.

     

     

    <좌측이 비아니(11), 우측이 포스띤느(7). 너무 귀엽다>

     

    이전 마을에서 만났던 프랑스 까미노 친구, 버트랑씨네 아이들도 만났다. 비아니와 포스띤느. 너무 귀여웠다. 우리는 함께 재미나게 놀았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사람. 안타깝게도 성함을 여쭈어 보지 못해서 알 수가 없는데… 이 알베르게에서는 무료로 마사지를 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이전에 묵었던 무니시팔에서도 대학생들이 자원봉사로 물리치료를 해 줘서 아주 좋았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그런 게 있다길래 신청을 했다. 자원봉사자에게 물었더니 이미 신청자가 많아서 내 번호는 23번이란다. 헐…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무척 정성스럽게 마사지를 해 주시다 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 같았고 10시까지만 계신다는데 나는 기회가 안 올 것도 같았다.

     

    그래도 꼭 마사지를 받고 싶어서, 의사 선생님 옆에서 죽치고 앉아 있었다. 그를 돕는 여성 자원봉사자에게 말을 붙였더니 영어를 잘해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그 여성 자원봉사자는 의사 선생님의 부인이었다. 남편은 전문의이고 자기는 학교 선생님인데 여름 휴가 2달 중 1달을 근처에 머물면서 자원봉사로 순례자들을 치료하고 있다고 했다.

     

    헉!!! 한 달씩이나 돈 한 푼 안 받고 순례자들을 치료한다? 이분들은 정말로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돈 들여서 이곳에 와서 지내고 있었다. 와우! 감동!!! 역시 여기는 까미노였다. 다른 사람들을 아껴주고 배려하는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곳!

     

     

    <역시~ 의술은 인술이여!>

     

     

    이렇게 의사 선생님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그분은 조심스럽게 내 발을 의자에 올리고 발가락 마디마디를 뽑아내듯이 가볍게 마사지 해 주셨다. 약간 특이했다. 마사지라고 해서 무슨 침상 같은 걸 예상했는데 그냥 앉아서 가볍게 손과 발만 건드렸다. 의아해서 부인에게 물었더니, 이 의사 선생님은 중국과 동양의학에 관심이 많아서 전문의 취득 후에 한의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치 지압을 하듯이 손과 발을 간접적으로 자극하셨던 거구나! 마사지가 끝난 후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약국에 가서 발포 칼슘과 마그네슘을 사서 먹으라고 권해 주셨다.

     

    뭐랄까… 이분에게 받은 마사지는 강렬한 직접 마사지는 아니었지만, 따뜻한 눈빛과 조심스럽고 섬세한 손길, 그리고 도란도란 나눈 이야기 때문에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치료를 받은 것보다 훨씬 더 깊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치료가 끝나고 헤어지면서 나는 이 부부와 포옹을 했다. 부인에게는 악수를 청했는데, 마다하시고 따뜻하게 포옹을 해 주셨다. 엄마의 품처럼 따뜻했다. 나는 우리식으로 고개 숙여 인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I really respect you, both. Why? You are good volunteers.”

     

    영혼의 마사지 덕에 마음은 행복했지만, 배에서는 밥시계가 울려댔다. 식당에 가서 수퍼마켓에서 산 스페인 라면을 조리했다. 비장의 무기로 준비한 볶음 고추장도 왕창 풀어서 얼큰하게 만들었다.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비록 스페인 라면이었지만 너무 맛있었다.

     

    그런데, 몇 분 전부터 어떤 서양 남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니? 딱 보니까, 알베르게에 들어올 때 새치기 했던 녀석이다. 그는 슬며시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저… 내 이름은 찰스야. 미국에서 왔어.”

     

    우리는 악수를 했다.

     

    "응, 근데?”

    "아까, 내 까미노 친구한테 들었는데… 내가 새치기했던 거 미안해서 사과하고 싶어.”

    "아~ 그거~ 그래, 너희는 나보다 1시간이나 늦게 왔잖아.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야… 그래서 말한 거야.”

    "알아. 스페인 까미노 친구가 하도 오라고 해서 간 거긴 한데, 옳지 않다는 거 나도 알고, 많이 미안했다.”

    "(안다니 다행이군) 알았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모.”

    "그래서 사과하는 의미로 내가 맥주 한 잔 사고 싶은데 어떠니?”

    "아, 고마워. 근데 나 지금 배가 너무 불러서 못먹겠다.”

    "알았어.”

     

    배불러도 그냥 응할 걸 그랬나? 맥주인데?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그냥 거절했다. 녀석이 미운 마음이 남아서 그런 것도 같고, 그냥 내 계획을 변경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도 같다. 녀석과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기회를 그냥 날린 것 같아서 아주 조금 아쉽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선택을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비록 대단히 소심하게시리 ‘제일 안전하게 보였던’ 여성 동지에게 말했던 거지만, 어쨌든 표현을 한 게 잘한 일 같았다. 표현… 그래, 내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고, 내가 즐거우면 즐겁다고 표현하고, 심심하면 같이 놀자고 표현하기… 한국 사람들은 모두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각종 권위에 복종하도록 교육받고, 어디서든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여기 까미노에 와서 깨달은 게 내가 행복해지려면 우선은 나를 찾는 게 필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나를 한 개인으로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게 무엇일까?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이, 자기 표현이다. 약간의 분란이 일어난다고 해도 내 느낌과 내 생각을 내가 인지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

     

    까미노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들에게, 자연에게, 심지어는 길가에 굴러 다니는 돌맹이 하나에도 배려와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드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존중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고,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줄 것인가! 세상의 모든 사랑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그 핵심은 내가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체험하고 인정하는 일이다.

     

    이날도 나는 여러 가지 작은 만남과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서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덧붙임: 내가 알베르게에서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던 크로아티아 낭자를 그 다음날 까미노에서 만났다. 의대에 다닌다는 똘똘한 낭자였다. 우리는 한동안 함께 걸으면서 크로아티아와 한국의 비극적인 현대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날의 안좋았던 기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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