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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계속 울었다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7. 6. 07:27728x90반응형
“OO아, 너 얼굴 한번 만져 봐도 돼?”
나는 성인이 된 남자애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안았다.
그리곤 ‘잘 컸구나’ 하며 등을 토닥였다.
이 대목까지 읽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순식간에 시야가 흐려졌다. 참을 수가 없었다. 펑펑 울 때 '수도꼭지 틀어 놓은 듯 눈물이 흐른다'고 표현하는데, 딱 그 상황이었다. 안 되겠다 싶었다. 피드백을 쓰다 말았다. 나도 성인이 된 남자애(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그리곤 계속 울었다.
'성숙을 담는 글쓰기, 회전목마.' 강점관점실천연구소가 인천시사회복지사협회와 함께 손을 잡고 회기당 3시간씩 총 8회기에 걸쳐서 글쓰기 클래스를 열었다. 어제(7월 5일)는 일곱 번째 수업을 진행했다. 지난 주에 학생 분들께서 제출하신 글을 함께 읽고 함께 피드백을 나누었다. 모두들 눈부시게 잘 쓰셨는데, 나는 특히 마지막 글이 좋았다.
이근자 사회복지사께서는 30년 동안 인천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셨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방치되는 어린이를 두고 볼 수 없어서 직접 센터를 설립하시고 마음 맞는 동료와 함께 헌신적으로 일하셨단다. 그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어린이를 만나셨을까. 가끔씩 이근자 선생님 손길을 받은 어린이가 성인이 되어 눈앞에 선다고 한다. 그 중 한 사람을 만난 이야기를 글로 쓰셨다.
지역아동센터 행사에서 A를 만나셨단다. 누가 불러서 뒤를 돌아보니, 어린시절 이근자 선생님께서 운영하신 지역아동센터를 다닌 A였단다. 근처 지역아동센터에서 야간교사로 근무하는데 행사에서 이근자 선생님을 한 눈에 알아보고 인사를 드린 상황. 그런데 이 순간 이근자 선생님께서는 A의 얼굴을 만지셨다. 세월이 뭍어있는 따뜻한 손이 마치 내 얼굴에 닿은 듯하여, 눈물이 터졌다.
우리집은 가난했다. 80년대 중반, 우리집은 아직 논밭이 보이던 위성도시에서 서울로 이사왔다. 일자무식 아버지는 어떻게든 아들만은 제대로 공부시키겠다는 일념으로 큰 빚(4,500만원)을 지면서까지 이사를 감행하셨다. 관공서 기계실에서 쥐꼬리만한 월급 받는 하급 공무원으로 일해서 다섯 식구가 겨우 먹고 살았는데, 갑자기 감당 못할 빚더미를 선택한 상황.
정직하고 순진하신 부모님이 선택하신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안 먹고 안 쓰기. 쉽게 말해서, 우리집은 전형적인 '하우스푸어'였다. 그냥 집만 있고, 생활은 완전히 '거지'같았다. 서울로 와서 공부도 조금 하고 결국 나중에 대학도 잘 진학했지만,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완벽하게 상상력이 거세되어 생기가 전혀 없는, 짓밟힌 풀 같았다. 그 시절 가장 흔했던 저렴한 합성 음료, '쿨피스' 한 모금도 마음껏 마시지 못했다.
부모님은 빚을 갚느라 늘 일하시거나 아니면 피곤에 쩔어서 누워 계셨다. 그래서 우리 삼남매는 어른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특히, 나는 내가 '정서적으로 고아처럼 컸다'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너무 불안했고, 너무 답답하고, 너무 외로웠는데,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그 시절 부모님께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충분히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내 문제가 급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보니, 나는 나 자신을 보살피고 사랑하는 법을 전혀 알지 못하는 '껍데기 인간'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지 못했기에 늘 살얼음 위를 걷듯 불안했다. 모든 원인이 과거에만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나는 이런 불안감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나중에 몹시도 끔찍하게 이혼 사건을 겪었다고 믿는다.
이근자 선생님 글을 읽으면서, 과거에 내 삶을 완벽하게 지배했던 불안감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어째서 A가 행사장에서 이근자 선생님을 불러 세웠는지, 어째서 이근자 선생님께서 A의 얼굴을 감싸 안으셨는지, 어째서 이근자 선생님께서 사회사업을 해 오셨는지, 마지막으로, 어째서 내가 사회사업을 공부하고 가족치료를 공부했는지 완벽하게 이해가 되었다. 이 모든 장면이 겹쳐져서 눈물이 나왔다.
내게도 그런 어른이 있길 원했다. 나를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보살펴 주는 어른이 있길 원했다. 함께 밥 먹고 함께 웃고 함께 울어줄 어른이 필요했다. 부모님께서는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오셨지만, 그래서 충분히 인정해 드려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께서 나를 정서적으로 보살펴 주신 기억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내가 존경할 만한 어른을 찾아 헤맸나 보다. (판타지다. 그런 어른은 없다.)
내가 찾은 방법은, 내가 나를 안아주는 방법이다. '내가 나를 안아준다'고 쓰니 약간 낯이 간지럽지만, 이는 물리적인 행위가 아니라 정신적인 노력이다. 내가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내가 떠올린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행위가 바로 '내가 나를 안아주는 방법'이다. 그래서 이근자 선생님 글을 읽으며 눈물이 날 때 그냥 넋 놓고 울었다. 울고 싶은 마음을 안아 줬다.
그리고 아직도 많이 서툴고 부족하지만, 내가 창설한 가족을 안아 주는 방법을 선택한다. 여전히, 누가 안아주기만을 바라는 고아 같은 아이로 남을 순 없다. 이젠 나도 늘 생각하고 안아 줘야 할 사람이 생겼으니까. 토끼 같은 아내와 강아지 같은 딸. 나에게 커다란 행복을 주는 두 사람.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이 두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고 싶다. 그래서 아내를, 내 딸을 꼭 안아 준다.2023년 7월 6일 새벽 6시, 이재원 씀.
덧붙임: 아름다운 글로 영감을 주신 이근자 선배님께 감사합니다. 선배님 덕분에 제 삶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선배님께서 30년 동안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세상을 구원해 오셨다고 믿습니다. 은퇴를 앞두신 선배님 앞길에 꽃을 뿌리며, 머리 숙여 존경을 바칩니다.
<설명 단락을 쉽게 쓰기 위한 만능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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