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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술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면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2. 2. 15:28728x90반응형
술술술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2024년 2월 2일 ,이재원 기록)
어떤 글이 '술술술 읽히는 글'일까?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술술술 읽히는 글'을 다음 세 가지 요소로 정리한다. 첫째,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 둘째, 한국어 특성에 맞게 자연스럽게 쓴 글. 셋째, 문장과 문장을 서로 부드럽게 잘 연결한 글. 이 세 가지 요소를 하나씩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본다.
첫째,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
기본적으로, 글은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서 쓴다. 글쓰기는 언제나 상대가 있는, 사회적인 게임이다. 글에 담은 내 생각이 아무리 그럴 듯해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거부하면 쓸모가 없다. 따라서 글을 쓸 때는 늘 독자를 의식해야 한다. 독자가 글을 읽으면서 내 생각을 바로, 한 방에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려면, 다음 두 가지 방법을 실천해야 한다.
우선, 글 내부에서 적용하는 방법. 글을 쓸 때 되도록 쉬운 어휘를 사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글을 쓸 때는, 독자가 평범한 중학생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내가 이 단어를 쓰면 평범한 중학생이 읽고 바로 이해할 수 있겠는지 늘 고민하라. 가급적이면 어려운 한자어는 쓰지 말고, 우리말을 최대한 살려 쓰라.
다음으로, 글 외부에서 적용하는 방법. 맥락을 밝히면서 글을 써야 한다. 한국 문화를 모르는 외국인에게, 글로 김치찌개를 설명한다고 치자. 김치찌개를 사전적으로 정의하고, 만드는 방법을 소개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김치'가 어떤 의미인지, 어째서 한국인이 밥과 국/찌개를 즐겨 먹는지에 대해서 문화적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면, 쉽게 이해하지 못하리라.
따라서 글을 쓸 때, 내가 다루는 소재가 좀 더 상위 맥락이나 배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간략하게 밝히면서 시작하면 좋다. 예컨대, 학창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나눈 아름다운 추억에 대해서 글을 쓴다면, 그 시절 자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그래서 좋은 친구를 사귀어서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관계를 맺는 일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부터 기술한다.
둘째, 한국어 특성에 맞게 자연스럽게 쓴 글
술술술 읽히는 글을 글을 쓰려면, 한국어 특성에 맞게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현대철학에서는 '생각이 언어이고 언어가 생각'이라고 말한다. 철학자들이 깊이 따져보니,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생각을 결정짓는 인식틀이었다. 언어에는 어떤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그대로 담겨서, 말을 바꾸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존재마저 바뀐다.
영어에는 미국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들었다. 예컨대, 영어에서는 문장에서 주어를 절대로 생략하지 않는다. 주어를 생략할 수 없어서 실제로는 뜻이 없는데 주어 자리에 세워 놓는 '가주어(it)'까지 등장한다. 그만큼 주어 - '누가' 행동했느냐 - 가 영어에선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주체를 절대적으로 중시하고, 사물을 쉽게 (이용) 대상으로 삼는 세계관이 잘 드러난다.
한편, 한국어에서는 주어를 자주 생략한다. 주어를 빼도, 뜻이 쉽게 통한다. 게다가, 종종 목적어도 생략한다. 주어와 목적어를 빼면, 서술어(동사/형용사)가 남는다. 서술어는 생략 못한다. 그만큼 한국어에서는 서술어를 중시한다. 그런데, 주어나 목적어가 '개별 존재'를 나타낸다면, 서술어는 '관계'를 나타낸다. 따라서 서술어를 풍부하고 다채롭게 살려 쓰면, 한국어가 한국어스러워진다.
평소에 선생으로서 글쓰기를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이 너무나 영어스럽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예컨대, 다음 두 문장을 직접 비교해 보시라. (1) 영어식 문장: 도망은 죽음이다. (2) 한국어식 문장: 도망가면 죽는다. 한국어는 동사/형용사('도망간다', '죽는다')를 최대한 살려 써야 좋다. 이를 명사(도망, 죽음)로 바꿔 쓰면, 건조해지면서 살아났던 기운이 바로 죽는다.
