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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보, 지금 새벽 세 시 조금 넘었어요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11. 17.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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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 (내 손을 지그시 잡고) 여보, 지금 (새벽) 세 시 조금 넘었어요.

    나: (말문이 막혀서 잠시 침묵하다가) 어? 뭐라고?

    그녀: 오빤 잠이 부족해요. 더 자요.

    나: (잠이 확 깼다) 헐... 여보, 나 지금, 진짜 깜짝 놀랐다.

    그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뭘 놀래요? 

    나: 당신이 지금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정확하게 읽었어.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그녀: 어떻게 하긴요, 오빠가 늘 그렇게 움직이잖아. 내 손 잡고 있다가 놓았고,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다리 반동을 걸어서 일어나잖아.

    나: 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내 머릿 속에 들어와 있다가 나간 사람처럼...

    그녀: 아이~ 됐어요. 그게 뭐가 신기해. 빨리 조금 더 자요. 

    나: (한쪽 다리를 들었다 놓는 힘으로 일어나며) 아냐, 이건 글로 써야 해. 그냥 넘길 수 없는 글감이야. 

    그녀: 하여튼, 못말려. 내 이야기 쓰지 말라니깐!


    나는 대단히 늦게 첫 연애를 시작했다. 조숙한 동년배 친구들은 중딩 때부터 연애질하고 다녔는데, 나는 너무 늦되고 어려서 27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여자를 사귀었다. 나는 대학을 두 번 다녔기 때문에, 선배들도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렸는데, 나와 친했던 여자 선배가 고등학교 친구를 소개해 줬다. 오로지 예뻐 보여서(?!) 사귀었는데, 남들은 결혼해서 아이도 낳을 나이에 첫 키스를 경험했고, 약 2년 동안 풋풋하게 만났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와 잘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고, 조금은 피상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다가 헤어졌다. 

     

    그 다음 상대가 내 전처였다. 졸업하고 취업한 첫 직장에서 만난 그녀. 키가 무척 작았지만, 잔뜩 웅크린 거인처럼 커 보였다. 그녀는 내가 전혀 못 들어본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그 중에서 기억나는 단어가 바로 '자존감.' 자존감에 대해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너무 진지하게 늘어 놓길래, 나는 그녀가 자존감이 무척 높은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여차저차 우여곡절을 거쳐서 결혼까지 했다가... 그녀가 전혀 자존감이 높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확인하면서 처참하게 헤어졌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나에게 이별을 강요했다.  

     

    이혼하고 나서, 매우 오랫동안, 정말로 외롭고 고통스럽게 혼자 지내야 했다. 30대 말에서 40대 초에 이르는 5년을 한 방에 날려 버렸달까. 비유하자면, 가슴에 직경 30cm 구멍이 났는데, 뜨거운 피는 안 솟구치고 내 과거만 차갑게 흘러 나왔다. 5년 동안 돈 한 푼 못 벌고 폐인으로 살았다. 볕도 잘 들지 않는 동굴(단칸방) 속에 나를 가두고, 마늘 대신 라면을 먹으며 겨우 목숨만 부지했다. 삶은 진짜로 잔인했다. 우리는 누군가의 행동을 평가할 때 나쁜 의도가 없다면 좋게 평가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무지도 죄다. 나는 너무 무지했다. 그래서 벌 받았다.


    재혼하는 사람에겐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아니, 무엇이 가장 두려울까? 또 다시 실패할까봐 제일 걱정스럽다. 그러므로 '믿을 만한 사람' 혹은 '변하지 않을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처절하게 실패해 놓고서도 여전히 미숙하고 어리석었다. 그냥, 예쁜 여자가 좋았다. 그래서 눈에 불을 켜고 예쁜 여자를 찾았다. 하하... 몇 번, 헛물도 켰다. 참 못나고 어리석었지만, 종종 헤매면서 마음 속 깊이 내가 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역시, 삶은 나이와 별로 상관없다.) 한 마디로, 나는 '고운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다가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나에게 수 개월 동안 해결중심상담을 배운, 말하자면 내가 가르친 학생이었다. 처음부터 호감, 은 조금 있었지만, 그녀 몰래(?) 메신저 프사를 들여다 보니 웬 소녀 사진(딸로 추정되는)이 보여서, 마음을 대략 접었다. 그런데... 그녀도 내게 호감을 느꼈나 보다. 어느 순간 그녀가 내 앞으로 다가와서 빙그레 웃었다. 나 같은 겁장이가 어떻게 용기를 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용기가 났다.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듯했다. 그래서 문득 만나자고 제안했고, 어느 무더운 여름날에 만났다. 대단히 고운 그녀를.

     

    누가 3개월 만에 결혼한다고 나에게 의견을 묻는다면, 도시락을 싸서 졸졸 따라 다니면서 반대할 듯하다. 그만큼, 사람은 무조건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내 바로 옆에, 사람 잘못 봤다가 5년 동안 눈물을 흘리며 허송세월한 바보 남자가 섰잖나. 그런데 만약에 우리 만남이 잘못된 선택이었더라도, 서로 도저히 말릴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만난지 한 달만에 내가 그녀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한 달 만에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결혼했다. 번갯불에 콩을 어떻게 구어 먹냐고? 우리를 보라.


