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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눈길은 상경이 뒷꿈치에 붙어 있었다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0. 7. 2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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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944,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일, 로버트 카파 촬영)

    1997년 겨울, 나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 두고 도망치듯 군대에 갔다. 남들보다 2년 이상 늦게 갔더니, 모두 나보다 2살은 어렸다. (아... 시바) 지금이야 익숙하지만, 그때는 군생활 하는 내내 답답하기가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땅개들 걷고 있을 때 너는 의무낭 매고 차 탈 수 있다"는 큰아버지 말씀을 듣고 의무병이 되고자 간호학원을 다녔다. (당시에는 의무병 주특기를 받고 입대하는 제도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의무병이 되었다: 논산 훈련소로 직행. 

    그리고 제일 꼬인 케이스가 되었다: 특공연대에 배치. 시바. 

     

    군단에서 잠시 대기할 때, 특공연대에서 전령이 왔다. 나한테 이러더군: "너네 고참들 있잖아? 주먹이 수박만큼 커. 원 펀치, 쓰리 강냉이야." 바보처럼 더플백을 멘 채 연대로 이동했다. 과연... 선배들은 무시무시했다: 나는 일병을 달기 전까지, 꼬박 4개월 동안 거의 매일, 치사 빤스 고참들에게 맞고 갈굼당했다. 아... 정말 괴롭더구만. 당시에 중대에 방문한 군목에게 말했더니, "그냥 참아" 라고 하더라. 

     

    어쨌든 군생활을 적응해야만 했다: 달리 어쩌겠는가.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바로 윗 고참을 잘 만났다. 

     

    연대 신교대 훈련 후 휴가를 나간 고참이 있단다. 너무너무 무시무시해서 중대에 소문이 자자하단다. 그 고참 돌아오면, 내 군생활 완전히 꼬인 거란다. 각오하란다. (물론, 고참들이 농담한 거다. 순진한 나는 그 말을 믿었다.) 헐~ 웬걸, 결국 그 고참이 돌아왔는데... 얼굴 새하얗고 웃는 상에 아담한 사람이었다. 무시무시하긴~ 다정하기만 하더만! 이 고참이 나의 베프, 정상경 변호사였다. 

     

    적응은 했다만... 군생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고달팠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 그리고 정상경. 

     

    우리 부대는 참 많이 걸어 다녔다. 수원과 용인 접경 지대에 있던 부대였는데, 훈련이 무지무지 많았다. (군단 근처에 있는 직할 부대라서 뻔질나게 점검을 나왔고, 그때마다 우리는 고달픈 일상을 보내야 했다.) 그나마 괜찮았던 것은, 내가 걷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걷는 게 좋았다. 평발인데도 걷는 게 좋았다. 그리고 잘했다. 적어도 낙오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비틀대도 끝까지 좇아갔다. 

     

    내 마음은 집에 가 있었다: 당연하지! 

    하지만 내 눈길은 상경이 뒷꿈치에 붙어 있었다. 

     

    걸을 때마다 주로 상경이 뒷편에 섰다. 행군도 스타일이 있다. 멀리 보면서 걷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 바로 눈 앞을 보면서 걷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 나는 후자였다. 멀리 보면, 가야할 길 때문에 숨이 막혔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사람 뒷꿈치만 보면서 아무 생각없이 걸어야 걷기도 쉽고, 시간도 잘 갔다. 나는 상경이 뒷편에 서서 그의 뒷꿈치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제 생각하면 좀 웃긴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도 내 눈길은 상경이 뒷꿈치에 붙어 있다. 

    그와 길을 걷고 싶다. 아니, 그를 따라서 걷고 싶다. 나는 그게 편하다.

     

    (상병 때, 헬기 도서 지역 탐색 훈련시, 실제로 헬기 타고 레펠을 했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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