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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 일등 했어요지식 공유하기(기타)/돌아오라 1988(공감 텍스트) 2021. 12. 29. 12:04728x90반응형
덕선 모: 아 근데, 학급비는 와 걷었는데?
정환 모: 몰라, 말 안하던데?
선우 모: 담임 샘 결혼한단다, 국사 샘하고.
덕선 모: 맞나? 처녀 샘이었는갑네?
선우 모: 그럼, 연애한지 일 년 넘었단다. 원래 학교에서 이뻐갖고 억수로 인기 많았거덩. 둘이 몰래 연애를 했는데, 도남 사거리에서 둘이 손 붙들고 지나가다가 마이콜한테 딱 걸려뿐거지.
덕선 모: 마이콜은 또 누고?
선우 모: 아들 반 총무! 그 아가 얼굴 시커멓고, 입술이 요래 두꺼버가지고. 그 왜 둘리에 나오는 마이콜맹키로 생겼다고 별명이 마이콜이잖아.
덕선 모: 아하하... 참말로 아이고, 밸 걸 다 안다 밸 걸 다 알아.
선우 모: 선우가 와서 다 이야기를 하니까. 우리 둘이는 또 비밀이 없거덩. 으히히히...
정환 모: 그게 아들 피곤하게 하는 거야...
선우 모: 성님, 지가 와서 먼저 이야기를 하다니깐. 집에 와 갖고 암말도 안하는 정환이보다야 백 배 낫다. 성님은 진짜 심심해서 어떻게 살어?
정환 모: 할 말은 다 해.
쌍문동 삼총사 어머니들 사이에 이야기 장이 열렸다. 세심하고 친절한 모범생 선우는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전부 이야기하나 보다. 선우에게 들은 담임 선생님 결혼 이야기를 전하다가 정환이 어머니와 살짝 언쟁이 붙었다. 정환이 어머니는 선우 어머니가 부럽다. 이유는? 자기도 막내 아들과 좀 더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듣겠다는 게 아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이다. 무척 작고 소박한 목표다. 그만큼 정환이는 자기 이야기를 안한다. 남들보다 조금 덜 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머니가 보기엔) 아예(?) 말 자체를 안 해 버린다. 그래서 서운하고 아쉽다.
정환 모: 아들, 그래서 덕선이는 어느 나라야?
정환: 보시면 알아요.
정환이 어머니는 갑자기 덕선이 이야기는 왜 하는 걸까? 같은 집에 세 들어 사는 덕선이가 88올림픽 개막식에 피켓 걸로 나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덕선이 친구인 정환에게 물어본 거다. 어머니 딴에는 자연스럽게 정환에게 접근하려고 TV 뉴스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화제를 포착한 셈. 그러나 정환이는 어머니 얼굴도 안 보고, 미세한 표정 변화 없이 무뚝뚝하게 말한다: "보시면 알아요."
정환이 마음을 들여다 본다: "아니, 어색하게 엄마랑 무슨 대화를 해요? 제가 뭐 애도 아니고 제 생활에 대해서 어째서 시시콜콜 다 이야기 해야 하냐구요. 그리고 제가 굳이 이야기 해도 이해 못하실 걸요? 한 번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 모든 걸 다 설명해야 하는데, 아이구... 그리고요 전요, 손발 오글거리는 말 못해요. 안 해요. 아들 사랑하시는 엄마 마음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정환 모: (정환 방문을 슬며시 열고 들어오면서) 뭐 해?
정환: (쳐다 보지도 않는다) 공부요.
정환 모: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
정환: 왜요?
정환 모: 아니야.
(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흐른다)
정환 모: 정환아.
정환: 네.
정환 모: 엄마한테 할 이야기 없어?
정환: 없는데요.
(두 사람 사이에 또 다시 적막이 흐른다)
정환 모: 너 시험 봤다며?
정환: 아, 예... 봤어요.
정환 모: 잘 봤어?
정환: 네.
(두 사람 사이에 또 다시 적막이 흐른다)
정환: (뒤늦게 엄마를 바라보면서 대단히 어색하게) 아, 예... 일등 했어요.
정환 모: 근데, 왜 엄마한테 말 안해?
정환: 아, 그거 뭐 내신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자고로 말하지 않는 행위 자체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오고가는 대화 분량 자체가 대단히 적은 두 사람. 말이 없이 오고가는 두 사람 속마음을 다시 적어 본다.
정환 모: (정환 방문을 슬며시 열고 들어오면서) 정환아, 나 너한테 할 말 있다. 시간 좀 있니?
정환: (쳐다 보지도 않는다) 시간 없어요. 어색하게 왜 그러세요.
정환 모: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짜식이 초장부터 그렇게 벽을 치면 엄마가 섭섭하지.
