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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부생의 뛰어난 통찰(#1): "한 걸음 뒤에서 이끌기"상담 공부방/해결중심상담 교육 후기 2020. 7. 11. 08:08728x90반응형
2020년 봄 학기, 나는 모교(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학부생을 대상으로 해결중심 가족치료를 가르쳤다. 학부생 3, 4학년이 듣는 수업이었다. 그런데 출석부를 보니 다른 학과 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전공 학생들이었다. 원래 사회복지학과는 이수해야 할 과목 수가 많아서, 타과 학생들이 복수전공을 하기 힘들다. 그런데 관심은 있다보니 부전공으로라도 수업을 듣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생겨나는데, 이들이 그런 경우였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한 학생이 글을 너무 잘 썼다. 수업 내용에 대한 이해도 깊었지만,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아주 부드럽게 잘 표현했다. 궁금했다. 어떤 학생인지. 그래서 매주 내 수업을 듣고 배운 점, 느낀 점, 실천할 점, 질문을 정리해서 내는 레포트를 읽을 때 이 학생의 글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 학생의 기말 과제물: 강의 수강 소감문>
그런데, 어제 이 학생이 소속되어 있는 학과의 교수님께서 보내신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그 내용은 다른 학과 수업을 듣는 그 학과 소속 학생들 중에서 과제물을 뛰어나게 잘 한 학생을 선정해서 동문 장학금을 수여하니, 후보 학생이 있다면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너무 기뻤다. 딱 이 학생이 받아야 할 장학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쁘게 이 학생이 한 학기 동안 보내 준 레포트를 하나의 파일로 정리하여 답장을 보냈다. (만약에, 선정이 안되더라도 반드시 이 학생에게 연락을 하셔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 달라고 부탁까지 적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학생은 글을 너무 잘 썼다. 그래서 "이 학생에게 허락을 받아서," 한 학기 동안 제출했던 주별 레포트를 소개하려고 한다. 글도 글이지만, 해결중심모델에 대해서 나름대로 자신만의 시각을 담아서 정리한 내용이 너무 좋다. 이 글을 보시는, 해결중심모델을 배우고 계시는 학생분들께서 저처럼 깊은 영감을 얻길 바란다.
한 걸음 뒤에서 이끌기(Leading from one step behind)
<새롭게 배운 점>
수업을 듣기 이전에는 상담자가 능동적으로 내담자를 이끌어 나가고 반대로 내담자는 상담자 앞에서 수동적인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부분 텔레비전, 영화 등 미디어에서 내담자의 모습은 비전문가로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결중심모델에서 상담자는 페이스메이커의 역할로 내담자가 지치지 않고 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이지, 이끌어 나가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부분에서 상담자와 내담자는 사회적 위치에 상관없이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또한, (해결중심모델에서는) 상담자는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해 내담자가 대답을 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상담 목표를 설정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담자는 내담자를 관찰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장점, 환경 등에 집중해 스스로 해결책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때 상담자가 해결책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하는 목표를 능동적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담자의 겉모습, 행동에만 집중하지 말고 마음 속 감정, 기대, 열망까지 알아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느낀 점>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쉽게 질문을 주고 받습니다. 하지만 주로 표면적으로 보이는 부분들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그 방향에 맞는 답변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상대의 마음 깊이 있는 속마음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겉모습만으로 상대를 판단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상대의 가치를 끌어낼 수 있는 심층적인 공감 유도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에서도 공감 질문은 필수적입니다. 질문을 통해 상담자는 내담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전체적인 해결 방향을 설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담자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적인데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면 상담 진행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의 제목으로도 쓴 ‘한 걸음 뒤에서 이끌기’ 자세가 매우 필요합니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뒤에서 상황을 공감해 주고 지켜보는 지지자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질문은 하되, 내담자의 대답 방식에 간섭해서는 안 됩니다.
상담자의 작은 질문 하나가 내담자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큰 관심이 없고 빨리 상황만을 해결하려고 끌고 가면 내담자는 마음의 문을 닫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담자가 직접 구체적인 목표 설정을 하기에도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마음을 열고 적절한 질문을 통해 이해 관계를 파악한다면 내담자는 주체적인 행동을 보이며 스스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 방향이 바람직한 이유는 상담자는 도움을 주는 존재이지 직접 해결해 주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재원 선생의 피드백>
뛰어나게 잘 쓴 글입니다. 제가 지난 9년 동안 국내외를 막론하고 해결중심모델과 관련하여 수많은 좋은 글을 읽어봤지만, 이토록 간결하면서도 우아하게 해결중심모델의 기본 관점을 정리한 글은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특히, "한 걸음 뒤에서 이끌기"라는 유명한 격언 속에서 여유로운 정서적 공감, 이라는 개념을 찾아내고 해결중심 질문 테크닉과 부드럽게 연결하는 지점에서는 "이야!" 하고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아니, 수 백 번, 실제로 탄성을 질렀습니다!
픽사가 만든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애니매이션이 있습니다. 이제 막 10대 청소년이 된, "라일리"라는 친구의 마음 속에는 3살 무렵 만들어낸 상상의 친구인 빙봉(BingBong)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빙봉은 아름다웠던 라일리의 과거와 함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야 합니다. 빙봉은 슬퍼합니다. 그런데 라일리 마음 속 감정 캐릭터 중 하나인 "기쁨"이는 빙봉을 기쁘게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빙봉은 상실감을 계속 느끼고 슬퍼합니다. 그때 기쁨이 옆에서 조용히 서 있던 "슬픔"이가 슬며시 빙봉에게 다가가서 그의 옆에 기대면서 "너무 아쉽다... 슬프지..." 라고 감정을 표현합니다. 빙봉은 펑펑 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냅니다. 역설적인 장면입니다. 기쁨이가 진심을 손에 쥐고 그렇게 노력을 했을 때도 꿈쩍하지 않던 빙봉이었는데, 슬픔이 그 마음을 읽어주고 함께 있어 주자 슬픔을 표현한 후 기분이 좋아집니다.
제가 해결중심모델을 가르칠 때, 혹은 이 모델로 상담을 할 때 감정과 정서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해결중심모델을 내담자에게 적용한다는 것이 일종의 강요요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무심한 외면이자 무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담자가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을 외면하거나 무시한 채 어떻게 상담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안됩니다. 불가능합니다. 비인간적입니다. 그런데 해결중심모델의 본질은 "내담자의 강점과 자원에 (체계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이지만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내담자의 문제와 결함은 (체계적으로) 외면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결정적인 약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학생의 뛰어난 통찰력이 인상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제 강의를 진심으로 들어 주셔서요.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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