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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마음이 감기에 걸렸다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11. 21. 13:48728x90반응형
어느 날, 내 마음이 감기에 걸렸다
글쓴이: 배수경 (청학장애인공동생활가정 사회재활교사, 2023)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일어나질 못했다. 아니, 일어날 수 없었다. 서서히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빠져나올 의지는 생기지 않았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 이용자분들 다니시는 병원에 연락했다. 오늘은 이용자분이 아닌 직원이 접수한다고 하니 간호사님께서 걱정스레 말씀하셨다. “많이 힘드셨지요? 조심히 오세요.”
상담실에 들어가니 낯익은 의사선생님께서 반겨주셨다. 그리곤 나에 대해 물으셨다. “어떻게 오셨을까요? 괜찮으니 말해보세요.” 나는 그간 마음속 깊이 눌러두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먼저, 담당 이용자 두 분 건강이 악화되어서 계속 병원을 다니셔야 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느 날 길에서 바바리맨을 맞닥뜨려서 깜짝 놀란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많이 도와준 지인에게 배신당한 이야기도 힘들게 말했고, 어느 날 그룹홈에서 회의하는데 (정말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서 어두운 구석에 앉아 하염없이 운 이야기까지 털어놓았다. 이 모든 이야기를 믿을 만한 주변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는데도 전혀 회복이 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의사 선생님과 길게 대화를 나누고, 약을 지었다. 그러니까 난 이제 제대로 정신과에 다니는 환자다.
그 후로,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열심히 먹고 치료도 열심히 받았지만, 스스로 회복 능력을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나를 위해 피부 관리도 받고, 처음으로 무지무지 비싼 옷도 샀다. 돈 생각하지 않고 여행도 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는 생각에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완치되었다고 처방내렸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소화가 되지 않고 몸이 점점 아파왔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아주 튼튼하단다. 다시 정신과를 찾았다. 약을 임의로 끊어 몸으로 반응이 왔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처방받은 약을 먹었다. 씻은 듯이 몸이 나았다. 의사선생님께 물었다. “저, 진짜 정신병 환자인가요?” 의사 선생님께선 고개를 저으며 절대 아니라고 답하셨다. “감기 걸리셨을 때 항생제 처방받은 대로 다 먹으란 이야기 들어보셨죠? 전문가가 처방한 약이라서 먹다가 임의로 중단하면 이렇게 부작용이 나타나요. 그래서 다 나은 듯해도 확인받기 전까지는 처방 받은 약을 다 먹어야 해요. 마음에 감기가 걸렸을 뿐, 약 잘 먹으면 지나갑니다. 사회복지사는 마음을 쓰는 일이 많으니, 마음이 힘들다고 표현한 거예요.”
나는 마음에 감기가 걸린 사회복지사다. 주변을 돌아보니 정신과 상담을 받는 사회복지사가 많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아프다 말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너지면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분들까지 힘들어질까 조용히, 그리고 아주 은밀하게 아픔을 삭힌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도 연약한 사람이다. 그래서 병에 걸리면 아프다. 아플 수 있다. 아니, 아파도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가족에게도 말 못한 내 우울증과 불안증을 커밍아웃 하려한다.
나는 아프다. 그러나 이겨낼 수 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와우~ 배수경 선생님께서 걸작을 쓰셨습니다. 소재도 좋고, 주제도 좋습니다. 내용상 군더더기도 보이지 않습니다(오히려 세부 설명을 생략하셔서 덧붙였습니다).
2. 무엇보다도, 배수경 선생님 말씀처럼, 몹시 안타깝게도, 아픈데도, 힘든데도 혼자서 견디는 사회복지사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동료들에게 함께 커밍아웃(?)하자고 제언하는 운동 선언문처럼 읽었습니다.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용기를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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