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527)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3. 7. 21. 09:53728x90반응형
전문가로서 해결중심상담을 가르치다 보면, 가끔씩 사람들이 해결중심 질문을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를 교묘하게 꼬셔서 우리 말을 듣게 만드는 비법' 쯤으로 여기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이럴 때, 미리 준비한 '우영우 동영상'을 튼다. 내가 트는 장면을 한 번 보자.
<플래시 백: 영우가 10살 무렵으로 돌아간다>
아버지: (골목에서 영우룰 찾으면서) 영우야~ 영우야~ 영우야~ 영우야~
슈퍼 주인: (평상 위에 누워서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영우에게) 자, 이거 까까. 너, 자꾸 울면 경찰 아저씨 부른다. 경찰 아저씨 오면 떼끼 이놈 한다.
아버지: (골목길에서 영우를 찾다가 두 사람을 발견한다) 영우야!
슈퍼 주인: 아 쬐끄만 게 어찌나 목적이 큰지, 내 귀청 나가는 줄 알았네.아버지: (단호하게 울고 있는 영우에게) 우영우씨, 이 행동은 인근 소란에 해당합니다. 당장 뚝 하지 않으면, 경범죄 및 오복슈퍼 업무방해죄로 신고하겠습니다.
영우: (갑자기 울음을 그치고 아버지 손을 잡고 나선다.)
아버지: 우리 집에 가서 (네가 좋아하는) '경범죄 처벌법' 읽자.
우리가 클라이언트를 움직이고 싶은 마음은 '힘'이다. 물리적으로 작동하는 힘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작동하는 힘이지만, 어쨌든 힘은 힘이다. 그래서 어떤 대상에 힘이 작동하면 자연스럽게 반작용이 생긴다. 우리가 누구를 밀면,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사람은 오히려 나를 밀고,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사람이라도 밀리지 않으려고 버틴다.
만약, 그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밀기 위해서 힘을 좀 더 많이 쓴다. 그러면 그는 좀 더 적극적으로 버티고, 우리는 더욱 더 강력하게 밀게 된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까? 두 가지다. 첫째,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서 억지로 움직이는 방법. 둘째, 내 힘을 빼고 그가 존재하고 싶은 방식을 존중하는 방법.
위에서 인용한 우영우 장면은 이 두 번째 방법을 대단히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오복 슈퍼 주인장은 평상에 널브러져서 우는 영우에게 겁을 주는 방식으로 상황을 통제하려고 시도했다. 결과는? 영우는 오히려 더 세게 울부짖는다. 반면에, 영우 아빠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바로 영우가 좋아하는 '경범죄 처벌법'을 활용하는 방법.
그러므로 해결책은 우리가 이 상황을 '(다소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는) 협상'으로 이해해야 나온다. 협상은 테이블 앞에서 만난 양측이 서로 원하는 바를 '교환'하거나 '합의'하려는 태도를 보여야 시작된다. 양측이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관점을 견지한 채 만나면 협상이 성립되지 않는다. 독선적인 태도와 협상은 상극이다.
우리집에 상어가 출몰한 이유
사실은, 얼마 전부터 우리 가족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우리 딸은 이제 생후 18개월을 넘겼다. 그동안은 머리를 감기는 일이 거의 힘들지 않았다. 엄마나 아빠가 일방적으로 딸을 안고 세면대에 머리를 기울여서 머리를 감았는데, (고맙게도) 딸이 순순히 몸을 내 주었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머리만 감기면 떼를 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처음에 물을 뭍힐 때까지만 해도 얌전하다. 그런데 샴푸를 바르기만 하면 그때부터 몸이 근질대나 보다. 조금씩 꿈틀거리다가 이내 온 몸에 힘을 빡, 준 채 발버둥친다. 어찌나 힘이 센지, 어찌나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는지, 아빠도 힘으로 이길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러면 몸을 세우고, 물이 몸에 떨어지고...
이 더운 삼복 더위에, (특별히, 머리에) 땀이 많이 나는 아이 머리를 감기지 않고 그냥 지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온갖 대안을 떠올려 보고, 적극적으로 시도해 보았지만 어떤 방법도 딱히 효과적이진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방법. 우리 딸, 봄이가 가장 즐겨 읽는 동화책, '예쁘게 인사해요' 내용을 신나고 재미있게 읊어주면 어떨까?
이 방법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 지만, 한 두 번 지나니 또다시 문제가 일어났다. 그래서 기각. 이번엔 '아기 상어' 노래를 불러 줬다. 솔직히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봄이는, 엄마가 물을 뭍히고, 샴푸를 뭍히고, 거품을 내고, 거품을 씻고, 수건으로 물을 닦을 때까지 눈을 말똥말똥 뜨면서 얌전히 있었다.
사회복지사(사례관리자)든, 아빠든,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움직이려면, 내가 원하는 바나 내가 그를 끌고 가려는 방향만 생각해서는 답이 안 나온다. 시간은 없고, 할 일은 많은데, 마음만 급해지는 상황.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려는 방향을 일단 포기하고 내려 놓아야 오히려 길이 보인다. 포기해야 얻는다.
본질은 '맥락'이다. 그리고 우리 앞에 놓인 맥락은 '협상'이다. 이 협상 테이블은 상대가 마련하지 않았다. 상대가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가 먼저 접근했다. 따라서 상대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협상 장면에서 내가 바라는 제안, 내가 원하는 대안만 고집한다면, 상대는 더욱 더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먼저 얻으려면 먼저 포기하라.
'아기 상어' 목소리 주인공을 만났다 - BBC News 코리아
<설명 단락을 쉽게 쓰기 위한 만능 공식>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 > Personal Stor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니 글쎄, 당신이 나를 거의 밀었다니깐 (0) 2023.08.12 물, 안녕, 언니, 아빠, 엄마, 네! (0) 2023.08.08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484) (0) 2023.06.08 이상한 상상 (0) 2023.06.08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D+477) (0) 2023.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