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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식 문장 순화하기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1. 8. 2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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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마다 진행하는 글쓰기 교실에서 학생들께 짧은 단락 쓰기 과제를 내 드리고 있다. 내가 작고 일상적인 주제문을 제시하면, 학생께서 취향대로 주제와 연관된 뒷받침 문장 2~3개를 이어 붙이신다. 그 후엔, 각자 완성하신 단락을 내가 읽고, 1:1로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서 피드백을 드린다.

    내가 중시하는 글쓰기 능력은, (1) 소재를 보고 마음에 든 생각이나 느낌을 적절한 주제문으로 뽑아내는 능력과 (2) 주제문을 부드러우면서도 풍성하게 확장하는 능력이다. 제시된 주제문에 어울리는 뒷받침 문장을 덧붙이는 연습을 많이 하면, 글 내용을 확장하는 능력을 효과적으로 키울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1:1 피드백을 받으면 더욱 비약적으로 글쓰기 능력이 높아질 수 있다.

    지난 주에는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이다’ 라는 문장을 주제문으로 드렸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니, 내가 선택한 문장이 영어 문장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더 우리말스럽고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바꾸고 싶었다: '나는 (계절 이름)을 좋아한다.' 두 문장을 바로 붙여 놓고 비교해 보자.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보다는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가 더 간단하고 자연스럽지 않은가?

    다음 영어 문장을 비교해 보자.

    (1) I'm so excited about the event. (나는 그 행사 때문에 매우 흥분된다.)
    (2) The event really excites me. (그 행사는 나를 진정으로 흥분시킨다.)

    두 문장은 사실상 동일한 뜻을 품고 있지만, 문장 구조는 사뭇 다르다. 문장(1)에서는 주어가 나(I)이고, 동사는 타동사를 수동태로 바꾼 형태(am excited: 흥분된다)이다. 한편, 문장(2)에서는 주어가 행사(the event)이고, 동사는 타동사(excite: 흥분시키다)이며, 목적어는 나(me)이다. '타동사', '수동태' 라는 용어가 등장하니 머리가 아픈가? 만약 그렇다면 그대는 한국인이다.

    자동사는 어떤 동작이 주어에서 시작하지만 타인에게 미치지 않는 동사다. (예컨대, '나는 아프다.') 반면, 타동사는 어떤 동작이 주어에서 시작해서 타인에게 미치는 동사다. (예컨대,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자동사에서는 목적어(타인)가 등장하지 않고 등장할 필요도 없지만, 타동사에서는 목적어가 '반드시' 등장해야만 한다. 타동사 정의 자체가 목적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동사 이름에서 '타(他)'자가 '(나와는 다른) 남'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국어에서는 자동사, 타동사 구분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분하기는 하지만 영어에서만큼 날카롭게 구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타동사, 수동태 개념이 자연스럽지 않고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자동사, 타동사 구분이 매우 확실하다: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누가 누구를 흥분시키는가?'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동작 대상이 되는 목적어가 주어로 나오는 경우다. 타동사 때문에 의미상으로는 목적어인데 말 그대로 문장의 주인이 되어 버리니, 뜻이 반대로 꼬여버린다.

    위 영어 예문으로 설명해 보겠다: 동사 excite는 애초부터 타동사로 태어났다. 주어가 어떤 대상(목적어)를 흥분시킨다는 뜻이다. 그래서 The event excites me, 라고 쓰면 주어인 the event가 목적어인 me를 흥분시킨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만약에 me를 주어로 쓰고 싶다면 어떻게 될까? Me는목격적(나를)이니 주격인 I(나는)로 형태를 바꾸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러면 'I excite ...' 라고 쓰게 될 터인데,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excite라는 동사는 타동사로서 주어가 어떤 대상(목적어)를 흥분시킨다는 뜻인데, 흥분 대상(목적어)인 내가 주어로 나와 버렸기 때문에 'I excite ...' 라고 쓴다면 뜻이 ''그 행사가 나를 흥분시킨다'에서 '내가 (다른 사람)을 흥분시킨다'로 완전히 반대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주어를 I로 쓰면서 뜻도 애초 뜻으로 유지하려면, 동사 형태를 능동형(excite)에서 수동형(be excited)으로 바꾸어야 한다.

    한국말에서는 거의 언제나 사람이 주어가 되어야 자연스럽다. 형식상으로는 주어인데 의미상으로는 동작을 받는 목적어라고 해도 주어가 사람이 되어야 자연스럽다. 문제는 동사 부분인데, 한국어에서는 동사를 피동형(수동형)으로 바꾸지 않고 능동형으로 써야 자연스럽다. 다음 두 문장을 비교해 보라:

    (3) (그 일에 의해서) 나는 감동되어졌다.
    (4) (그 일 때문에) 나는 감동했다.

    만약에 영어로 썼다면, 동작을 받는 사람이 주어로 나오면 반드시 동사를 수동형으로 바꾸어야 했을 터다.

    (5) I was moved by it.
    (6) It moved me.

    이제, 내가 학생들에게 제시한 주제문으로 돌아가겠다. 처음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이다' 문장을 제시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나는 (계절이름)을 좋아한다' 문장으로 바꾸었다. 이 두 문장에서 의미있는 동사는 '~을/를 좋아한다' 동사다. 그런데 '~을/를 좋아한다' 동사는 타동사다. 더구나 계절을 좋아하는 주체는 아마도 사람이어야 한다. 즉, '사람이 계절을 좋아하는' 그림이 머릿 속에 떠오른다. 따라서 주어를 '나'로 사용하는 편이 좀 더 우리말스럽고 자연스럽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라고 쓸 수도 있겠지만, '나를 여름을 좋아한다'라고 쓰는 편이 왠지 좀 더 부드럽다.

    또 다른 예문을 검토해 보자:

    (7) 그때 느낀 절망감이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8) 그때 절망감이 들어서 (나는) 마음이 무너지는 듯 했다.

    문장(7)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부자연스럽다. 자연스러운 느낌이 드는 까닭은, 우리가 굉장히 자주, 많이 접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무생물 주어, 예컨대 감정이나 힘든 일’이 ‘사람’으로 하여금 ‘부정적인 반응을 경험하게 만든다.’ 반면에 문장(7)이 부자연스러운 이유는, 우리말이 가진 생동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사람이 동작 대상(목적어)이 되는 구조보다는 동작 주체(주어)가 되는 구조가 자연스럽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문장(8)을 보자. 문장(7)에서 주어(명사)였던 절망감을, 이유를 나타내는 부사절(절망감이 들어서)로 바꾸었다. 문장(8)에서 주어는 나(사람)이다. 내가 마음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왜? 절망감이 들기 때문에. 

    만약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독자 제위께서 이런 질문을 떠올리실지도 모르겠다: ‘아몰랑, 난 그냥 쓰던 대로 쓸래. 살던 대로 살래. 너무 머리 아프고 귀찮아!’ OK! 안타깝지만, 괜찮다. 쓰던 대로 쓰시라. 다만, 부드럽게 술술술 읽을 수 있는 글을 쓰실 생각은 하지 마시라. 좀 더 예쁘게 우리말을 사용하는 실력을 키울 생각도 하지 마시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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