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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정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1. 8.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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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부외과 진찰실>

     

    환아 모: 바드, 달아도 되겠죠? 네? 교수님? 

    김준완 교수(흉부외과): 전, 반대합니다. 이런 경우는 심장 이식에 적절한 후보자가 아닙니다. 바드는 심장 이식을 염두에 두고 하는 기계적 보조 장치인데, 아기의 경우, 몸무게가 1.5kg이면 안되는 건 아니지만, 바드를 달기에는 너무 작습니다. 작다는 얘기는 공여자를 만나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거구요. 또 뇌출혈도 있어서, 관리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저산소 뇌변증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끌고 가서 이식할 만큼 좋은 후보자이냐에 대해서 전 회의적입니다. 아시겠지만, 바드를 하고 나면 항응고치료를 강하게 해야 하는데, 뇌실 뇌출혈이 저 정도면, 항응고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금기증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고요. 게다가 저산소 뇌 병증이 의심된다고 되어 있는데, 이 자체도 이식에 좋은 조건이 아닙니다. 아기한테 지금 해 준 것만으로도, 정말 최선을 다 하신 겁니다. 여기서 더는, 그게 아기한테 맞는 방법과 결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환아 모: 하... 냉정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제 7화 중에서>


    꽤 오래 전, 부부치료를 하는 중에 '이제는 인자한 아버지, 자상한 남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남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분은 50대 중반 남성으로, 컴퓨터 업계에 몸을 담아오고 계셨는데, 침착하고 안정적인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저는 직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주된 소득원은 저였지요. 아내도 일을 했지만, 주된 역할은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돌보는 거였어요. 그런데 제가 나이를 먹고, 아이들도 20대 중반이 되고 보니, 제가 가족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어요. 어디 캠핑이라도 가면 아들이 고기를 굽는데, 제가 옆에 있으면 자꾸 참견을 하니까, 싫어하는 티를 내더라구요..." 이때 부인이 슥~ 끼어 들었다: "아들은 혼자서 뭘 해 보고 싶어하는데, 아빠가 불안해서 자꾸 참견을 하니까 눈치를 보게 되는 거죠. 아들은 아빠가 조금 더 뒤에 떨어져 서 있길 바라거든요." 그러자 다시 아빠가 끼어든다: "불안한 게 맞아요. 불을 잘 이해하고 고기를 구워야 하는데, 아들에게 맡겨 두면 불똥이 너무 많이 튀어서 팔이라도 데일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이제 제가 조금 개입을 하는 거죠." 

     

    나는 이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직감했다. 

     

    그러나 남의 가족사에 대해서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어서, 가족 생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세부 사항을 들었다. 내 머리에 떠오른 상(이미지)이 점점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고민이 들었다. 내가 느낀 바를 솔직하게 말해서 내담자를 직면시킬 것인가, 아니면 훨씬 더 부드러운 방식으로 접근해서 스스로 알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직면 기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주로 적용하는 해결중심모델에서는, 원칙적으로는 애초부터 직면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직면 기술이란, 전문가가 내담자를 지켜보면서 발견한 모순적 요소(행동과 행동, 행동과 감정, 감정과 생각, 말과 말 등)를 언어적으로 드러내는 기술인데, 해결중심모델에서는 내담자를 자기 삶에 정통한 최고 전문가라고 바라보므로, 주제 넘게 자기 생각을 (더구나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해결중심모델에서) 직면 기술은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사람을 하대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이 순간, 나는 내가 느낀 바를 그대로 내담자에게 말씀드리면서 그의 말과 행동이 모순되는 부분을 직면시키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내담자는 스스로 자신이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비교적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2) 이 모순점에 대해서 스스로 고치고 싶다고 지속적으로 말했다. (3) 상담자인 나에게 원하는 바도, 그러한 모순점을 발견했을 때 그에게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것이었다. (4) 다소 불편하더라도 본인이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내가 해 준다면 기꺼이 고치겠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5) '기꺼이 고치겠다'는 태도가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이러한 근거를 가지고 나는 이 부부와 가족에 대해서, 특별히 남편 분이 보이시는 모습에 대해서 진솔하게 말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서, '권위'와 '권위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권위'는 남이 부여해 주는, 정당한 힘입니다. '권위'는 좋은 겁니다. 제가 누군가를 마음으로 따른다고 말할 때, 그 이유는 제가 그를 어떠한 이유에서든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스스로 그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따르는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반면에, '권위주의'는 자신이 스스로 부여하는, 정당하지 않은 강제력입니다. '권위주의'는 나쁜 것입니다. 상대를 하대하면서 너는 당연히 나를 따라야 해, 라고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상대가 마음으로 동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강제력으로 상대를 누르면서 자신을 따르도록 만드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권위주의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권위주의입니다. 이 권위주의는 대 놓고 타인을 압박하고 움직이게 만듭니다. 말이 도대체 안통하는 가부장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여자가 어딜', '어린 녀석이', '싸가지 없다', '너는 에미 애비도 없냐?' 이런 말을 하면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합니다. 두 번째 권위주의는 인자한 권위주의입니다. 이 권위주의에서는 적어도 겉으로는 상대를 압박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자하게 미소를 지은 채, '나에게 맡겨 봐, 내가 다 알아서 해 줄게' 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인자한 권위주의는 노골적인 권위주의와 본질은 같습니다. 권위주의란 근본적으로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관점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척 인자해 보인다고 해도, 어떤 일을 할 때 타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아 보여도, 결국은 모두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 버린다면, 이는 결국 자기만 옳다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참고>