정환: 뭐, 특별히 하실 말씀이라도...? 중요한 이야기면 들을게요.
정환 모: 특별한 일은 아니고... 엄마가 조금 속상해서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흐른다)
정환 모: 정환아.
정환: 네.
정환 모: 너하고 속을 터 놓고 대화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정환: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없을 것 같은데요... 저, 아무 일도 없어요.
(두 사람 사이에 또 다시 적막이 흐른다)
정환 모: 너 시험 봤다며?
정환: 아, 예... 봤어요. (아... 시험본 거 때문에 그러시는구나. 잘 보긴 했는데...)
정환 모: 잘 봤어? (이 녀석아, 너한테 중요한 일인데, 그런 이야기를 남한테 들어야겠니?)
정환: 네. (별 거 아니에요.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두 사람 사이에 또 다시 적막이 흐른다)
정환: 제가 말씀 안 드려서 서운하셨나보네요? 잘 보긴 했어요. 이번에도 일등했어요.
정환 모: 근데, 왜 엄마한테 말 안해?
정환: 아니 뭐... 모의 고사라서 내신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별로 중요한 시험도 아닌 것 같아서요. 시험 잘 봤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것도 좀 우습고요.
정환 모: 엄마는 다 알고 싶은데. 엄마한테 얘기 좀 해 줘. 엄마는 선우 엄마가 얼마나 부러운 줄 알어? 선우는 다 이야기 한대. 다는 아니더라도. 네가 생각해서 몇 개만... 엄마한테 얘기 좀 해. 엄마, 아줌마들하고 있을 때 쪽팔려서 그래. 알았지? 대답해~
정환: 네, 알겠어요.
정환 모: 공부해. (정환을 어색하게 안아주고 나가려는데...)
정환: 저기, 엄마.
정환 모: 왜?
정환: 저, 운동화 좀 사 주세요. 잃어버렸어요.
정환 모: 아들! 오늘 엄마랑 운동화 사러 갈까?
정환: 엄마, 아니에요. 돈만 주세요.
정환 모: 응, 알았다.
순간적으로 정환이 어머니가 속마음을 아들에게 터 놓는다. 확실히, 정환이 어머니는 많이 못 배웠고 그래서 말도 교양 떨면서 하지 못한다. '쪽팔린다'는 비속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한다. 하지만 정환이 어머니는 자신이 원하는 바, 막내 아들에게 원하는 바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언어로 명료하게 표현할 줄 안다. 아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분명하게 말한다.
인간중심모델을 만든 칼 로저스 박사가 공감(empathy) 개념을 설정한 이래로, 서양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공감 공식이 있다: (1) 상대가 진정으로 원했던 바(혹은 긍정적인 성장 욕구)를 포착해서 구체적으로 말한다. (2)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이루어질 수 없는 현재 상황에 대해서 중립적으로 언급한다. (3) 그래서 결과적으로 마음 속에서 느껴지는 여러 감정을 감정 단어로 풍부하게 말한다.
정환이 어머니 대사를 뜯어 보면, 이 세 가지 요소가 다 들어 있거나 암시되어 있다: (1) 정환 어머니가 진정으로 원했던 바는?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마음을 느끼고 싶다. 아들과 조금만 더 솔직하게 속 마음을 터 놓고 소통하고 싶다. 친구들에게 우리 좋은 모자 지간을 보여주고 싶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2) 정환 어머니가 진정으로 원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묘사한다면? 막내 아들에게 일어난 의미 있는 일을 남을 통해서 들었다. 아들이 나를 피하고 싫어하고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친구들 앞에서 내가 좋은 엄마 같지 않아 보이는 듯하다. (3) 창피하다(쪽팔린다). 속상하다. 답답하다. 섭섭하다. 낙담이 된다. 기운이 빠진다.
만약에, 우리가 정환이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공감 공식에 맞춰서 전문가스럽게 공감을 해 본다면? "아, 그러니까 어머니께서는 평소에 막내 아들과 조금 더 솔직하게 속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 나누면서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고 싶으시고, 친구들에게도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으신데, 막내 아들에게 일어난 의미 있는 일을 남을 통해서 듣고 보니 아들이 엄마를 피하려는 것 같고, 친구들 앞에서 모자지간이 소원한 것처럼 보여진 듯 싶어서, 창피하고, 속상하고, 섭섭하시군요?"
나도 안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렇게까지 길고 공식적으로 공감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길고 공식적인 상황을 떠올려 보고 일정한 이론적 개념에 기초해서 공감해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중심에 놓고 공감하는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슬픈 상황을 보면서 '아, 슬프시겠네요' 라고 말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가 사람 마음과 관계를 다루는 전문가라고 스스로 칭하려면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핵심은 찌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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