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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하나 (나의 까미노)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이재원의 여행기 모음 2020. 6. 17. 00:21728x90반응형
2014년 7월, 나는 죽기 위해서 세상 끝으로 날아갔다. 까미노 순례길(vo.la/DptI)을 조용히 걸으면서 내 삶을 정리하고, 마침내 세상(유라시아 대륙의) 끝이 나오면, 바다에 빠져 죽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살아서 돌아왔고, 여전히 살아 있다.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까닭은, 까미노 위에 남아 있다.
28일 동안 850km를 걸었던, 뜨거운 그 여름의 기록을 다시 정리한다. (2020년 6월 11일, 이재원 기록)
쿠키 하나 (2014년 9월 23일, 이재원 기록)
아스토르가(Astorga)로 가던 길이었다. 이름 모를 아주 작은 마을에 들어섰다. 집은 몇 채 없었지만, 향긋한 소똥 냄새, 컹컹거리는 개소리, 나즈막한 집들, 창가에 걸려 있는 예쁜 꽃들까지, 영락없는 스페인 시골 마을이었다.
마을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할아버지였다. 집에 딸린 허름한 차고 같은 곳에서 나를 부르셨던 것이다. 스페인 어로 말씀하셨지만 온몸으로 친근한 분위기를 풍기셨다.
무슨 일인가, 하고 차고에 들어선 나에게 할아버지가 불쑥 뭔가를 내미셨다. 그것은 작은 쿠키였다. 할아버지는 나즈막히 뭔가를 말씀하셨다. 스페인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나였지만, 몇 가지 단어와 할아버지의 바디 랭기쥐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직감적인 해석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자신도 순례자였으며, 이 길을 걸었고, 그래서 우리 마음을 이해하셨다. 웬 동양인 순례자가 지나는 모습을 보고 옛날 생각도 들고 공감도 되어서 뭔가 주고 싶으셨다. 그래서 쿠키를 주셨던 거다.
방긋 웃으며 쿠키를 받아들고 그라시아스~ 아디오스~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마음에서 감동이 느껴졌다. 뭐라고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내 심장에서 훅~ 하고 올라오는 감동. 이 길을 직접 걸어야 느낄 수 있는 감동이었다.
우리는 사람을 쉽게 의심한다. 하긴, 매일 지옥철에 시달리며 아침마다 사람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부딪혀야만 하는 지독한 경쟁 속에서 살면서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어려운 일일 터.
한없이 늘어지는 스페인 사람들의 게으름을, 어떤 땐 그 나라 사람들도 싫어했다. 그래서 발전이 없는 거라고, 경제가 어려운데 정신을 못차리는 거라고 말하는 스페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느긋함이 좋았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어느 이름 모를 동양인 순례자에게도 기꺼이 마음을 열어 맛있는 쿠키 하나 건네줄 여유. 그것은 단순히 맛있는 스낵이 아니라,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받아든 좀 더 맛있는 인생에 대한 교훈이었다.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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