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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꼴값 혹은 간지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3. 1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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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꼴값 혹은 간지

     

    글쓴이: Y (2024)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고등학교 시절, 나는 노는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도록 오토바이를 타거나 음주 가무에 매진하느라 학교에 가면 하루 종일 쿨쿨 잤다. 부모님께서는 엄청나게 방황하는 아들을 지켜보시다 못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기학원에 등록해 주셨다. “Y야~ 솔직히, 너처럼 생겼으면 연예인 해야 돼.” 조금 민망하지만, 학창 시절엔 주변에서 이런 말 정말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이 정도 생기면 연예인 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연기학원 문턱을 밟으면서, 막연하게 나도 김민종이나 손지창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연기학원에서 최하위 학생이었다. 있는 대로 가오만 잡고 실력은 하나도 없는 어중이 떠중이 수강생. 바로 나였다. 다른 수강생들은 외모만 뛰어나지 않았다. 연기를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연습했다. 그들과 비교가 되니 점점 마음이 위축되었다. 무대에 서면 그냥 무섭고 쪽팔렸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데, 이 마음을 해결할 방법을 몰랐다. 객기로 싸움박질이나 할 줄 알았지, 진짜 나를 표현할 용기는 없었다. 결국 나는 연기 학원을 그만 두고, 예전 생활로 돌아왔다.

     

    그후 나는 마음을 잡고 공부를 시작했고, 재수와 삼수를 거치면서 성적을 많이 올렸다. 하지만 내신 성적을 포함하는 입시 제도 때문에 발목을 잡혀서 경기도 소재 모 대학교 사학과에 들어갔다. 사학과는 전국으로 돌아다니며 답사를 많이 다녔다. ‘술’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과였다. 나는 역사는 알지 못해도 ‘술’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주량을 늘려 놓았기에, 술을 마시면서 선/후배, 동기들과 금세 친해졌다. 술 덕분에 두터워진 인맥은 군대를 다녀온 후까지 이어졌는데, 친한 선배가 나에게 학생회장에 출마해 달라고 부탁했다. 선배가 부탁하니 뭔지도 잘 모른 채 후보가 되었는데 덜컥 붙어버렸다. 

     

    학교에서 단체로 답사 가면 주구장창 술만 마시던 놈이, 학생회장이 되고보니 엄청나게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명색이 회장이라서 그런지, 같이 수업 듣는 여자 후배들이 나를 찾아와 ‘선배님~ 이거 뭐예요?‘라고 자주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구라를 적당히 섞어서 둘러대며 상황을 모면하였다. 하지만 돌아설 때마다 엄청나게 부끄러웠다. 문득, 비슷한 상황에서 내내 부끄러워하다가 포기해 버린 연기학원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처럼 무력하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번엔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었다. 

     

    ’그래, 도서관에 가서 죽자! 최소한, 역사학 개론이라도 끝까지 읽어 보자!‘ 나는 이렇게 결심했다. 그리고 취업 준비를 뒤로 미루고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기간 내내 도서관에 엉덩이를 붙이고 책을 읽었다. 물론, 쉽진 않았다. 한 장 읽다가 이해되지 않아 딴 생각하고, 두 번째 장 읽다가 졸려 엎어져 자고, 셋째 장 읽다가 재미없어 담배 태우러 나갔다 오고, 넷째 장은 배가 고파 매점으로, 다섯째 장을 읽으려 할 땐 벌써 해가 떨어져 기숙사에 가서 잤다. 정말로 외롭고 힘들었지만,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니 조금씩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적어도, 후배들 앞에서 부끄러운 선배 모습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달까. 나는 변하고 있었다.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 보니, 연기 학원에서 도망쳤던 내 모습과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던 내 모습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이 기대에 찬 시선을 보내면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래서 종종 도망치고 싶어지고 포기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 시선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지 확실히 안다. 사람들 기대에 부응하는 일,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나 자신 앞에 어떻게 서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나는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두려워도 도망치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안내> 

    _ 본 글을 쓰신 Y 선생님에게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Y 선생님께서는 자기-돌봄 글쓰기 클래스 '글로위로' 기본반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피드백>

     

    1. 우선, 긴 이야기를 잘 잘라내셨다고 칭찬 드리겠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글을 쓸 때 멋지게  쓴 문장이 가장 중요할 듯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전체 구조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표현력이 뛰어나도, 내용을 적절하게 선택하고 배치하지 못하면, 글이 재미없고 밋밋해집니다. 

     

    2. 전체 이야기 구조를 짜고 내용을 배치하는 능력은 충분히 확인했지만, 응집력을 만드는 기술이 조금 부족합니다. 그래서 종종 문장이 덜컹거립니다. 훨씬 더 잘 쓰실 수 있는데, 문턱에서 서성이시는 듯합니다. 앞으로 수업을 열심히 들으시면서 잘 배우시면 실력이 향상될 수 있겠습니다. 

     

    3. 무엇보다도, 다소 민망하고 부끄러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꺼내서 진솔하게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치한 소년이 성숙한 남성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누구나 읽으면 마음이 움직일 만한 힘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앞으로 선생님 성장해 나가실 모습이 더욱 기대됩니다.


    <사회복지사 자기-돌봄 글쓰기 모임 - 글로위로, 2023년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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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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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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