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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선아, 라면 먹자~
    지식 공유하기(기타)/돌아오라 1988(공감 텍스트) 2022. 1. 12.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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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 주인: 라면 나왔어~
    선우: 예. (일어나다가 덕선이를 보고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올린다) 덕선아 라면 먹을래? 하나 줘? 
    정환: (짜증내며) 야!
    덕선: 안 먹어~ (씨)

     

    (선우, 정환, 동료이가 가고 난 후)


    미옥: 쟤 쌍고 전교 회장 맞지? 
    덕선: 누구? 선우? 키 큰 애? 왜? 
    미옥: 걔가 너 좋아하는 거 같은데?

    덕선: (납득이 안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미옥: 결정적 증거. (자현 어깨에 손을 올리며 선우 흉내를 낸다) 라면 먹을래? (미소 지으며) 축하해 덕선아. 너, 남자친구 생겼어. 

     

    쌍문동 아이들이 방과 후에 자주 찾는, 그 이름도 아련한 '브라질 떡볶이.' 오늘은 덕선이랑 미옥, 자현이가 수다를 반찬 삼아 열심히 떡볶이를 흡입 중이시다. 그리고 바로 옆 테이블에는 선우, 정환, 동룡이가 이제 막 라면을 시키고 있다. 라면 나왔다는 식당 주인 말을 듣고 일어섰던 선우. 그냥 앉으려다가 덕선이 어깨에 손을 얹고 '라면 먹을래?' 라며 다정하게 말을 붙인다. 역시 착하고 바른 친구...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돈은 부자 친구 정환이가 낸다. (남의 돈으로 자기가 생색을 내다뉘? 오핸 마시라. 너무 친한 사이라서 서로 굳이 양해를 구하지 않는 상황.) 

     

    그런데 정환이네가 가고 난 후에, 미옥이와 자현이가 덕선이를 추궁(?)한다. 공부도 잘 하고, 키도 크며, 리더십도 있는 쌍문고등학교 전교회장 선우가, 덕선이를 좋아한다는 주장. 덕선이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지만, 미옥이가 여러 가지 증거를 대고, 덕선이는 조금씩 설득(?)된다. 미옥이가 다소 과한(!) 주장을 하긴 하지만: "축하해, 덕선아. 너, 남자친구 생겼어." 

     

     

    (덕선이네 가족은 저녁식사를 하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선우: (집밖에서) 덕선아~ 성덕선~ 

    덕선: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보라: 우리 선우 문턱 닳겠다.
    덕선: (급하게 옷을 갈아 입고 화장한다)
    선우: 안녕하세요? 
    덕선 모: 선우 왔나? 
    덕선 부: 어, 언능 와서 한 그릇 해. 
    선우: 아니에요. 저 택이 방에서 애들이랑 라면 먹... (부자연스럽게 화장한 덕선을 보고 놀란다)
    덕선 부: 염병할 년, 너 그 몰골로 이 시간에 어딜 가려고 그래? 
    덕선: (태연하게) 라면 먹으러. 가자 선우야. 
    덕선: (나레이션) 일천구백팔십팔년 여름, 성덕선 인생 최초의 사랑,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누구야~ 노올자~!" 이런 식으로 친구를 부르는 방식... 낯설게 정겹다. 선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덕선이랑 함께 놀아서 이렇게 놀자고 부르는 게 전혀 낯설지 않다. (지금은 선우도 낯설다고 느끼겠지만. 후후.) 그런데 덕선이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미옥이가 선언한 이후로, 덕선이도 선우에게 마음이 쏠린 상태. 청소년기 소녀의 로맨스가 선우에게 열렬하게 불타고 있는 중! 그리하여 우리 덕선이는 선우에게 잘 보이려고 다다다다다다다~ 움직이면서 번갯불에 콩볶듯이 얼른 옷을 갈아입고, 떡칠하듯 얼굴에 화장(?)을 한다. 

     

    그 사이, 선우랑 덕선이네 가족은 인사를 나누고, 밥 먹고 가라고 인사를 하고, 아니라고, 택이 방에서 라면 먹을 거라고 이야기 하는데... 갑자기 헉! 경극배우처럼 얼굴을 허옇게 분으로 칠한 덕선이가 챙챙챙~ 소리와 함께 등장한다. "가자 선우야." 선우에게 빠진 덕선이와 덕선이가 무서운 선우가 약간 어색하게 덕선이네 집 현관을 나선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레이션. "일천구백팔십팔년 여름, 성덕선 인생 최초의 사랑,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덕선이의 첫사랑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니, 나에게도 어떤 옛 기억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른다.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아니지만, 나름 재미있는 이야기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아마도... 상병이었을 때였던 것 같다. 중대 안에 돌아다니던 모 일간지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바로 모 동물원에서 일하고 있던 앵무새 조련사 인터뷰 기사였다. 그런데 신문에 실린 사진 속 그녀가 너무 예뻐 보여서 홀딱 반하고 말았다. 

     

    나는 무작정 편지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가 어디서 일하는지는 확실히 알았으므로, 직장에 편지를 띄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편지만 쓰면, 관심을 끌지 못할 것 같아서 꾀를 하나 냈다. 당시 우리 소내에는 미대를 다니다가 입대한 후임병이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신문 사진을 주고 그녀 사진을 손그림으로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억지로 시키진 않았다. 그도 상당히 재미있어 했다.) 

     

    편지와 그림을 담은 봉투가 군사우편을 통해서 세상밖으로 날아간 후, 한 달 정도 기다렸다. 너무 기다려서 눈이 빠지는 줄 알았다. (실제로 빠졌던 것 같기도 하다.) 소대장님 손에 들려 오는 편지가 빨리 도착하기를 학수고대했다. 그리고... 실제로... 답장이... 왔다! 한 달만에 그녀가 답장을 보내왔다. 우와~ 믿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보냈던 건데...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나는 당시 25세였는데, 그야말로 모태 쏠로였기에 제대로 된 연애 경험도 없었고, 따라서 어렵게 찾아온 이 좋은 기회를 어떻게 살려야 할지도 잘 몰랐다. 솔직히, 이 다음 이야기는 쓰고 싶지가 않다. 내가 엄청나게 헤매다가 딱지 맞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음... 잠이 부족한 시절이었는데도 밤을 새워서 침낭 속에서 불을 켜고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고... 휴가 때 동물원으로 찾아갔던 기억도 난다. 

     

    동네 친구였던 선우가 어느날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맨날 가던 택이네 방에 라면 먹으러 가면서도 화장을 하고, 평소와 다르게 다소곳하게 걷고... 첫사랑을 건너기 시작한 덕선이의 순수한 모습이 군대 시절, 신문에 실린 앵무새 아가씨에게 무작정 편지를 띄워서 만나기까지 했으나, 너무 떨다가 일을 그르친(?) 내 모습 같아서 이 장면을 보면서 한참을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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