    그렇다. 나는 대단히 고통스럽게 이혼을 경험했다. 그래서 여전히 부부싸움이 두렵다. 상대가 아무리 미워도, 혹은 상대가 아무리 지겨워도, 내 삶에서 다시는 이혼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재혼하면서, 만약에 내 선택이 정말로 어리석었다고 증명된다고 해도, 상대가 온갖 부정을 드러내놓고 저지르고 다닌다고 해도, 허망하게 사기를 당해서 억만금을 빚진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이혼만은 안 한다고 마음을 정하고, 결혼했다. 내가 무조건 그녀에게 맞춰야지, 내가 무조건 그녀에게 져 줘야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단단히 결심하고 결혼했다. 

     

    하지만 우리도 싸웠다. 나이 먹은 커플이라서, 힘이 없어서 박이 터져라 싸울 수는 없었지만, 여느 커플처럼, 아주 많이, 일상적으로 싸웠다. 내가 감정섞인 독설을 내뱉을 때마다, 아내는 나에게 '이젠 마음이 바뀌었냐?'며 내 결심을 근거로 힐난했다. "아니야!"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는 사람이고, 생각한 대로만 살지는 못한다. 그리고 아무리 고통스럽게 이혼해서 싸우는 일이 두렵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매우 어리석고, 매우 이기적이어서, 여전히 아내에게 이상한 헛소리를 배설(!)할 때가 많다.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어서 후회한다. 

     

    더구나 아이가 탄생한 후로는, '어쩔 수 없이' 부부 사이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낭 단순하게 생각해 봐도, 두 사람 사이에 또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어떻게 두 사람만 존재하는 듯 살 수 있겠나? 프로이트 박사가 괜히 '가족 로맨스'라는 용어를 만들었겠나. 우리 두 사람은 고운 딸을 사이에 두고 애정 다툼(?)을 벌이는 중년 부부가 되었다. 에고... 우리 사이에 체온이 떨어진 사실이 조금 아쉽지만, 그냥 체력면으로만 봐도 어쩔 수 없다. 딸내미를 안아 주려면 손목부터 저려오는 늙은 엄마 아빠인데? 해서, 우리 사이는 뒤로 남겨둘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재혼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을 결심했다: "내 삶에서 뒷돈 따위는 없다. 내 통장은 늘 잔고가 0원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고 해도, 벌면 무조건 아내에게 송금한다. 심지어, 비상금도 아내에게 타서 쓴다.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아내를 100% 믿는다." 이 결심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심지어는 아내 생일에 선물한 돈이 없어서 선물을 못 샀고, 이 때문에 밤새도록 아내에게 혼난 적도 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 생일에 선물할 돈도 안 만드냐?" 아내는 흥분하며 나에게 외쳤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무조건 내 잔고는 0원이다. 

     

    나는 바보인가? 맞다. 바보다. 아내가 그만큼 좋다. 나는 앞으로 이혼할 가능성이 없을까? 사람 일은 장담하지 못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다. 게다가, 삶이란, 한 번 깨지기 시작하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무너질 수도 있다. 내가 산 증인이다. 그래서 100% 장담할 순 없겠다. 하지만 내 인생에 다시 이혼은 없다. 아내에겐 농담처럼 말했지만, 내가 또 다시 이혼해야 한다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이런 말, 제발 하지 말라고, 아내가 신신당부했지만, 어쩔 수 없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다. 관계 파산자로 사느니 죽는 편이 더 낫다.)

     

    나는 참 운이 좋다. 아내를 선택했을 때, 정서적 사랑이 최고조였기 때문에, 이 사랑이 식는다면 낭떨어지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두 번째 결혼마저 처참하게 실패해서 결국 죽는 길로 걸어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길에서 다이아몬드는 주었다. 나는 착한 사람도 아니고,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잠결에도 나를 이해해 주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결과적으로 나는 나라를 구한 사람이 맞다. 그러니 내 품 안에 들어온 이 다이아몬드를 잘 닦아서 빛나게 할 의무가 있다.


    사랑은 감정이다. 하지만 동시에 감정이 아니다. 결단하고 행동하는 의지다. 내 경계를 찢고 넓히는 성장이다. 내가 아닌 사람과 맺는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이므로, 나를 찢어야, 상처를 감수해야, 사랑할 수 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나를 찢었을까. 얼마나 상처를 감수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아내가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던 만큼, 내가 그녀에게 좋은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특히, 오늘 새벽에는 반성하는 마음이 많이 든다. 내 마음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처럼, 내 마음을 잘 알고 이해하는 그녀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고운 그녀 앞에서.

     

    2023년 11월 17일, 새벽 5시 36분. 이재원 기록.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성숙을 담는 글쓰기(PDF 버전)

    '자기-돌봄(self-care)'를 주제 삼아 인천광역시사회복지사협회가 기획하고, 지난 수 년간 사회복지사에게 글쓰기를 가르쳐 온 강점관점실천연구소에서 진행했습니다. 인천시 각 지역에서 성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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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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