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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바꼭질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9. 25.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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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숨바꼭질

     

    글쓴이: 강진구 (인천종합사회복지관 사례관리팀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짙은 회색빛 구름이 나를 쳐다보듯 하늘에 떴다. (떠 있다.) 약간 볼록 튀어나온 이마 구름, 펑퍼짐한 양볼따구 구름, 작은 눈코가 몰려있는 구름과 그 아래로 엷은 미소를 띈것 같은 입술구름이 보인다. (하늘에 떠있다.) 먹구름이 몰려와 어두운데도, 호수를 둘러싼 나무들이 위/아래로 데칼코마니처럼 투명하게 정렬했다. 

     

    방금 해가 졌는지 먹구름 아래 붉그스름한 하늘이 저 멀리 보인다. 혹시나 해서 주머니에 챙겨두었던 비사표 성냥을 꺼내 나뭇가지에 불을 피웠다. 바로 활활 타는 나뭇가지가 먹구름, 나무, 호수와 자연스럽게 어울려 벽난로 처럼 느껴진다. 따뜻한 온기가 금세 내 몸을 덥혔다. 마음을 추스르고 날짜를 세어 보니 벌써 열흘째다.

     

    열흘 전 윗동네 덕삼이와 숨바꼭질로 내기했다. 내기에서 진 사람이 담배가게 아가씨 제니퍼를 포기하기로 했다. 이 호수처럼 투명하고 맑은 눈을 가진 제니퍼는 하늘에서 열리는 미모 대회를 박살내고 지상으로 강림한 천사와 같았다. 그런데 하필 우리 동네 최고 바람둥이인 덕삼이가 이 사실을 알고 비웃듯이 말하며 훼방을 놓았다. '너 같은 놈이 사랑을 알어?'

     

    하지만 나는 제니퍼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제니퍼에 대한 이번 사랑은 진짜 사랑이다.) 활활 타오르는 나뭇가지처럼 금방 타올랐다가 꺼져버리는 그런 사랑이 아니다. 2년 전 김 판서댁 셋째딸 로렌스는 덕삼이에게 빼았겼지만 이번에는 쟁취하겠다고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며 다짐했다. "내기에서 이겨서 덕삼이 놈에게 제니퍼를 뺏기지 않을 테다!"

     

    이렇게 다짐하는데 저 멀리 누군가 나를 향해 곧장 뛰어온다. '아~ 괜히 불을 피웠나?', '덕삼이 녀석이 날 발견하고 뛰어오나?' 후회하는 순간 내 절친 춘식이 목소리가 들린다.

     

    춘식: "야 이놈아 너 여기서 뭐해?"

    나: "아~ 깜짝 놀랐네 덕삼이 녀석인줄 알고 깜짝 놀랐잖어?"

    춘식: "아이고 이놈아 엄니 아부지 얼마나 걱정하고 계신 줄 알어?"

    나: " 상관없어. 나 이번에는 진짜야. 덕삼이 녀석을 보기 좋게 이기고 제니퍼에게 고백할 거야"

    춘식: "아이고 이 모지리 같은 놈. 너 숨어 있는 열흘 동안 덕삼이는 제니퍼 꼬셔서 어제 같이 여행 갔어, 이눔아"

    : "뭐라고!!!!???!!!!???"

     

    헉... 춘식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않았다. 내가 숨어 있는 동안 덕삼이는 나를 찾기는커녕, 아무런 훼방꾼 없이 편하게 제니퍼를 만나서 꼬셨나 보다. '아... 이런 천하의 나쁜 놈...놈... 년들'

     

    억울하고 망연자실한 기분으로 흐르는 눈물을 꾹 참으려 하늘을 쳐다봤다. 저 멀리 보이는 먹구름이 이런 나를 비웃듯 쳐다보며 하늘에 떴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강진구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강진구 선생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심화반,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하... 딱, 강진구스럽게 글을 쓰셨네요? 강진구 선생님만의 개성을 유감없이 글발로 뽐내셨다고 평가합니다. 강진구 선생님 개성이 뭐냐고요? 누구도 함부로 공격하거나 깎아 내리지 않으면서도 모든 사람을 웃기는 유쾌한 유머 감각입니다. 강진구 선생님은 예컨대, 이수근처럼 친근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웃기세요. 이런 유머 감각이 글에도 투영되어서 무척 좋습니다.

     

    2. 그런데 강진구 선생님은 유머 감각만 있지 않습니다. 상황을 묘사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십니다. 위 글도 읽다 보면 독자가 부지불식 간에 이야기에 빨려듭니다. (이번에 선생님 묘사 능력을 확인했습니다.) 원경에서 묘사를 시작하셔서 근경으로 다가오셨지요. (아주 많이 훌륭합니다.) 그리고 모닥불에 이르러서는 자연스럽게 어떤 해학적인 이야기로 연결하셨어요. 

     

    3. 아마도 쓰시면서 느끼셨겠지만, (글쓴이가 문학가가 아니라면) 묘사 전략만 구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묘사는 주로 서사 등에 업혀야 진가를 발휘하죠. 저는 다소 막연하게 학생 분들께서 이런 특성을 체감하면서 배우시길 기대했는데, 강진구 선생님께서 그냥 과제를 수행하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수준 높게 묘사+서사 능력을 보여 주셨어요. 수업에도 도움이 됩니다. 

     

    4. 어법에 관해서는 두 가지 정도 지적하겠습니다. 

     

    (a) 진행시제 순화. 

     

    초고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_ 예문 1: 짙은 회색빛 구름이 나를 쳐다보듯 하늘에 떠 있다. 

    _ 예문 2: 엷은 미소를 띈것 같은 입술구름이 하늘에 떠 있다.

     

    저는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_ 예문 1-1: 짙은 회색빛 구름이 나를 쳐다보듯 하늘에 떴다

    _ 예문 2-1: 엷은 미소를 띈것 같은 입술구름이 보인다

     

    한국어는 시제가 단순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딱 세 시제만 있습니다. 그런데 영문법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특히 '진행시제(~하고 있었다)'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한국어에 없던 내용이므로 다소 혼란스럽고 부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통상적으로) 과거와 현재 중 하나로 바꾸면 됩니다. 

     

    강진구 선생님께서 예문 1에서 동사를 '현재 진행시제'로 쓰셨는데요, 저는 예문 1-1에서 과거 시제로 바꾸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뜻이 통하죠? 문제가 없지요?) 그리고 예문 2에서도 동사를 '현재 진행시제'로 쓰셨는데요, 저는 예문 2-1에서 현재 시제로 바꾸었습니다. (역시 뜻이 자연스럽게 통하고, 문제가 없습니다.)    

     

    (b) 명사보다는 동사를 살려 쓰기. 

     

    초고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_ 예문 3: 제니퍼에 대한 이번 사랑은 진짜 사랑이다.

     

    저는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_ 예문 3-1: 나는 제니퍼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강진구 선생님께서는 'A(사랑)는 B(사랑)이다' 구조를 선택하셨어요. 술어를 분석해 보면 '명사(사랑)+이다(서술격 조사)'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그냥 동사로 바꾸면 어떨까요? '사랑하다'가 되겠지요? 한국어는 명사보다는 동사가 발달했으므로, '사랑하다'를 쓰시면 더 좋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인가요? 원문에서는 생략하셨지만, '내가(주어)' '제니퍼를(목적어)' 사랑하지요. 그냥 사랑하지 않고 '진짜로' 사랑하지요.  

     

    두 문장을 비교해 보세요. 어느 쪽이 더 자연스럽고 술술 읽히는지. 이 느낌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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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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