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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D+728)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2. 7. 06:11728x90반응형
<어린이집 선생님 기록>
오늘은 뽁뽁이를 가지고 손가락으로 누르며 터트리고, 소리를 들어보기도 하며 바닥에 깔아 두고 그 위로 올라가 콩콩 뛰면서 발로도 촉감을 느끼며 뽁뽁이를 터트려 보았네요. 우리 봄이는 발로 터트리는 것보다 집중해서 하나씩 손으로 콕콕 터트리며 긴 시간을 보내고, 신나는 동요가 나오자 고개를 까딱이며 손은 뽁뽁이를 터트리곤 했답니다.
<내가 쓴 답글>
뽁뽁이! 역시 봄이는 제 딸이 맞습니다. 아빠도 집중력이 최고 강점입니다. 봄이는 저를 닮아서 ‘집중'할 줄 알고요. 사실, 봄이가 뽁뽁이를 너무 좋아해서, 평소 택배를 받을 때 뽁뽁이가 포장에 포함돼 오면 적당한 크기로 재단해 두었다가, 응급 조치(?!)가 필요한 위기 상황에서 하나씩 꺼내 듭니다. 그러면 봄이는 한동안 조용히 뽁뽁이에 빠져들어가죠. 부모와 자연스럽게 닮는 아이. 역시, 생명은 신비하고 유전은 무섭네요.
며칠 전, 키즈 노트로 어린이집 선생님과 필담을 나누었다. (키즈 노트는 스마트폰 어플이다. 이 어플을 통해서 선생님과 학부모는 어린이집에서 매일 일어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선생님께선 키즈 노트 어플에 사진도 올려 주시고 아이 건강 상태 등도 알려 주신다. 그리고 학부모는 주말에 아이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공유하고, 아이가 아파서 약을 먹어야 한다면 투약의뢰서에 서명해서 올린다.) 선생님 글을 읽으며 딸 아이 사진을 보는데, 문득 웃음이 나왔다. 대체 뽁뽁이가 뭐라고, 이렇게나 뚫어져라 들여다 보냔 말이다.
며칠 전 어머니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나: 봄이가 뽁뽁이를 참 좋아해요. 둘이 있는데 화장실을 다녀와야 할 때 뽁뽁이를 쥐어 주면 가만히 앉아서 골똘히 터트려요. 녀석이 어찌나 집중하는지, 불러도 대답하지 않아요.
어머니: 아휴~ 그러게. 봄이가 너 닮아서 외골수인가부다. 외골수가 참 안 좋은데... 주변 분위기도 잘 맞추고 그래야지, 자기 세계에 빠져서. 나는 네가 나 닮아서 전에 그렇게 힘든 시간 보낸 듯해서 미안해.
나: (정색하며) 어. 머. 니. 정말 진지하게 말씀 드리는데요, 저는 어머니 닮아서 좋아요. 외골수가 뭐 어때서요? 외골수라서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외골수라서 이렇게 밥술 뜨면서 살잖아요. 저는 아주 자랑스러워요.
어머니는 전라남도 외딴 섬에서 나고 자라셨다. 어느 정도로 외딴 섬이냐면, 1950년에 한국전쟁이 났는데 그 섬 사람들은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지냈단다. 어머니는 그렇게 외진 섬에서도 더 외진 숲속에서 사셨다. 외할아버지는 나무를 때서 숯을 만들어 파는 숯쟁이셨는데, 그 동네에서는 숯쟁이를 거의 백정 수준으로 천대했단다. 삶이 힘들어서였는지 외할아버지는 굉장히 폭력적이셨다. 어머니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노라면, 거의 매일 욕을 먹고 두드려 맞은 이야기라서, 화가 나고 눈물이 흘러서 끝까지 듣지 못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난 어머니는 일자 무식. 학교를 잠시 다니셨지만, 동네 아이들이 너무 따돌리고 거리가 너무 멀어서 잠시 다니고 마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8남매 중 맏이라서 농사일 도우면서 코흘리개 동생들을 모두 업어 키우셨다. 나는 자신이 얼마나 불쌍한지 모르고 사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준을 댄다면, 아마도 어린 시절 우리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분이리라. 그래도 어머니는 17세 되던 해에 갑자기 각성, 목숨을 걸고 지옥섬(?)을 탈출했고, 서울서 식모살이를 하시다가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셨다.
어머니는 집중력이 뛰어나셨다. 내가 어릴 때, 어디선가 얻어 오신 일본 뜨게질 책을 보고 눈대중으로 뜨게질을 독학하실 정도. 하지만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답게 멀티태스킹과는 거리가 멀어서, 내가 어릴 적 집안은 늘 어지러웠고, 어머니는 부지런하고 깔끔한 아버지에게 늘 잔소리를 들으며 사셨다. 그냥 아버지와 성격이 잘 맞지 않았을 뿐인데, 어머니는 남편을 아버지처럼 하늘로 모시며 사셔서, 아버지 잔소리에 늘 고개를 숙이고 기가 죽어 지내셨다. 그리고 내가 당신을 닮을까봐 걱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나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어머니는 사교성이 부족하고(많이 수줍은 성격) 눈치가 부족하셨다. 그래서 친구가 적은 편이셨고, 주변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지는 못하셨다. 나는 이런 부분도 어머니를 완전히 빼닮았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친구가 많은 편도 아니었고, 사회생활을 아주 잘 하지도 못했다. 특히, 조직 생활에 원만하게 적응하지 못했다. 한 마디로, 나는 약간 외골수로 살았다. 그리고 수년 전 내가 너무나도 힘든 시기를 지냈을 때는, 거의 혼자서 절망감과 분노를 삭히며 살았고, 나다운 특성을 나 스스로 지독하게 업신여기고 끝없이 괴로워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 마침내 좋은 때를 만나, 검은 문을 힘겹게 열고 다시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일하기 시작하고, 아내를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내가 회복된 비결은? 놀랍게도, 어머니를 빼닮은 집중력이었다. 내가 수년간 혼자서 외롭게 살면서 대단히 좁고 깊게 파고들어 공부하고 연마한 지식과 경험을 팔면서 밥술을 뜨며 살게 되었다.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삶은 알 수 없다. (늘 그렇지는 않겠지만) 살다 보면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도 있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핏줄은 핏줄이다. 봄이는 할머니는 빼닮고, 아빠를 빼닮았다. 봄이가 이제 겨우 두살인데, 아무 것도 아닌 뽁뽁이에 온몸을 던져서(?) 엄청나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흐뭇하다. 사실, 세상에 이상한 성격은 없다. 쓸모 없는 성격도 없다. 어떤 성격이든지, 제대로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천재적인 능력으로 바뀔 수 있다. 자신도 바꿀 수 있고, 심지어 세상도 바꿀 수 있다. 그러니까 아빠인 내 역할이 중요하다. 봄이가 아이가 타고난 능력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발휘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15세기에 발간된 불교서적, 석보상절(釋譜詳節)을 보면 ' 아(我)답다' 라는 단어를 '아름답다'는 뜻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아(我)답다'에서 '아(我)'는 '자기'라는 뜻. 따라서 이를 해석하자면, 자기다운 모습이 아름답다는 뜻이 된다. 나는 우리 봄이도 '아름답게(=자기답게)' 자라나면 좋겠다. 엄마, 아빠에게 물려받은 성격과 특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수용하며, 잘 가꾸면 좋겠다. 그래서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자기다운 모습을 잃지 않으며 살아가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할머니와 아빠에게 물려받은 '집중력'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발휘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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