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일곱 살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1. 7. 8. 14:45728x90반응형
연대북스와 함께 하는 글쓰기 특강!
첫 번째 시간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 주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간에 관해 쓰시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혹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두 세 단락으로 정리해서 써 보세요.’ 여러분께서 좋은 글을 내 주셨지만,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 가장 좋은 글이 스스로 반짝였다. 한보리 학생께서 쓰신 글을 소개한다. (본인에게 사용 허락을 받았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일곱살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직후 엄마는 해외로 갔고, 아빠는 무심했으며, 언니는 말도 걸기 무서웠다. 학교에서 나는 늘 준비물은 커녕 실내화도 챙겨오지 않는, 누가봐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아이였다. 매번 맨발로 앉아 수업을 듣다가 옆자리 친구의 실내화를 빌려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지우개나 연필이 없어서 빌려 쓰고, 스케치북이나 공책도 한 장씩 얻어쓰곤 했다. 이런 나를 반 아이들이 좋아할리 없었다. 아무도 실내화를 빌려주지 않는 날에는 양말을 신은 채 화장실에 다녀와서 축축한 양말로 하루를 보냈다.
학교 수업을 들은 기억은 없다. 그저 텅 빈 마음으로 학교를 다녀온 후, 안 방 침대에서 엄마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었다가, 다시 텅 빈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시절 나는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허공에 나부끼는 끈 떨어진 연…. 혹은 광활한 바다에 떠다니는 부표같은 존재로서 매일을 견디며 산다는 것은 일곱살의 어린 내가 견디기에 너무 버겁고 슬펐다.
어엿한 성인이 된지도 오래됐다. 어떻게 이겨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조금씩 덜, 조금씩 더 외로워하며 어른이 됐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초등학교 1학년때라고 하면 누군가는 그 정도로 힘든 일이 없었나 싶겠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때만큼 힘들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는 내일의 준비물 정도는 챙기며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나는 맨발로 학교 복도를 서성이는 기분이 들곤한다.
이제 한보리 학생께서 쓰신 글을 조금 첨삭해 보려고 한다. 원문이 가지고 있는 단점은 줄이고 강점은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첨삭힌다. 원문과 첨삭문을 비교해서 읽어 보면 좋은 글쓰기 공부가 된다:
(원문) "나는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일곱살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직후 엄마는 해외로 갔고, 아빠는 무심했으며, 언니는 말도 걸기 무서웠다. 학교에서 나는 늘 준비물은 커녕 실내화도 챙겨오지 않는, 누가봐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아이였다. 매번 맨발로 앉아 수업을 듣다가 옆자리 친구의 실내화를 빌려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지우개나 연필이 없어서 빌려 쓰고, 스케치북이나 공책도 한 장씩 얻어쓰곤 했다. 이런 나를 반 아이들이 좋아할리 없었다. 아무도 실내화를 빌려주지 않는 날에는 양말을 신은 채 화장실에 다녀와서 축축한 양말로 하루를 보냈다."
무엇보다도, 첫 문장(주제문)이 매우 좋았다. 솔직하고, 분명하고, 이해하기 쉽다. (교과서 같이 좋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단락을 전개할 수 없을 정도로 세부적이지는 않다. 중간 정도로 세부적이고 중간 정도로 구체적이다. 이렇게 주제문이 탄탄하니 이후 이어지는 뒷받침 문장이 당연히 좋다.
그런데 단락 중간 쯤에 전개가 아주 조금 튀는 부분이 보였다.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끝에 화장실 가는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 다시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온 후에 다시 화장실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하나로 합쳤다. 비교해서 읽어 보시라.
(첨삭문) "나는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일곱살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직후 엄마는 해외로 갔고, 아빠는 무심했으며, 언니는 말도 걸기 무서웠다. 학교에서 나는 늘 준비물은 커녕 실내화도 챙겨오지 않는, 누가봐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아이였다. 지우개나 연필이 없어서 빌려 쓰고, 스케치북이나 공책도 한 장씩 얻어쓰곤 했다. 그리고 화장실 기억이 난다. 매번 맨발로 앉아 수업을 듣다가 옆자리 친구의 실내화를 빌려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아무도 실내화를 빌려주지 않는 날에는 양말을 신은 채 화장실에 다녀와서 축축한 양말로 하루를 보냈다."
(원문) "학교 수업을 들은 기억은 없다. 그저 텅 빈 마음으로 학교를 다녀온 후, 안 방 침대에서 엄마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었다가, 다시 텅 빈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시절 나는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허공에 나부끼는 끈 떨어진 연…. 혹은 광활한 바다에 떠다니는 부표같은 존재로서 매일을 견디며 산다는 것은 일곱살의 어린 내가 견디기에 너무 버겁고 슬펐다."
