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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미친년, 달리다
    지식 공유하기(해결중심모델)/해결중심 고급 테크닉 2023. 5. 17.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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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결중심상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아버지 모델이 있고, 할아버지 모델도 있다. 그리고 특히 할아버지 모델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할아버지 모델을 만든 사람이 상담 업계에 처음으로 실천적으로 강점관점을 도입한 위대한 치료자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이름은 밀턴 H. 에릭슨(Milton H. Erickson) 박사. 제대로 의학 교육을 받은 정신과 전문의이자, 고등학교 시절부터 최면(트랜스 상태)에 심취해서 눈 뜨고 최면을 거는 간접 최면을 평생 연구/실천한 최면 대가이자, 우주 대천재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 박사와 함께 가족치료 분야 창설에 지대한 공헌을 한 선구자. 

     

    글 내용이 어려워지니, 에릭슨 박사가 어떻게 정신질환자를 혁신적으로 치료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하겠다: 한 번은 에릭슨 박사가 일하던 주립 정신병원에 끝없이 횡설수설을 늘어놓는 환자가 입원했다. 이 환자는 앞 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을 쉬지 않고 늘어놓는 증상을 보였다. 에릭슨 박사는 이 환자를 몇 달에 걸쳐서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환자가 내뱉는 앞 뒤가 전혀 맞지 않는 횡설수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충분히 기록이 쌓인 후에는 이 횡설수설 화법을 그대로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자 마침내는 이 환자가 횡설수설 말하면 거의 비슷하게 횡설수설 답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 정신병원에서 앞 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횡설수설 화법을 일상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전에는 한 사람 뿐이었는데, 이젠 두 사람이 되었다는 뜻. 에릭슨 박사는 이 환자를 만날 때마다 그동안 관찰하고, 기록하고, 정리해서, 연습한 횡설수설 언어를 적극적으로 구사했다. 의사와 환자가 만나서 서로 말이 안 되는 횡설수설을 주고 받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헌데 여기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난다. 어느날 에릭슨 박사가 늘어 놓는 횡설수설 이상한 언어를 듣고 있던 그 환자가 이렇게 말했다: "박사님, 제발 말이 되는 말을 하세요." 그러자 에릭슨 박사 왈: "그래요? 알겠어요. 그런데 반갑습니다. 저는 밀턴 에릭슨입니다."

     

    이 환자는 몇 개월 뒤에 병원에서 퇴원했다고 한다. 자, 어떤가? 너무나 마법 같은 이야기라서 믿을 수가 없는 수준 아닌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전부 사실이다. (에릭슨 박사는 평생 치료 사례를 400여건 세상에 발표했는데, 너무 마법처럼 환자를 치료한 이야기 뿐이라서 믿기가 어렵지만, 모두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위에 소개한 사례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그대가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그가 구사하는 언어를 먼저 배우라. 단순히 입으로 하는 말을 배우라는 뜻이 아니다. 그가 살아가는 모든 방식, 예컨대, 걷는 방식, 숨 쉬는 방식 등 세세한 방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배우라는 뜻. 

     

    이야기를 바꿔서, 이 글 제목('두 미친년, 달리다')과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우선, 어떤 아파트 풍경을 상상해 보시라. 낮에는 사람들이 일하러 나가버려서 다소 한산해지는 풍경. 이 한산한 풍경 사이에서 미친듯이 뛰어가는 두 여성이 보인다. 한 사람이 앞에서 뛰어가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이 뒤쫓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얌전하게 뛰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미친년처럼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크게 지껄이면서 뛴다. 앞에서 뛰던 여성이 잠시 멈추면 뒤에서 좇아가는 여성도 잠시 멈추고, 앞에서 다시 뛰기 시작하면 뒤에서도 다시 뛴다. 이 제목처럼, 두 미친년이 달리고 있는 장면이다. 

     

    여기 이 두 사람은 누굴까? 먼저, 뒤에서 좇아가는 사람은 모 청소년 쉼터에서 일하시는 안혜연 사회복지사다. 앞에서 뛰어가는 사람은 안혜연 선생님께서 도우시는 쉼터 입소 청소년 A이다. 대략 짐작할 수 있듯이, A는 조현병 증세가 있다. 이제 의문이 풀린다. A는 아파트 인근 상가에 있는 쉼터를 답답하게 느끼다가, 대낮에 아파트촌을 활보하면서 환각 증세(환청 및 환시)를 경험하던 중이었고, 안혜연 선생님께서는 A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좇아가면서 A 흉내를 내시던 중. 안혜연 선생님께서는 A가 달리면 따라서 달리셨고, A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말을 하면 그대로 따라하셨으며, A가 멈추면 따라서 멈추셨다. 

     

    자, 오해나 걱정은 마시라. 안혜연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A는 평소에 너무 착하고 사랑스러운 친구이며, 전혀 위험하지 않다. 조현병 증세가 와서 환각을 경험하면서 다소 이상한 소리를 내며 이상한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결단코' 위험하지는 않다. (평소에 위험한 행동을 하는 친구라면, 보호하는 사회복지사가 이렇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안혜연 선생님께서 미친년처럼(?) 이 친구를 좇아간 이유는? 우선, A가 위험하지 않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어쨌든 A는 자신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정말로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A가 하는 행동을 이해하는(이해하려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다. 

     

    한참을 그렇게 횡설수설하면서 뛰어가던 A도 환각 증세가 사라지면 달리기를 멈추고 안정을 되찾는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안혜연 선생님께서는 아파트 놀이터 같은 곳 벤치에 앉아서 A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A의 몸과 마음을 100% 보호하겠다는 생각으로 그 분위기에 맞춰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고 한다. 나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A였다면 어떻게 느꼈을까? 우선, 약간 놀랐을 듯하다. 하지만 안심하지 않았을까? 정확한 언어로 생각하지는 못했겠지만, 느낌으로 직감으로, 나를 이렇게까지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 마음을 분명히 감지했을 듯하다. 사람이니까. 진심이니까. 

     

    자, 다시 한 번 더, 오해나 걱정은 마시라고 적겠다. 안혜연 선생님은 나와 함께 거의 3년 가까이 에릭소니안 접근(밀턴 에릭슨 박사가 환자를 치료한 방식을 제자들이 체계화한 접근)과 해결중심상담을 포함하는 강점관점실천을 깊이 공부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공부한 내용을 끝없이 현장에 적용해 보시고, 가장 안전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접근 방식을 동료들과 나누는 뛰어난 실천가시다. A 뿐만 아니라 안혜연 선생님 본인이나 다른 그 어떤 누구라도 피해가 돌아온다면 절대로 저런 방식으로 개입하지 않으실 분이다. 수개월 동안 A를 지켜보면서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잠시 미친년(?)이 되기로 결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겉모습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그리고 이런 개입 방식을 쉽게 따라해서도 안 된다. 왜 그렇게 했는지, 그렇게까지 하는 마음을,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간단하다. 클라이언트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하늘에 닿았다. 클라이언트를 관찰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사람 속으로 직접 뛰어 들어가서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실제로도 지나가는 행인이 거의 없었다지만, 혹시나 몇 명 있었다고 해도 별로 상관은 없었을 터. 안혜연 선생님께서는 오로지 보호해야 할 청소년 A만 보셨을 터. A의 마음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미친 짓도 기꺼이 감수하셨을 터.

     

    그대는, 클라이언트를 돕기 위해서 어떤 선한 미친짓(?)까지 해 보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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