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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호 그룹홈 줌마 이야기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11. 16. 06:52728x90반응형
전국 1호 그룹홈교사 줌마이야기
글쓴이: 전양희(해피홈 보육원 원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1996년 봄, 안양에서 서울로 이사를 온 후, 두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나는 사회복지를 공부했기에 사회복지를 공부한 나는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 장애아동 어린이교실에서 4년 동안 활동하면서 정규 직원보다 (아이들과) 더 친근한 관계가 되었다. 어느 날, 복지관 팀장님이 마침 그룹홈 계약직 일자리가 났으니 한 번 일해 보라고 제안하셨다. 성인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의 자립을 위하여 장애 당사자와 일주일에 두 번 만나서 요리도 하고, 여가활동도 하는 업무라고 설명해 주셨다. 나는 조금 망설였지만 즐겁게 도전했고 주2회씩 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5개월 만에 담당 (정규직) 그룹홈 교사가 갑작스런 일로 사직했다. 정직원이 되면 아무래도 책임이 훨씬 더 커지고 여러 모로 힘들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역시 즐겁게 도전! 이력서를 내고 정규직 그룹홈 교사가 되었다.
그룹홈에서는 성인 지적, 발달장애인 여성들이 함께 살았다. 우리는 이 분들이 사회인으로서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도왔다. 그룹홈 거주인들은 낮에는 일터인 보호작업장에 출근을 하고, 저녁에는 퇴근하여 일상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식사준비도 하고, 집안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는 등, 가사생활 전반을 배우고 익혔다. 나(그룹홈 사회복지사)는 주중에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살았고, 주말에는 본가로 쉬러 갔다.
그룹홈 특성상 주거를 함께 하면서 서비스를 지원하다 보니 그룹홈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결혼하기가 어려웠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특이하게도 결혼해서 가정이 있고 자녀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와 관련된 야릇한 소문이 복지관 안팎에서 떠돌았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여자다’ ‘가정에 문제가 있어 그룹홈에서 일하는 것 아니냐.’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들려와도 나는 흔들리지 않고 성실하게 일했다.
사회복지사는 그룹홈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장애인을 돌보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들 가사도우미 정도로 생각했다. 나는 그룹홈에 대한 낡은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모로 불편하고 번거로웠지만, 매주 월요일마다 열리는 팀 회의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복지관과 연계하여 자원봉사자도 받고, 실습생도 열심히 지도했다. 그리고 기회가 올 때마다 적극적으로 그룹홈에서 하는 일을 알렸다.
그룹홈은 ‘작은 복지관’이다. 이용인을 위한 직접서비스, 가사생활을 지원하는 작업치료, 심리정서 사례관리를 위한 상담, 그룹홈 시설환경 및 시설관리, 예산관리를 하는 회계, 부모나 이용자을 위한 상담, 지역사회자원 네트워크, 구청과 업무 교류, 직원 역량강화 계획 등등 참 많은 일을 한다. 그래서 그룹홈 교사는 많이 배워야 하고 능력이 많아야 한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나는 그룹홈교사 신입직원교육을 맡아서 하는 광주엠마우스 복지관 교육에 학생으로 참여했다. 역시, 여기에서도 결혼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어떻게 결혼하고 가정과 자녀가 있는 사람이 그룹홈 교사를 하는지에 모두들 놀랐지만, 나는 웃으면서 남편과 가족이 도와 줘서 맡은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고 말했다. 그 시절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그룹홈 교사들을 만나 고충과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면서, 그룹홈이 건강하게 발전하고 그룹홈에서 일하는 교사들이 좀 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전국 그룹홈 교사들과 함께 노력했다.
2006년 10월, 우리는 마음을 모아서 그룹홈 교사협회를 비영리단체로 등록하여 전국대회를 열고, 그룹홈을 시작하신 광주 엠마우스 복지관 천노엘 신부님을 모시고 광주 충정로에 모여 시가행진도 실행했다. 또 그룹홈교사협회 이름으로 지역별 교사 모임도 다양하게 열었다. 서울, 인천, 강원, 광주, 경기까지... 참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무시로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는 비록 지금은 그룹홈을 떠났지만 아직도 그룹홈 역사와 가치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여전히 예전에 함께 활동했던 그룹홈교사들과 만나며, 몇몇 그룹홈에서는 운영위원으로 역할도 수행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룹홈은 작은 복지관이다. 그룹홈은 비록 크기는 작지만 억만금보다 소중한 가치를 지녔다. 어떤 사람이 성장하고 변화해서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인이 되는 과정을 돕는 일. 이보다 더 크고 귀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일단, 사회복지를 사랑하는 후배로서 존경하는 마음을 깊이 담아서 박수를 보냅니다.
2. 이 기록은, 단순히 전양희 선생님 개인 기록이 아니라, 바로 한국 그룹홈 전체 역사이기도 하네요. 특히, 제 아내가 그룹홈에서 잔뼈가 굵은 훌륭한 사회복지사라서 (남 이야기 같지 않아서) 더욱 감동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전양희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셔서, 제 아내 같은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자부심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3. 전양희 선생님 글은, 전체적으로 논리와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아마도, 평상시 일하시면서 늘 건강하게 고민하셔서 생각을 정리하시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 글도 흐름이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내용상 군더더기도 별로 없었습니다. 강점, 크게 인정하고 칭찬 드립니다.
4. 어법에 관해서 두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a1) (사회복지를 공부한 나는)
(a2) 나는 사회복지를 공부했기에
원문을 보시면, 주어가 문장 중간에 있습니다. 저는 이 주어를 문장 앞으로 옮겼습니다. 사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주어는 문장 앞에 있어야 자연스럽습니다. 한국어는 어떤 단어가 수행하는 문법적 기능을 조사나 어미에 실어서 전달합니다. 따라서 단어 위치가 그리 중요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주어는 문장 앞쪽에 있어야 여러 모로 자연스럽습니다. 특히, 주어가 문장 앞으로 나오면 자연스럽게 술어(동사/형용사)를 강조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b1) 성인 장애인(의 자립을 위하여)
(b2) 성인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도록
아... '의'가 보입니다! 네, 여기에 등장하는 '의' 앞 뒤에 놓인 단어 사이 관계는, '수식어(관형사)-피수식어(명사)' 관계가 아니라 '주어-술어' 관계입니다. 그래서 주격 조사 '이'로 바꾸고 명사 '자립'을 동사 '자립하다'로 바꾸었습니다. 이 동사는 '목적' 뜻을 나타내야 해서, 어미 '-도록'을 붙였습니다.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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