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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랑 가족 이야기 (나의 까미노)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이재원의 여행기 모음 2020. 6. 20. 12:24728x90반응형
2014년 7월, 나는 죽기 위해서 세상 끝으로 날아갔다. 까미노 순례길(vo.la/DptI)을 조용히 걸으면서 내 삶을 정리하고, 마침내 세상(유라시아 대륙의) 끝이 나오면, 바다에 빠져 죽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살아서 돌아왔고, 여전히 살아 있다.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까닭은, 까미노 위에 남아 있다.
28일 동안 850km를 걸었던, 뜨거운 그 여름의 기록을 다시 정리한다. (2020년 6월 11일, 이재원 기록)
버트랑 가족과 기부제 알베르게 이야기 (2014년 10월 12일, 이재원 기록)
폰세바돈은 산동네다. 험난한(?) 산꼭대기에 알베르게 몇 개만 있는 곳이다. 너무 척박한 곳이라서 사람이 살 곳은 못된다. 알고 보니, 애초에 까미노 때문에 생긴, 즉 순전히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들을 돕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한다.
<폰세바돈에서 올려다 본 하늘>
이곳에 '특별한' 알베르게가 있다고 해서 길을 재촉했다. 도무스 데이 알베르게는 폰세바돈에 유일한 기부제 알베르게로 20명 정도만 잘 수 있다고 한다. 험난한 산길을 거의 뛰다시피해서 걸어왔는데 헐... 사람이 너무 많다. 족히 20명은 되어 보인다.
어쩌지?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안에서 매우 독특하게 생긴 주인장 아저씨가 슬며시 나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슥~ 훑고 들어간다. 그리고는 아무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잘 수는 있는갑다 싶어서 그냥 기다렸다. 그리고 알베르게 문이 공식적으로 열리는 2시까지 30분이 넘게 기다린 끝에, 만세! 무사히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알베르게가 워낙 작은데다가 사람들은 많아서 바로 씻을 수는 없었다. 이럴 땐 느긋하게 마음 먹고 기다리는 게 최고다. 다행히 옆 알베르게에 작은 수퍼마켓이 딸려 있어서 맥주를 사서 캬~ 한 잔 했다. 그리고 알베르게 앞에서 태양빛을 쬐면서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버트랑씨 가족의 넷째, 비아니. 장난끼가 얼굴에 가득하다, 짜식~>
이때 만난 프랑스 가족. 아빠, 엄마, 그리고 아이들 5명. 와우~ 아빠가 여러 모로 능력이 많은가 보다. 아빠 이름은 버트랑(Bertrand)이라고 한다. 영어를 꽤 하셔서 대화를 조금 나누었는데, 프랑스 리옹에서 살고 있고 자동차 내부의 각종 전자 기기를 제어하는 기계를 디자인하는 엔지니어라고 한다. '현다이(현대)'도 알고 '기아'도 알아서 무지 반가웠다.
까미노를 걸으면서 다시 알게 된 사실, 역시 사람과 친해지려면 이름을 외워줘야 한다. 나는 사람 만나는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 이름을 잘 잊어버리는 유형. 까미노를 걸으면서도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점점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결국엔 메모지에 사람들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길을 걷다가 심심하면(?) 메모지를 꺼내어서 사람들 이름을 외우는 거다.
다섯 형제 중 넷째(차남)인 비아니에게 가족의 이름을 물어봤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는 한다는데, 잘 못해서 손짓 발짓 다 써가면서 물어봤고 외우다 외우다 지쳐서 직접 써 달라고 앴다. 그랬더니 또박또박 써 주었다.