이렇게 한국어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며 쓰려면, 따로 공부해야 한다. 한국어 문법도 공부해야 하고(적어도 글을 쓰기 위한 지식을 얻을 정도까지는), 한국어와 외국어(영어, 일본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도 공부해야 한다. 기본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제로 적용하려고 노력해야만, 한국어를 곱게 구사할 수 있다. 공부해야 한다니 적잖게 부담스럽겠지만, 어쩔 수 없다.
셋째, 문장과 문장을 서로 부드럽게 잘 연결한 글
고대 이집트 피라밋은, 지금은 수많은 돌덩이가 온통 어지럽게 쌓인 듯 보이지만, 수천년 전 완공 당시에는 원래부터 하나로 연결된 바위를 깎아 만든 매끈한 정삼각뿔로 보였다고 한다. 실제로도 매끈한 겉면을 타고서는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고 한다. 잘 쓴 글도 마찬가지다. 술술술 잘 읽히는 글을 읽으면, 문장과 문장 사이가 술술 잘 이어진다. 각 문장을 연결한 이음새가 보이지 않는다.
문장과 문장을 부드럽게 연결하려면, 각 문장이 띄는 서로 다른 무게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문장은 상위에서 다른 문장을 이끌고, 어떤 문장은 앞 문장을 보완하면서 따라간다. 글을 쓸 때 어떤 문장이 지도자 문장이고, 어떤 문장이 추종자 문장인지 판단하고 구분해야 한다. 군대에서 지도자를 중심으로 열과 오를 맞추듯, 글을 쓸 때 각 문장도 중심 논리에 따라서 줄을 서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단락 전개 방식 중에서 두괄식(頭括式)을 특히 선호한다. 두괄식은 단락에서 다른 문장을 이끄는 지도자 문장(소주제문)이 앞쪽(머리/頭)에 나오는 방식이다. 두괄식 단락에서, 지도자 문장 뒤에 나오는 모든 문장은, 지도자 문장이 설정한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소대장이 중대장 말에 복종하고, 중대장이 연대장 말에 복종하며, 연대장이 사단장 말에 복종하는 원리와 같다.
두괄식 단락에서, 지도자 문장(소주제문) 뒤에 나오는 문장(뒷받침 문장)은 일정한 질서를 따른다: (a) 소주제문과 뜻은 같게 쓴다. (b) 뒤로 갈수록 점점 더 길게 쓴다. (c) 내용은 갈수록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쓴다. 이 세 가지 규칙을 따르면서 글을 쓰면, 마치 본드로 붙여놓은 듯,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응집력이 발생한다. 각 문장이 따로 놀지 않고 논리적으로 강력하게 연결된다.
결국, 글을 쓸 때는, 개별 문장보다 전체적인 구조가 훨씬 더 중요하다. 잘게 쪼개진 낱개 퍼즐 수백 개를, 쫀쫀하게 끼우고 맞춰서, 원래 하나였던 듯 매끈하게 연결해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내용을 편집하는 예술이다. 온갖 잡동사니 누더기를 엮어서, 곱고 아름답게 옷을 짓는 예술이다. 읽는 사람은 수면 위 우아한 모습을 보지만, 쓰는 사람은 수면 아래에서 졸나게(!) 발을 저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부터 지끈지끈 아파오는가? 그냥 '슬슬슬' 써도 '술술술' 읽히는 글을 뚝딱 써 내고 싶은데, 공부하고 이해하라니까, 마음이 답답해지는가? 음... 어쩔 수 없다. 가치가 있는 다른 모든 기술처럼, 글쓰기 기술도 원래 배우기가 어렵다. 배움에는 왕도가 없고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불평하실 시간에 한 문장이라도, 한 단어라도 더 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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