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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르치는 내용을 무조건 비판적으로 생각하세요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0. 6. 15. 17:26728x90반응형
다니엘: 제 경험을 좀 말씀 드리자면, 고등학교 1학년 때 "교육학"이라는 과목을 들어갔어요. 그 선생님, 앞으로 나오셔서 이런 말씀 하셨어요: "여러분, 제가 지금부터 가르칠 것에 대해서 무조건 비판적으로 생각하세요." 다른 의견 가지고 있거나 그러면, 충분히 알아보고 해석하고 정보를 습득한 다음에, 나한테 자기 의견을 제시하라. 나도 틀릴 수 있으니까. 항상 이렇게 강조하셨어요. 비판적 사고가 언제나 필요한 건데. 이거 왜 그러냐면은, 제가 봤을 때는 바로 2차 세계대전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거의 모든 국민들이 무조건 따라 갔던 그런 안좋은 정말 반인류적인 현상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되잖아요? 이를 테면 민주주의라는 제도도, 우주의 법칙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거잖아요. 인간이 완벽한 존재에요?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사상이 완벽할 수가 없어요.
중앙대 독문과 김누리 교수가 강의한 독일의 교육에 관한 내용을 듣고 독일 출신 방송인, 다니엘이 부연한 말이다. 무려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교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지금부터 내가 가르치는 내용을 비판하라"고 정면으로 이야기 하다니. 독일도 완벽한 나라는 아니겠지만, 이 문장만큼은 문자 그대로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겠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면, 반드시 하고 싶었던 몇 마디 말이 있다: "질문을 무제한으로 하세요", "학생은 끝없이 질문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고, 선생은 그 질문에 언제나 성실하게 답해야 하는 의무를 지는 사람입니다", "제가 답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답하고, 그럴 수 없다면 공부를 해서라도 답변을 시도하겠습니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습니다", "잘 되면 모두 학생 탓, 안 되면 모두 선생 탓", "저를 논리로 궁지에 몰아넣는 학생에게 최고 점수를 드리겠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영원히 질문하지 않을까? 아니다. 선생을 만만하다고 생각하면 질문하기 시작한다. 질문을 던져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고, 오히려 질문했을 때 인정받게 된다면 질문한다. 수준이 낮고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도 충분히 존중받고 그 취지를 이해받게 된다면 질문한다. 질문을 했는데 일방적인 답변을 받는 게 아니라 비슷한 눈높이에서 토론을 할 수 있다면 질문한다.
이런 사실을 나는 어떻게 아는가?
이번 학기에 겸임교수로서 모교에서 해결중심 가족치료를 가르치면서 약 30명에 해당하는 후배들에게 개별적으로 질문을 받고 개별적으로 답변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사실 학기 초에는 후배들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터져서 대면 강의가 전면적으로 취소되고, 시종일관 인터넷으로만 강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많이 막막하고 답답했지만 허용된 상황 속에서 내 소신을 관철시켜 보리라 마음 먹었다.
학생들은 질문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전화를 걸어서 개별적으로 답변했다. 처음에 학생들은 당황했다. "교수님이 전화해서 질문에 답해준다"며 황송해 하는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매주 계속 전화해서 답변을 하자 적응하기 시작했다. 내가 전화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제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가장 중요한 변화: 선생에게 마음껏 질문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이므로 거대한 교육 체계를 바꾸기는 어렵다. 하지만 평소 가지고 있던 소신을 작게나마 내가 가르치는 클래스 안에서 실천해 보면서, 변화의 씨앗을 확인했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배움이란 무엇인가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질문하고 답변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급적이면 질문의 영역이나 내용을 제한하지 않고, 심지어 어리석은 질문도 마음껏 질문하고 마음껏 답변을 들으면서 그 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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