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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거야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1. 8. 1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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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 이식 예정환자 병실>

    환자 오빠: 교수님, (이런 수술) 해 본 적은 많으시죠? 

    이익준 교수: 이식 수술은, 다 어렵고 힘들어요. 

     

    <간담췌외과 병동> 

    환자 오빠: 동생 팔에 멍이 또 들었어요. 지금 멍이 몇 개인 줄 아세요? 어떻게 채혈 할 때마다 멍이 생깁니까? 그리고 수액 바꿔 달라고 아까 이야기 했는데, 왜 안 바꿔줘요? 정말 이 병원은, 믿음이 안 생겨요, 믿음이. 

     

    <간담췌외과 병동 복도>

    환자 오빠: 교수님, 수술 꼭 성공하셔야 됩니다. 오늘밤 일찍 주무시고, 술도 절대 드시면 안되구요. 

    이익준 교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환자 오빠: 두 사람의 생명이 걸린 일입니다. 무조건 성공하셔야 되고, 성공하리라 믿습니다. 

     

    <외과 의국> 

    장윤복(인턴): 전 좀 많이 미웠어요, 그분. 우리 사정도 전혀 모르시고. 

    이익준 교수: 윤복아. 

    장윤복(인턴): 네? 

    이익준 교수: 여기는 3차 병원이야. 환자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더는 없다는 뜻이야. 우리한텐 매일 있는 일이지만, 환자한텐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고, 가장 극적인 순간이야. 그런 순간에 우릴 만나는 거야. 환자가, 환자 가족들이 아무 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 다 알어.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런 상황에 놓이면, 그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해해야 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해. 알았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제 7화 중에서> 


    나에겐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엔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고, 내 주변에도 경험한 사람이 꽤 있었지만, 어쨌든 TV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늘을 바라 보라. 늘 하늘이 맑지는 않지만, 저 하늘이 무너질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맑은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지고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그렇게 나는 이혼을 경험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나 충격을 받고 당황해서 신발도 신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미 2년 전에 버스가 떠났다'고 선언한 사람을 붙잡아 보려고 별 짓을 다 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충격을 받아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어서 단 3주만에 체중이 20kg 빠졌다. 최종적으로 도장을 찍을 때까지 나는 가슴팍에 대포알 크기 만한 구멍이 뚫린 채로 수 개월을 살았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다. 

     

    당시에 내가 했던 말, 행동은 구체적으로 말할 필요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얼이 완전히 빠져서 지금 같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말과 행동을 했다. 돌아보면 헛웃음만 나올 때가 있다. (솔직히, 지금도 낯이 뜨겁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상황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기세였다. (물론, 그럴 순 없었고, 결국 도장을 찍었다.)


     

    삶은, 때로는 무척 아름답기도 하지만 때로는 끔찍하게 괴롭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아름답고 우아하게 살아가고 싶어하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 생겨서 절망하고 탄식하면서 울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순간에 우리를 만나는 사람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인상을 갖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리 밝고 긍정적인 인상을 받지는 못할 것 같다. 예컨대, 내가 이혼으로 한창 힘들어 하고 있을 때, 직장도 잃고, 어두운 단칸 방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누워서 숨만 겨우 쉬고 있을 때 나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고백하건대, 지금 나는 내 삶에서 최고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러 가지 일이 잘 풀리고 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면, 일이 잘 되어서도, 결혼(재혼) 생활이 행복해서도 아니다. 이제 비로소 내가 나로서, 독립적으로, 내가 살아가고 싶은 방식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나만큼 여러 모로 늦은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제 길을 찾을 때까지 방황을 많이 한 사람도 드물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돌아서 돌아서 찾은 내 길에 확신이 있고, 어려움이 닥쳐온다고 해도 버티고 이겨낼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세상 그 누가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해도 내 스스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만큼 자존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지 않은 인생에서 쓴맛, 신맛, 단맛, 매운 맛을 두루 경험한 바로는, 삶은 도대체가 알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검은 상자 속 미스터리다. 혹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이지만 언제라도 한 순간에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는 투명하고 화려한 유리그릇이다. 얼마 전 갑작스럽게 몸이 아파서 힘든 시간을 보내신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까, 또 세상이 달라 보이더라구. 누군가에게 운명을 맡긴 환자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되었어." 내 입원 경험도 마찬가지다. 자전거 사고로 쇄골뼈가 으스러져서 수술 받고 입원해 있으면서 화장실 가는데 30분씩 걸리는 상황에 처하고 보니, 답답해서 미쳐 돌아가실 뻔(?) 했다. (삶은 알 수가 없다.)


    수백, 수천 번 이식 수술을 경험한, 한창 나이에 온갖 의료기술도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이익준 교수에게, 환자 오빠가 말한다: "교수님, (이런 수술) 해 본 적은 많으시죠?" 순간, 교수 뒤에 서 있는 전공의(레지던트), 인턴, 간호사들이 술렁인다. 전문가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한 행동으로 보일 터. 하지만 이익준 교수는 겸손하게 말한다: "이식 수술은, 다 어렵고 힘들어요." 수술을 많이 해 봤다, 아니다, 라는 식으로 답한 게 아니다. 불안감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는 환자 오빠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 그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 다 꿰고 있는 눈치다. 

     

    그리고 어려운 수술이 잘 끝나고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에, 환자 오빠는 외과 병동에 선물을 돌린다. 환자 오빠가 돌린 떡을 먹고 있던 인턴 윤복이는 눈을 슬쩍 흘기며 말한다: "전 좀 많이 미웠어요, 그분. 우리 사정도 전혀 모르시고." 이 말을 듣고 이익준 교수는 답한다: "우리한텐 매일 있는 일이지만, 환자한텐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고, 가장 극적인 순간이야. 환자가, 환자 가족들이 아무 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 다 알어.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런 상황에 놓이면, 그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해해야 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해."


    요즘 나는 해결중심모델만큼이나 공감(empathy)에 대해서 많이 가르치고 있다. 왜? 해결중심모델은 개발 직후부터 인간의 감정을 도외시한다는 비판을 강력하게 받아왔다. 해결중심모델은 삶에서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자는 모델인데, 내담자에게 (부정적인) 감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결국 그 감정과 연결된 문제나 약점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해결중심모델에서 지향하는 방향과 반대되는 곳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던 거다. '모델'은 이상적인 개념이고 이상적인 개념이란 한 가지 요소로만 강조할수록 우아하고 멋져 보인다. 하지만 나는 오랫 동안, '어찌 되었든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나서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도외시 할 수는 없고, 따라서 공감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 누구보다도, 사회사업가는 공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고, 기술적으로도 완벽하게 구사해야 한다. 사회사업가야말로 삶에서 여러 가지로 큰 일을 겪은 '생존자(survivors)'를 만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괴로움과 외로움, 그리고 비탄을 직접 경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삶에서 끝자락에 서 있는 분들을 만날 때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는 공감해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피부를 뚫고 들어가서 뼈를 쪼개고 골수에 스며들어서 그가 될 수도 있어야 한다. 너무 어려운 과업이라고? 

     

    하! 몰랐는가? 우리 일이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이재원 선생의 공감 강의 관련 피드백>

     

    내일 당장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21년 8월 9일부터 송파구방이복지관에서 해결중심상담 집중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첫 번째 시간에는 이용욱, 진수연, 김강혁, 박상현 선생님과 함께 '마음을 이어주는 대화법' 수업을 진행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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