아빠, 버트랑. 엄마, 마리에-헬렌느. 큰누나, 오를리(17). 큰형, 오귀스땅(15). 작은누나, 이자보(13). 비아니(9). 막내여동생, 포스틴느(6). 이름을 외우는 과정도 재미있었고, 일단 이름을 외우자 아이들도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버트랑씨 가족의 이름을 외우려고 내가 적은 메모지>
<맨 왼쪽부터 한국인 청년 리, 맥내 포스틴느, 둘째 오귀스땅, 넷째 비아니, 그리고 나>
<폰페라다에서 다시 만난 가족, 버트랑씨와 막내 포스틴느, 그리고 나>
<역시 아이들은 순수해서 친해지기가 더 쉽다!>
버트랑씨에게 아이들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맏이인 오를리는 똑똑해 보이는 십대로서 한참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한다. 자세히는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여러 가지로 부모님 속을 썩히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이는 성장하기 위한 자연스런 과정일 뿐. 그가 무사히 제 길을 찾아가길 바랐다. 둘째 오귀스탕은 점잖은 느낌의 소년이었고, 셋째 이자보는 밝고 명랑한 소녀, 넷째 비아니는 장난기가 가득한 망썰쟁이(?), 그리고 막내는 앞니가 빠져서 너무 귀여운 막내였다.
그런데 버트랑씨에게 듣자 하니, 이 가족은 자전거와 자동차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엥? 그러면 어떻게 까미노를 걷죠? 약간 복잡했다. 먼저 아이들 중 두 명은 자전거를 탄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은 걷는다.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하면 아빠는 자전거를 타고 이전 마을까지 달려간다. 그곳에 자동차가 있다. 자전거를 접어서 자동차에 싣고서 가족에게 다시 돌아온다. 와우! 이거 완전히 아빠만 힘든 과정이잖아!
하지만 버트랑씨는 얼굴 표정 한 번 안 찡그리고 아빠 노롯을 하고 있다. 딱 보니, 평소에는 너무 바빠서 시간을 못내서 아빠 노릇 제대로 못하시는데, 여름 휴가를 맞이한 이때에 멸사봉공하는 마음으로 가족에게 온전히 집중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요. 프랑스 아빠도 똑같군요. 가정 평화를 위해서 정말 애쓰신다는. 좋아요, 아주 좋아. 후후...
아이들과 한데 어울려 한참을 웃고 떠들고 놀다 보니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이곳은 전형적인 기부제 알베르게여서 저녁 식사를 함께 만들고 함께 나눈다고 했다. 나는 이미 다른 기부제 알베르게에서 코스모폴리탄적인 열린 식탁을 경험한 뒤였기 때문에 기대를 했다. 순례자들 중에 몇몇 사람이 주인장과 함께 스파게티 요리를 했고 버트랑씨네 아이들이 식기를 정리했다.
저녁식사는 무척 맛있었다. 그런데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느낌이 음식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따뜻한 눈빛과 손길로 의사소통이 된다.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찍히기도 하면서 커다란 대화 소리와 함께 하나의 식탁에서 하나가 되었다.
식사가 끝난 후에, 나와 일행이었던 한국인 청년, 김과 리, 그리고 버트랑씨와 내가 설겆이를 자청해서 하게 되었다. 김과 리는 요리를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는데 예비 요리사여서 그런지 식기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정말 정성스럽게 깨끗이 닦고 정리했다. 그리고 버트랑씨도 마지막 접시를 다 닦을 때까지 정성스럽게 함께 해 주었다. 이젠 그만 들어가시라고 말해도 한사코 함께 하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감동!
그런데 설겆이가 다 끝난 후에 갑자기 주인장 아저씨가 얼굴을 붉히면서 나타나더니, 모두가 잠을 청하고 있는 방의 불을 환하게 켜셨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마구 손가락질을 하시면서 소리치시는 게 아닌가. 스페인어로 쏼라 쏼라 하셔서 다 이해는 못했지만 느낌상으로는 아마도, 우리는 도우려 하지 않고 그냥 들어가서 자 버리는 사람들의 태도를 지적하셨던 것 같다. 자리가 좁아서 결국 설겆이는 몇몇 사람만이 도울 수 있었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애를 쓰고 있는데 어찌 그냥 잘 수가 있느냐, 사람들의 도움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는 일갈인 것 같았다. 아저씨의 말씀이 일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고개를 숙이고 반성하는 눈빛이었다. 하하... 조금 민망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것도 까미노였고, 무척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날밤, 세찬 바람 소리에 잠이 깼던 기억이 난다. 그 옛날, 믿음 한 조각만 붙들고 먼 여행을 했던 순례자들은 이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꼬... 인생은 세찬 바람과 진한 먼지를 뚫고 걸어가야 하는 먼 길. 집을 삼켜버릴 듯 거센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사람들의 친절과 신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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