    내담자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서, 위에 소개한 사례에서

    실제 사례 내담자와 관련된 세부 정보(성별, 연령대 등)는 바꾸어 적었음.


    이쯤 말씀 드리고 나니, 아빠/남편 내담자의 표정이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사이에 이미 만들어진 신뢰 관계를 믿고 더 나가 보기로 결심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미 느끼신 것 같습니다. 네, 아버님은 제가 지금 설명드린 '인자한 권위주의자'에 속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인자한 아버지, 자상한 남편이 되고 싶다고 말씀은 하셨지만(실제로도 그런 면이 많은 분이시지만), 그 인자함, 자상함이라는 게 결국은 '나만 옳다'는 일정한 한계에 갇혀 있는 느낌입니다. 두 분이 부부상담을 받고 싶다고 저에게 오셨을 때 부인께서 가장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남편이 평상시는 괜찮은데, 가끔씩 자기만 원하는 것을 끝까지 우기고, 저를 속이기까지하면서 결국 관철시켜서 속상해요.' 부부관계는 협상이 본질입니다. 그 어떤 일도, 아무리 작은 일도,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자기 의사를 관철시키면 안되는 게임입니다. 늘 상대를 생각하고, 내가 아무리 원하는 게 있더라도 그가 반대하면, 적어도 내가 원하는 방식을 완벽하게 관철시켜서는 안되는, 관계적 게임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본인은 아내 분께서 불만스러워하시는 부분이 별 게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건 선생님 관점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그 물건을 기어코 사시는데 들어간 돈은 그리 큰 돈이 아니고 아내 분도 그 액수에 불만스러워하시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옆에서 아내 분: "맞아요, 맞아요!") 선생님께서 결국 본인 마음대로 하셨다는 게 문제일 수 있습니다."

     

    "본인께서 가족 안에서 원하시는 바가 진실로, 진실로, '인자한 아버지, 자상한 남편'이라면, 진짜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겉으로는 인자하게 웃고 있지만, 집안 대소사를 결국은 본인 마음대로 끌고 가서 아내 분을 포함해서 아들, 딸 얼굴을 어둡게 만들고 계시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캠핑 가서 아들이 고기를 구울 때 아버님께서는 아들이 불에 데일까봐 걱정되어서, 옆에 서 계시다가 조언을 몇 마디 하시는 것 뿐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 하지만 선택이란 그 선택을 함으로써 닥쳐오는 최종적인 결과물에 대해서도 당사자에게 맡겨야 진정한 선택입니다. 설사, 불에 조금 데인다고 하더라도, 죽는 것은 아니고, 좋은 경험 했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으므로, 아드님이 스스로 경험한 내용에 해악만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되고 싶다고 말씀하신 '인자한 아버지, 자상한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결국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서 내 마음대로 하는 사람일까요? 조금 불안해 보여도, 걱정이 되어도 가족을 믿고 그들의 선택권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사람일까요?"

     

    나는 이 가족에게, 특히 아버지에게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내 말을 겸허하게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권위주의는 가장 바꾸기 힘든 인간의 특성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분은 위 장면 이후에 조금씩 자신을 바꾸어 나가셨다. 그리고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게 해결중심모델 핵심 가정이므로, 나는 이 아버지께서 노력하시는 모습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내가 도와 드리는 기간 내에 모든 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전혀 아쉽지가 않았다. 본인께서 각성하셨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셨으므로, 앞으로는 알아서 더, 더, 더, 바꾸어 나가실 테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배우는 원조전문가의 태도(목차)>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배우는 원조전문가의 태도(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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