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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폴리탄 식탁 (나의 까미노)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이재원의 여행기 모음 2020. 6. 19. 08:52728x90반응형
2014년 7월, 나는 죽기 위해서 세상 끝으로 날아갔다. 까미노 순례길(vo.la/DptI)을 조용히 걸으면서 내 삶을 정리하고, 마침내 세상(유라시아 대륙의) 끝이 나오면, 바다에 빠져 죽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살아서 돌아왔고, 여전히 살아 있다.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까닭은, 까미노 위에 남아 있다.
28일 동안 850km를 걸었던, 뜨거운 그 여름의 기록을 다시 정리한다. (2020년 6월 11일, 이재원 기록)
코스모폴리탄 식탁. (2014년 9월 25일, 이재원 기록)
800km 까미노 순례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알베르게는 그라뇽에서 만난, SAN JUAN BAUTISTA였다.
이곳은 교회를 개조해서 만든 곳으로,
<알아서 내세요. 기부제 알베르게의 돈통. ^^ 난 늘 5유로 이상을 냈다.>
순례자 정신이 살아있는 기부제 알베르게였다.
<조금 열악했던 침실>
물론, 성당 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기부제 알베르게가 대개 그렇듯이 시설은 좀 열악하다. 침대도 없고 그냥 맨 바닥에 매트리스 깔고 자야 한다. 겉모습만 보면 모두 상거지.
이곳의 직원은 모두 자원봉사자. 내가 갔을 때는 영국에서 온 여성 한 명과, 스페인 현지인 여성 한 명이 알베르게를 관리하고 있었다. 정말 친절했다. 말이 나왔으니 친절에 대해서 한 마디 언급하고 싶다. 까미노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친절하다. 하지만 친절에도 급이 있었다. 1단계 친절: 밝은 미소, 따뜻한 인사, 등등. 2단계 친절: 순례자가 필요한 걸 미리 알아채서 챙겨주기. 3단계 친절: 2단계 친절에서 챙겨준 것을 다시 한 번 더 물어봐주기. (이쯤 되면, 깊은 배려심에 감동해서 눈물이 찔끔 나기 시작한다.)
따뜻한 기부제 알베르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3단계 친절을 이곳에서도 경험했다. 특히 스페인 아주머니 자원봉사자는 따뜻한 손으로 사람들을 어루만지며 따뜻한 눈빛과 말로 피곤을 싹 잊게 해 주었다.
그런데 이 알베르게가 특별한 이유는, 코스모폴리탄 식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이 모두 함께 음식을 만들고, 모두 함께 먹고, 모두 함께 치운다.
아... 말로는 충분히 설명을 못하겠다. 다만, 나는 이곳에서 순례자가 되는 게 무엇인지, 까미노를 걷는 게 적어도 내게 어떤 의미인지, 함께 한다는 게 무엇인지, 나눈다는 게 무엇인지, 평등이 무엇인지 등등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에게, 까미노는 '대화'였다: 평등한 대화, 풍성한 대화, 열린 대화, 재미있는 대화, 그리고 맛있는 대화.
중국에서 온 친구들, 미국에서 온 매트, 아일랜드에서 온 매리언, 내 첫번째 까미노 친구 귄터 아저씨, 그리고 나. 우리는 정말 신나는 대화를 나누었다. 동양인 순례자들을 위해서 만든 쌀밥에 볶음 고추장을 뿌려서 맵게 비벼먹으면서 나는 참 행복했다.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 정신을 여기에서도 나누고 싶다.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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