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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고난 사회사업가 이야기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1. 9. 1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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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고난 사회사업가 이야기: 거북이 아빠,

    동대문장애인복지관 엄준수 선생님.

     

    타고난 의사는 없어도 타고난 사회사업가는 있다. 의사가 되려면 오랜 기간 인체나 질병에 대해서 방대한 지식을 습득해야만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전문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회사업가는 약간 다르다. 물론, 인간을 사회사업으로 제대로 도우려면 인간 마음과 발달 과정, 관계 원리나 사회적 제도 등에 관한 지식을 공식적인 교육 기관에서 상당 기간 체계적으로 배워야 한다. 우리가 고등교육 기관에서 정식으로 사회사업을 배우는 이유다. 그러나 가끔씩은 타고난 태도나 관점, 세심함이 워낙 뛰어나서 후천적으로 습득하고 축적하는 지식과 정보를 가볍게 뛰어넘는 사람이 있다.

     

    며칠 전, 어떤 기관에 ‘강점관점 의사소통’을 주제로 강의를 하러 갔다가 ‘타고난 사회사업가’ 범주에 속하는 분을 만났다. 동대문장애인복지관 기획운영팀, 엄준수 선생님. 강의가 끝난 후에, 함께 앉아서 피드백을 주고 받다가 우연히 엄준수 선생님이 예전에 일하셨던 내용을 듣게 되었다. 선생님은 대학을 졸업하신 후, 경기도 모 종합사회복지관 ‘주간보호교실’에서 2년 반 일하셨다고 한다. 이곳은 정식 주간보호센터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주간보호센터는 장애인복지관 부설로 운영된다. 해당 지역에는 장애인복지관이 있긴 했지만 성인발달장애인 분들이 낮에 저렴한 비용으로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곳이 매우 적었다고 한다. 그래서 엄준수 선생님이 일하시던 복지관에서는 주간보호 서비스에 대한 폭발적 욕구를 외면할 수 없어서 주간보호교실이라는 임시방편적 서비스 체계를 선택했다고 한다. 

     

    엄준수 선생님은 주간보호교실에서 약 2년 6개월 동안 일하시면서 많은 고충을 겪으셨다. 우선, 업무 환경이 썩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정식으로 공적 예산을 투여해서 운영하는 주간보호센터가 아니라 임시방편적으로 운영하는 조직이었기 때문에 인건비를 제외하면 운영비가 전무하다시피 했고, 그래서 이용인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불가피하게 외부 공모 사업을 필수적으로 따와야 했다. 실제 운영도 무척 어려웠다. 엄준수 선생님이 주간보호교실에서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발달장애 청년 이용인이 대략 12~14 명이었다. 이중에는 언어적 소통이 어려운 이용인도 계셨는데, 어디 외부 활동이라도 나가는 날에는 열너댓 명이 동시에 엄준수 선생님에게 언어적/비언어적 의사표현을 했기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제가 일을 했던 자리가 '신입 사회복지사의 무덤'이었더라구요. 복지관에서 나쁜 의도로 만든 자리는 전혀 아니었고 나름 정규직이었지만, 예산 지원도 충분히 받지 못하는데다가 신경 쓰고 책임져야 할 이용인은 많다 보니 무척 힘들었던 거죠. 그래서 저 일하기 전까지 몇 개월 단위로 사람이 엄청나게 들락날락했더라구요. 사람이 계속 바뀐 셈이었죠."

     

    <참고> 혹시라도 오해 마시라! 엄준수 선생님이 일하시던 복지관은 '절대로' 나쁜 곳이 아니다. 오히려, 지역사회 내에 존재하던 장애인 복지 욕구를 제한된 현실 안에서 어떻게 해서든 만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한 기관이다. 다만, 그 제한된 현실 때문에, 기관도, 실무자도 어려움을 겪었을 뿐이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 대해서는 솔직히 인정하고 제대로 인식해야 조금이라도 우리 동료들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 엄준수 선생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슈퍼비전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 주간보호교실은 장애인복지관이 아니라 일반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운영했기 때문에 충분한 경험을 쌓은 전문성 있는 선배가 없었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도 물어보기가 어려웠다. 함께 일한 선배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청년 발달 장애인이 보이는 행동 특성에 관해서는 제대로 된 도움을 받거나 지도를 받기가 어려웠다는 말이다. 그래서 엄준수 선생님은 혼자서 관련 서적을 찾아가면서 일하셨다고 한다. 예컨대, 장애 아동을 돕기 위한 개별화교육계획(IEP) 서적을 구매, 더듬더듬 해독(?)하면서 원리를 파악하고 이용인의 발달 수준(청년 초기)에 맞추어서 혼자서 응용해 보려고 애쓰셨다.

     

    엄준수 선생님은 이 대목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사례를 말씀해 주셨다:


    "그때 이용인 분 중에서 이런 분이 계셨어요. 제가 커피숍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으로 가져와서 마시면요, 잠깐 한 눈 파는 사이에 그걸 먹어 치우셨어요. 커피를 엄청나게 큰 컵으로 마실 때도, 5초도 채 안되는 사이에 그걸 다 삼키시더라구요.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요리 활동을 하면 비닐봉지에 설탕이나 소금 같은 조미료가 담겨 있잖아요. 그걸 또 한 방에 삼키셨어요. 여차 하면 입에 털어 넣으시더라구요. 처음에는 정말 미치겠더라구요. 제가 이 분에게만 신경쓸 수가 없는데 과자나 음료수를 먹을 때마다, 조미료 같은 걸 사용할 때마다, 말 한 마디 없이 먹거나 버리시니까요."


