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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어공주가 따로 없어요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1. 8. 27.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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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부외과 병실>

     

    임창민(흉부외과 전공의): 고주형님, 오늘 컨디션 어떠세요? 

    고주형 환자: 좋습니다. 이게 다 선생님하고 김준완 교수님 덕분입니다. 

     

    <야외 휴게실> 

     

    연재민(응급의학과 전공의): 교수님은 안 그러셨어요? 전 너무 속상하던데요. 인어공주가 따로 없어요. 

    봉광현(응급의학과 교수): 사실,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 결과만 좋으면 덩달아 좋은 거지, 그게 누구 공인지가 뭐가 중요해. 안좋은 상황에서 응급처치 잘 돼서 환자 잘 되면 그걸로 됐고, 그걸로 뿌듯하던데, 나는? 우리가 뭘 바라고 환자를 보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환자가 그런 거까지 알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덩달아 환자 결과까지 좋으면, 우린 그걸로 할 일 다 한 거야. 

    연재민: 네. 

    봉광현: 재민아, 그래도 마음 속에 섭섭한 게 남아 있다면, 내가 알아 줄게. 내가 알아주고, 강소예 선생님, 치프 선생님, 희수 선생님이 알아 줄 테니깐, 섭섭한 거 다 풀고, 빨리 들어가서 일 해, 임마. 네 친구, 세바스찬들 힘들어. 

    연재민: 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제 9화 중에서>


    아마도 남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은 태초부터 존재했을 거다. (불교에서 말하는 바처럼) 인간지사, 모든 게 고통이니 언제든 사람은 온갖 어려운 일을 겪었을 테니까. 기본적으로 인간에게는 측은지심이 내장되어 있어서 타인이 고통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면 돕게 되어 있다. 한동안은 누군가 몸이나 마음이 아픈 이유/책임을 모두 그 개인에게 돌리기도 했겠지만, 결국엔 합리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을 거다. 그리고 살다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어려움을 직업적으로 돕는 사람도 생겨났으리라. 의사도, 간호사도, 사회사업가도, 보편적인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생긴 일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 도움을 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빚진 마음'을 갖게 되고, 도운 사람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무슨 법적인 의무까지는 아니지만, 기꺼이 도움을 준 사람은 내가 도와준 사람에게 당연히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진다. 그런데 타인을 돕는 행위가 직업이 되고, 사회적인 성격을 갖게 되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직업적으로 돕는 행위는, 우선은 명백하게 그 돕는 행위에 대한 금전적 댓가를 낳는다. 그냥 개인적 선의로 남을 돕는 게 아니라 돈을 받고 돕는다면,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듣고 싶다는 개인적 바람은 말 그대로 개인적 바람이 된다.


    상담하는 사람들은 늘 궁금했다. 우리가 잘 도와 줘서 내담자가 좋아지는 건 틀림 없는데, 대체 그 영향력이 얼마나 될까, 알아내고 싶어했다. 마침 시대가 근대로 접어들고 과학주의가 도래하면서 이 고전적인 질문을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20세기 이후 매우 많은 사람들이 남을 돕는 행위가 가지는 결정적 영향에 대해서 연구를 진행했다. (상담이나 사회사업학과 대학원 과정에서 여전히 아주 많은 학생들이 연구주제로 삼는 '효과성'연구를 생각해 보라.)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1) 사람들은 대부분(80%) 상담을 받으면 삶이 개선된다. (2) 하지만 상담자나 상담 모델 때문에 결정적으로 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3) 더구나 상담 모델 사이에 효과성 차이도 거의 없다. 

     

    '아니, 내가 도와줘서 좋아지는 게 아니라구?'

    '내가 따르는 상담 모델이 다른 모델에 비해서 결정적으로 우월하지 않다고?' 