이 단락은 거의 고칠 부분이 없었다. 그런데 ‘텅 빈’이라는 표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필자께선 짧은 단문 세개를 합쳐서 문장 하나로 만드셨는데, 첫 번째 문장과 세 번째 문장에 ‘텅 빈’ 이라는 어구가 반복되고 있었다. 두 번째 문장에도 이 어구를 쓴다면 필자의 의도를 더욱 강조할 수 있고, 글 리듬(운율)도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두 번째 문장에 ‘텅 빈’을 삽입했다. 그리고 ‘일곱살의 어린 나’ 중에서 ‘일곱살의’는 소유격 의미가 아니므로 ‘의’를 빼고 술어로 대체했다.
(첨삭문) "학교 수업을 들은 기억은 없다. 아침에 텅 빈 가방을 메고 학교를 다녀온 후, 텅 빈 안방 침대에서 엄마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었다가, 다시 텅 빈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어디에도 마음 한 조각 붙일 곳이 없었다. 허공에 나부끼는 끈 떨어진 연…. 혹은 광활한 대양에 떠다니는 부표같은 존재로서 매일을 견디며 사는 일은, 겨우 일곱 살이었던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버겁고 슬펐다."
(원문) "어엿한 성인이 된지도 오래됐다. 어떻게 이겨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조금씩 덜, 조금씩 더 외로워하며 어른이 됐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초등학교 1학년때라고 하면 누군가는 그 정도로 힘든 일이 없었나 싶겠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때만큼 힘들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는 내일의 준비물 정도는 챙기며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나는 맨발로 학교 복도를 서성이는 기분이 들곤한다."
끝 단락도 참 좋다. 고칠 구석이 안 보였고, 실제로 손을 대지 않았다(못했다). 약간 짧은 느낌도 들었지만, 오히려 후반부는 생략으로 여운을 살리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아, ‘내일의 준비물’이 눈에 밟힌다. 역시, 직접적인 소유격이 아니므로, ‘의’를 빼는 게 훨씬 더 낫다. 통상적으로, 문장을 크게 고치지 않고 그냥 ‘의’만 빼도 많이 좋아진다.)
(첨삭문) "어엿한 성인이 된지도 오래됐다. 어떻게 이겨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조금씩 덜, 조금씩 더 외로워하며 어른이 됐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초등학교 1학년때라고 하면 누군가는 그 정도로 힘든 일이 없었나 싶겠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때만큼 힘들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는 내일 준비물 정도는 챙기며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나는 맨발로 학교 복도를 서성이는 기분이 들곤한다."
마지막으로, 첨삭한 최종 글을 읽어 보자:
나는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일곱살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직후 엄마는 해외로 갔고, 아빠는 무심했으며, 언니는 말도 걸기 무서웠다. 학교에서 나는 늘 준비물은 커녕 실내화도 챙겨오지 않는, 누가봐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아이였다. 지우개나 연필이 없어서 빌려 쓰고, 스케치북이나 공책도 한 장씩 얻어쓰곤 했다. 그리고 화장실 기억이 난다. 매번 맨발로 앉아 수업을 듣다가 옆자리 친구의 실내화를 빌려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아무도 실내화를 빌려주지 않는 날에는 양말을 신은 채 화장실에 다녀와서 축축한 양말로 하루를 보냈다.
학교 수업을 들은 기억은 없다. 아침에 텅 빈 가방을 메고 학교를 다녀온 후, 텅 빈 안방 침대에서 엄마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었다가, 다시 텅 빈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어디에도 마음 한 조각 붙일 곳이 없었다. 허공에 나부끼는 끈 떨어진 연…. 혹은 광활한 대양에 떠다니는 부표같은 존재로서 매일을 견디며 사는 일은, 겨우 일곱 살이었던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버겁고 슬펐다.
어엿한 성인이 된지도 오래됐다. 어떻게 이겨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조금씩 덜, 조금씩 더 외로워하며 어른이 됐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초등학교 1학년때라고 하면 누군가는 그 정도로 힘든 일이 없었나 싶겠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때만큼 힘들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는 내일 준비물 정도는 챙기며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나는 맨발로 학교 복도를 서성이는 기분이 들곤한다.
<연대북스와 함께 하는 글쓰기 특강>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지식 공유하기(기타) >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범한 글감을 멋진 글로 (4) 2021.08.25 영어식 문장 순화하기 (0) 2021.08.22 제발… ‘했었다’ 라고 쓰지 마세요! (6) 2021.07.04 흡인력 있는 글쓰기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0) 2021.06.24 그놈의 국영수 (0) 2021.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