    하... 대략 난감하셨을 것 같긴 하다. 설탕 봉지를 입에 한 방에 털어 넣는 장면, 상상만 해도 당황스럽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이 분에 대해서 이해가 넓어지니까 몇 가지 의미 있는 정보가 보이더라구요. 이분은 평소에 복지관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엄청나게 성실하게 하시는 분이셨어요. 기관 안에서 페트 병이 보이기만 하면 바로 분리수거 하시고... 그리고 또 복지관 안에 비품 같은 거 있잖아요? 누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늘 뭔가 정리하고 계시더라구요. 책장도 정리하시고, 여러 가지 물건도 정리하시고요. 이렇게 다소 강박적으로 정리를 하시는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생각해 보니, 음식물을 허락 없이 먹어치우거나 버리는 행동은 사실 음식물 자체에 관심을 보이는 행동이라기보다는, 그 음식물이 담겨 있는 용기(캔, 봉지, 병)을 분리수거하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겠더라구요. 이 분이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정리/정돈을 무척 강조하셨고, 분리 수거하는 훈련(?)을 특별히 많이 시키셨다고 해요. 이런 사연까지 들으니 더욱 이해가 되더라구요."


    이제는, 언어적으로 소통이 어려운 이용인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엄준수 선생님이 관찰하신 내용이 놀랍다!


    "그래서 이렇게 대처했어요. 먼저, 이용인이 활동하시는 공간에 분리수거를 할 수 있는 물건을 치웠어요. 커피나 음료수 같은 액체를 담을 수 있는 용기는 가급적 치웠죠. 그랬더니 돌발적인 행동이 상당히 줄어들었고요. 요리 활동처럼 불가피하게 봉지에 든 조미료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조미료를 뚜껑이 있는 양념통에 미리 담아 둬서, 이걸 먹어버리는 행동을 감소시켰어요. 그러니까, 정말로 돌발행동이 줄어들더라구요. 그리고 이건 재미있는 부분인데, 결과적으로 이 분이 남의 음식/음료수를 강박적으로 탐하는 횟수가 줄어드니까, 음식 섭취량이 줄어들었고 따라서 살이 빠졌어요. 우리가 처음에 만났을 때는 몸무게가 120kg이었는데, 나중에는 100kg이 되었으니 체중이 20kg 가까이 빠진 거죠."

     

    요즘 장애인복지계에서 최신 트렌드는 단연 인간중심계획(PCP: Person-Centered Planning)이다. 이 PCP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도움이 되는 도구 중에 OPD(One Page Descriptions)가 있다. OPD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이 사람에게 무엇이 중요한지(이 사람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하여 이 사람을 제대로(이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도우려면 지원자(supporters)가 어떤 태도로 어떤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정리해 놓은 한 쪽짜리 보고서다. 그래서 예컨대 어떤 장애인이 (비장애인이 보기에) 이상해 보이는(혹은 공격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했을 때, 미리 작성한 OPD 정보를 참조하면서 세심하게 관찰하면, 해당 장애인이 그 이상해 보이는/공격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어떤 목적으로 하는지를 (직접적인 언어적인 정보 없이도) 파악할 수 있다.

     

    엄준수 선생님께서는 PCP나 OPD 같은 개념과 도구를 미리 알지는 못하셨던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거의 완벽하게 실천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장애를 가진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이 겉으로 보이는, 비장애인이 피상적으로 보면 이상하게 보이는 행동 너머에 존재하는,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 본인에게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긍정적인 바람과 의도에 관심을 가졌다. (2) 긍정적인 시선을 대단히 세심한 관찰과 연결지었다: 단순히 장애인을 긍정적으로 바라만 보지 않고 실제로 이상한 행동이 가지는 의미를 포착해 내기 위해서 일상 속에서 예민하게 관찰했다. (3)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장애인의 이상한 행동을 대안적으로 해석하고 대안적 방법을 실행했다.

     

    엄준수 선생님이 놀라운 까닭은, 본의 아니게 열악한 상황 속에서, 경험 많은 선배들 도움이 없이, 이 전체 생각, 관찰, 실천 과정을 혼자서 수행하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장애를 가진 사람이 보이는 부정적 행동 너머를 보시고, 긍정적인 의도를 섬세하게 포착해 내셨다는 사실이 대단히 놀랍다.

     


    엄준수 선생님: "제가 거북이를 키워요. 어릴 때부터 키웠는데 지금도 10 마리 정도 가지고 있어요."

    나: "근데, 거북이가 선생님을 알아 보나요?"

    엄준수 선생님: "음... 잘 모르겠지만, 저란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아요. 누군가 밥을 주고 돌봐준다는 건 알겠지만요. 후후."

     

    이 글을 마무리지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엄준수 선생님이 키워오셨다는 거북이 생각이 났다. (사실 엄준수 선생님은 동물 애호가로서 강아지도 키우고 계신다.) 따로 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왠지 거북이가 엄준수 선생님을 설명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북이처럼, 겉으로 보기에 전혀 변화가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동물에게서 매일매일 미세한 변화를 발견해 내는 분이시라면? 사람은 거북이보다 훨씬 더 큰 존재인데,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매일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 이유가 더욱 없다. 그러니 거북이 아빠인 엄준수 선생님이 장애를 가진 사람이 보이는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신 결과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변화에 대해서 엄준수 선생님이 품고 계신 생각을 인용한다:

     

    "저는 장애인이 잘 변화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겠어요.

    변화는 장애인이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관점을 바꾸면(욕심을 줄이면)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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