     

    연구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상담자나 상담모델이 가지는 설명력은 많으면 15%, 적으면 2%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설명력이 가장 높은 요인은 무엇일까? Scott D. Miller 박사가 동료들과 함께 정리한 문헌(1997)에 따르면, 내담자가 보이는 변화를 40% 정도 설명하는 요인은 '알 수 없는 요인(혹은 내담자 외 기타 요인)'이었다. 쉽게 말해서, 상담자나 상담 모델이 통제하기 어려운 요인이 가장 강력했다. 더 쉽게 말하자면, 내담자가 좋아진 이유는 상담자가 상담을 잘 해서도 아니고, 상담자가 적용한 상담 모델이 타 모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우월하기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강점, 자원과 우연히 일어나는 좋은 일, 그리고 예측하기 어려운 모든 기타 요인 덕분이었다.

     

    오해하지 마시라. 위와 같은 이유로, 상담자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존재라고 말하려는 게 전혀 아니다. 변화에 대한 설명력 비율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때로는 아주 고급지고 강력한 1%가 나머지 99%를 이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촉매를 생각해 보라. 촉매가 없으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데, 촉매를 넣으면 마른 논밭에 불이 번지듯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하지만 여기에서 본질은 상담자나 상담 모델이 내담자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사람들이 오랫 동안 생각해 왔던 정도보다는 현저하게 적고 미약하다는 사실이다. 


    슬의생 시즌 2, 제 9화에 등장하는 고주형 환자는 응급실을 통해서 입원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인 연재민 선생은 응급의학과 봉광현 교수를 도와서 온몸에 내상을 입은 고주형 환자 상태를 빠르게 파악하고 처치를 한다. 그 후에 고주형 환자는 흉부외과와 간담췌외과 수술을 거쳐서 목숨을 건졌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돌아왔을 때 마침 흉부외과 김준완 교수와 임창민 전공의가 곁에 있었고, 희미한 형체와 함께 '안심하시라'는 의사들 음성을 들으면서 '아! 이 분들께서 내 목숨을 구하셨구나!' 생각한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환자가 걱정되어서 병동에 들린 응급의학과 연재민 전공의와 흉부외과 임창민 전공의. 어찌 보면 두 사람은 살아돌아온 고주형 환자의 목숨에 적게나마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주형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잠깐 의식이 돌아왔을 때 희미한 의식 상태에서 만났던 김준완 교수와 임창민 전공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다. 임창민 전공의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환자를 보다가, 연재민 전공의는 슬며시 사라진다. 

     

    봉광현 교수는 야외 휴게실에서 '(왕자를 살려냈지만, 아무 말도 못해서 결국 아무런 공도 인정받지 못한' 인어공주가 된 것 같다'고 한탄하고 있는 연재민 선생을 만난다. 그리고 명대사를 날린다: 결과만 좋으면 덩달아 좋은 거지, 그게 누구 공인지가 뭐가 중요해. 안좋은 상황에서 응급처치 잘 돼서 환자 잘 되면 그걸로 됐고, 그걸로 뿌듯하던데, 나는? 우리가 뭘 바라고 환자를 보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환자가 그런 거까지 알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덩달아 환자 결과까지 좋으면, 우린 그걸로 할 일 다 한 거야. 

     

    사회사업가 동료들에게 상담을 가르치다 보면, 도와 주면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착시 현상 때문에 힘들어 하는 분을 가끔씩 만난다. 비록 소수이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하면서 도와 주는데, 저 인간은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면서 오히려 짜증을 내고 말을 함부로 한다'고 호소하신다. 솔직히, 만약 이같은 처지에 놓인다면, 그러니까 정말로 온 마음을 다해서 정성스럽게 도와 드렸는데 홀대를 받는 느낌이 들면, 나라도 속이 상할 것 같다. 마음 속으로는 이미 욕을 퍼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분들은 여러 면에서 여유가 있다기보다는 부족한 분들이다. 우리가 드린 도움을 세심하게 살피셔서 반응을 하신다면 이미 여유가 있는 분일 터.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 도와 드렸다지만, 그분에게는 결정적인 도움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보기엔 결정적 도움 같아도 실제로는/그분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좀 더 성숙한 원조전문가가 되는 길은,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길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남의 인정에 목을 매면서 갈구하는 모습도 성장 과정에 속할 순 있다. 원조전문가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성장하고 싶다면, 더 이상 어린 아이처럼 굴지 말자.

     

    우리는 프로페셔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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