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럴 수밖에 없는 좋은 이유 #1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1. 12. 12. 15:03728x90반응형
주로 사회복지사 동료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짜증이 날 때가 있다. 학생들이 지나치게 "바로 써 먹을 수 있는 지식/기술"만을 원한다는 느낌이 들 때. "도대체 왜, 사회복지사는 요기 바로 눈 앞만 바라보는가!" 마음 속으로 외치며 가슴을 두들길 때가 많(았)다. 철저하게 선생 관점에 서서,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학생이 컴퓨터 자체를 처음 배우는데 포토샵으로 그림을 그리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느낌이다. 자자... 오해 마시라. 이 짧은 글은 학생에 대한 불평을 늘어 놓으려고 쓰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반성'하기 위해서 쓰는 글이다.
해결중심모델에는 '기적질문' 같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 질문 기술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적질문을 배워서 그럴 듯하게 구사해야만 해결중심모델을 그나마 기본적으로 적용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맞다. 해결중심모델은 대단히 양식화되어 있는 질문 기술이 대단히 전면에 나와 있어서(questioning-driven), 이 질문 기술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니다. 아무리 양식화 되어 있어도 질문 기술은 기술일 뿐, 철학이나 관점은 아니다. 그러니까, 세부적인 기술과 기술 너머에 존재하는 관점, 이 두 가지 모두 중요한 셈.내가 해결중심모델 전문가로서 가장 좋아하는 질문 기술은 '기적질문'이 아니다. 내가 '좋은 이유 질문'이라고 이름 붙인 질문을 가장 좋아한다: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실 때는 그럴 만한 좋은 이유가 있을 텐데요, 그 이유에 대해서 제가 좀 알 수 있을까요? 말씀을 해 주실래요? 부탁 드릴게요." 5년 전쯤, 해결중심모델을 공동 개발하신 김인수 선생님께서 영어로 상담하신 대화록을 번역하고 있다가 이 질문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질문을 하실 때, 김인수 선생님과 내담자 사이에는 약간 언쟁이 있었다. 한 마디로, 내담자가 김인수 선생님에게 다소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보였다. 그런데 김인수 선생님은 곧바로 대단히 낯선 질문을 구사하셨다. 자신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 사람에게 나름대로 '좋은 이유'가 있을 테니, 말씀해 달라고 심지어 '부탁'을 하셨다.
사회복지사는 (아닐 때도 많지만) 주로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중첩되게 가지고 있는 분들을 만난다. 게다가 만나서 하는 직업적 업무가 '돕는 일(helping)'이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나도 모르게) 사람을 내려다 보는 시선이 생길 수가 있다. 조금 세게 말하자면, '왜 저러고 사시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경우'를 경험할 수 있다. 물론, 그냥 세상을 쉽게 살려고, 특별한 이유 없이 놀고 싶어서, 혹은 (대단히 드물긴 하겠지만) 궁핍한 삶(미니멀한 삶)이 좋아서 자발적으로 그리 살아가는 경우도 있을 터. 하지만 대개는 사람들이 선택하고 있는 사는 방식을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면만 봐서는) 긍정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간이 하는 일에는 모두 나름대로 '좋은 이유'가 있다. 본인이 알고 하든, 모르고 하든, 그 무슨 일을 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문제가 왜 생겼는지 원인 분석을 하자는 게 전혀 아니다. 인간지사 원인 분석을 한다고 반드시 잘 해결되지도 않기 마련. 원인을 분석해서 도려내자는 게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자는 거다. 공감하자는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만약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만나는 분들, 우리가 돕는 분들을 뵐 때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렇게 살고 있을까?' 라고 질문한다면, 이미 우리는 내려다 보고 있는 셈이다. 이해하지 않으려는 길로 막 나선 셈이다.
수년 전, 내가 개인적으로 처참한 일을 겪으면서 죽도록 괴로워했던 좋은 이유는? 죄책감과 실패감이 컸다. 별 일 아니라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당시에는 따를 수가 없었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듯, 내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조금 길긴 했지만) 내 방식대로 애도하는 시간을 보냈다. 충분히 시간을 보낸 만큼, 이제는 불필요하게 걸리적대는 감정 찌거기가 없다. 고로, 괴로워했던 때도, 서서히 회복해 오던 때도, 내 나름대로는 다 좋은 이유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그래야만 했던, 좋은 이유가 있었다.
다시 선생으로 느끼는 짜증 이야기로 돌아간다. 사회복지사는 바쁘다. 하루 종일 전화 받으랴, 현장에 나가서 만나고 확인하고 설명하고 때로는 애걸복걸까지 하느라 바쁘다. 책상에 앉아 있어도 바쁘다. 써야 할 서류가 너무 많다. 이런식으로는 도저히 다 표현 못할 정도로 바쁘다. 그래서 뭔가를 진득하게 배울 시간적 여유가 일단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지금 당장 여기서 바로 써 먹을 수 있는 지식/기술'을 요구한다. 원래부터 요기 눈 앞에만 볼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일을 한다.
선생와 학생, 학생과 학생들이 겪는 일상, 학생들과 지역 주민, 그리고 다시 나, 선생과 선생의 과거를 모두 겹쳐서 생각해 보았다. 간단하다. 다 나름대로 좋은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뭐든지 포기하고 주저 앉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누워 있으면 앉아야 하고, 앉아 있으면 일어서야 하며, 일어섰다면 걷고 뛰어야 한다. 다만, 지금 당장 앉지 못한다고, 일어서지 못한다고, 걷거나 뛰지 못한다고 안달복달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우선은 이해해야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좋은 이유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공감에서 출발해야 한다.
해외 고급 강점관점실천 자료를
이메일 뉴스레터로 편하게 받아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Solutionists' 구독을 신청해 주세요.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 > Personal Stor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딸에게 가르치고 싶은 세 가지 지혜 (0) 2021.12.13 그럴 수밖에 없는 좋은 이유 #2 (0) 2021.12.12 타고난 사회사업가 이야기 (4) 2021.09.16 '내 사랑' 경기를 하고 싶다 (0) 2021.09.12 그러면... 버릴까? (6) 2021.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