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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물 빼기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2. 1. 15:48728x90반응형
먹물 빼기
글쓴이: 김정현 (안동성좌원 요양복지과 팀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2023년 가을, 이재원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되었다.
첫 과제로 “글쓰기와 나”라는 글감을 받았다. 글짓기 개념을 알게 된 초등학교 시절 이후, 나는 언제나 글을 잘 쓰고 싶었고, 좋은 글을 찾아 읽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은 너무 길었고, 수식어구도 지나치게 많이 달렸다. 혼자 고쳐 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로 시작한 사회복지 일터에서는 글쓰기가 더 어려웠다. 논리를 명확하게 기술해야 하는 보고서나 사업제안서를 쓸 때마다, 늘어지는 내 문장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첫 번째 과제를 제출한 이후로 이재원 선생님은 이렇게 피드백을 주셨다.
_ 문장을 지나치게 압축하셔서, 영어식/일본식 문형이 상당히 많이 나타납니다.
_ 문장을 압축하면 필연적으로 명사 중심으로 흐릅니다. 명사를 동사로 바꾸셔야 합니다.
‘적, 의, 것, 들’과 상종도 말라는, ‘살벌한(?!)’ 조언도 들었다.
글을 쓰려면 글감을 찾기 어렵다. 용케 적당한 글감을 찾아도, 이 글감을 확대해서 글 한 편을 완성하기란 더욱 힘들다. 막연하고 막막하다. 이재원 선생님은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골라 나에게 의미있는 글감을 쉽게 찾도록 유도하셨다. 우리는 사진에 관해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면서(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변) 주제를 찾았다. 이재원 선생님은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 잘 몰라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면 몇 번이고 범위를 좁혀가며 물으셨다. 그리고 내가 사용한 어휘에서 핵심을 찾아내서 본질을 짚으셨다. 놀라웠다.
본격적으로 수업이 진행되면서 우리는 실용적인 글을 쓰는 네 가지 전개 방법(서사, 묘사, 설명, 논증)을 배웠다. 매주 수업이 끝나면 과제 글을 제출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한 단락 쓰기에서 출발해서 짧은 글을 계속 쓰다 보니, 어느덧 우리는 작은 글감을 찾아서 짧은 글을 가볍게 쓰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매주 과제를 제출하면, 선생님은 고쳐야 할 부분을 아주 자세하게 빨간색으로 수정해서 다시 보내 주셨다. 처음에는 빨간색이 많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내 실력이 향상될수록) 빨간색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이렇게 매회 1:1로 지도받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치렁치렁하던 내 문장이 많이 좋아졌다. 예전보다 훨씬 더 단정하고 깔끔하게 문장을 쓸 수 있었다.
이번 글을 쓰면서도, 그동안 열심히 필기한 강의 노트를 몇 번이고 다시 뒤적여 보았다. ‘한자식 표현을 줄여라’, ‘A는 B이다 패턴을 쓰지 말고 서술어(동사/형용사)를 살려 쓰라’ ‘사물이 주어가 되는 문장을 가급적 쓰지 말라’ 등등 선생님이 강조하신 내용이 보였다.
이번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면서 내가 글을 쓰고 퇴고하는 루틴도 생겼다.
_ 소재/주제에 관해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감정을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 간다.
_ 초고를 다 쓰면, 처음으로 돌아가 빨간펜 메모를 떠올려가며 서너번 훑어본다. 특히 동사를 억지로 명사로 바꾼 부분을 찾아서 다시 동사로 고친다.
_ 한자어 표현이나 접어서 쓴 부분, ‘적의것들’을 남용한 부분, 생략해도 되는 문장이 있는지 확인한다.
돌이켜 보면, 실용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 이 수업에 참여했는데, 이재원 선생님과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서 내 마음을 살피고 다독이는 경험을 했다. 함께 수강하는 동료 선생님께서도 항상 넓고 깊게 응원해 주시고 지지해 주셔서 감사했다.
내가 쓴 마지막 글을, 이재원 선생님께서 이렇게 평가해 주셨다:
“처음에 수업을 시작할 때, 김정현 선생님 문장에는 ‘먹물’이 잔뜩 보였습니다. ‘먹물’이란 책을 좀 읽은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번역체 어투나 한자어 표현을 가리킵니다. 감성은 좋은데 먹물 습관이 튀어나와 이리저리 엉망진창 문장을 망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놀랍도록 바꿔내셨습니다. 습관은 운명이라서 바꾸기 어려운데, 바꾸셨네요.”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으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열한 살 꼬맹이가 글짓기 대회에 나가 처음 상받던 기분이 되살아난다. 나는 앞으로 함께 생활하는 요양실 어르신들과 아름답게 추억을 만들고, 이를 소재로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 그렇게 차곡차곡 한 편씩 쌓아서 책이 만들어지면, 이재원 선생님께 숙제 검사 받으러 가야겠다. 빨간펜 자국이 얼마나 그어질까 잔뜩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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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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