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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구조 짜기 10계명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3. 19. 09:46728x90반응형
콜라병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위 그림을 보시라. 콜라병 두 개가 놓였다. 한 눈에 보기에도 왼쪽 콜라병이 조금 넉넉해 보인다. 배를 콜라로 두둑하게 채우고 싶거나, 마실 사람이 여럿이라면 왼쪽 콜라병이 좋겠다. 하지만 그냥 콜라를 조금 마시고 싶거나, 나 혼자 마실 거라면? 당연히, 오른쪽 콜라병이 좋겠다.
누구나, 이 상황을 보자마자 파악할 수 있다. 시각 정보니까. 곧바로 눈에 보이니까. 그렇다면 글이라면 어떨까? 왼쪽 콜라병처럼 조금 넉넉한 글과 오른쪽 콜라병처럼 날씬한 글이 있다면? 눈에 바로 보이는 콜라병처럼 금방 파악할 수는 없다. 내가 쓴 글을, 내가 표현하려는 생각과 감정을 낯설게 바라보지 않는다면.
한편, 우리는 콜라를 많이 마셔봐서 잘 안다. 갈증을 해소하려고 콜라를 마시지만, 마시면 마실수록 오히려 목이 말라온다. 역설이다. 글쓰기도 비슷하다. 내가 마음 속 생각을 많이 표현하고 싶으면 싶을수록, 그래서 많이 쓰면 쓸수록,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내용을 많이 쓸수록 글이 무거워지고 늘어지고 가라앉는다.
그렇다고 거꾸로 무조건 짧게 쓰고 적게 쓴다고 좋진 않다. 글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질수록 늘어지지만, 불필요하게 짧아질수록 불친절해진다. 짧게 쓰려고 애쓰면 필연적으로 글 내용이 추상적으로 흘러가 버려서, 해독하고 해석하는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힘들게 머리로 노동해야 한다.
글은 포화(飽和)되도록 써야 한다. 포화란 과학 용어로서, 용질이 용매에 더 이상 녹지 않는 최고 농도 상태를 뜻한다. 예컨대, 소금은 어느 정도까지는 물에 투명하게 녹지만, 농도가 아주 짙어지면 더 이상 녹지 않고 흰 잔여물이 남는다. 이와 대단히 비슷하게, 글에 녹이는 내용도 길이가 적절해야만 깔끔하게 녹는다.
그렇다면 내용에 맞게 적절한 길이로 포화되도록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체로, 글쓰기 초심자는 개별 문장을 멋지게 쓰고, 종종 문학적으로 수사법을 구사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만으로 글을 잘 쓸 수는 없다. 글은 어디까지나 논리적 구조물이고, 그래서 전체적인 균형과 흐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글 구조 짜기 10계명>
1. 글쓰기는 구조가 본질이다
학생들이 쓴 글을 지도하다 보면, 무시로 멋진 문장을 만난다. 어떤 학생은 마음 속에 품은 문학적 감수성을 곱게 풀어놓고, 어떤 학생은 뛰어난 언어 감각을 써서 탁월하게 비유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글 구조가 허약하면 고운 문학적 감수성도, 탁월한 비유도 금방 잊게 된다. 글은 단순히 문장 여러 개를 모은 집합이 아니다. 씨줄과 날줄을 조화롭게 엮어서 옷을 만들듯, 특정한 주제를 초점으로 삼아 다양한 문장을 녹여낸 구조물이다. 글쓰기는 구조가 본질이다.
2. 소재와 주제를 이해하자
지금 내가 쓰려는 글 내용을 요약해서 한 문장으로 적어 보자. 대체로 이 문장에서 주어가 '글감(소재)'이다. 그리고 이 주어와 이 주어에 대해서 어떻다고 쓴 뒷부분(글감에 관한 핵심 생각)을 합치면 '주제'가 된다. 예컨대, '소나무는 인간에게 도움을 준다' 라고 적었다면, 글감(소재)은 '소나무'이고 주제는 '소나무는 인간에게 도움을 준다'가 된다. 언제나 글을 쓰기 전에, 글감(소재)와 주제를 뚜렷하게 결정하라. 급하다고 옷을 안 입고 나가면 추워서 감기 걸린다.
3. 주제에 관해서 세 가지만 쓰자
주제를 뚜렷하게 정했다면, 이 주제를 좀 더 자세하게 쪼갠다. 머릿 속에서 주제를 이리 저리 굴리면서 세부 내용을 생각하되, 중요도에 따라서 순서대로 세 가지만 붙잡아 보자. 예컨대, 위 단락에서 제시했듯이 주제를 '소나무는 인간에게 도움을 준다'라고 잡았다면 이렇게 세부 내용을 정리할 수 있겠다: (1) 소나무는 기름을 많이 품어서 땔감으로 최고다. (2) 튼튼하고 습기를 먹지 않아서 목재로서도 최고다. (3) 소나무는 생명력이 강인하므로, 인내심을 배울 수 있다.
4. 글을 쓰는 목적을 생각하라
(시나 소설처럼 문학적인 글이 아니라면) 글을 쓰는 목적은 거의 언제나 다음 네 가지 범주 안으로 들어온다. (1) 서사: 내가 직/간적접으로 경험한 이야기를 정리한다. (2) 묘사: 내가 직접적으로 경험한 장면에 대해서 생생하게 그린다. (3) 설명: 내가 아는 지식이나 정보를 독자에게 전달해서 알게 한다. (4) 논증: 어떤 논제에 관해서 주장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를 댄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이 이 네 가지 범주 중에서 어디에 속하는지 곰곰이 따져 보라.
5. 서사와 묘사는 자연적 순서대로
서사는 이야기다. 이야기에는 우선 등장 인물이 나온다. 이 등장 인물이 시간에 따라서 수많은 행동을 보여준다. 따라서 서사문을 쓸 때는 시간 순서대로 중요한 사건/행동을 선택한다. 이때, 앞에서 쓴 이야기를 뒤에 또 다시 쓰지 말라. 묘사는 그림이다. 정지한 공간을 자연스럽게 눈으로 훑으면서 말로 그린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리든, 일단 순서를 설정했다면 벗어나지 말라. 이미 그린 내용을 나중에 또 다시 똑같이 그리지 말라.
6. 설명은 추상에서 구체로
설명은 말로(說) 밝히는(明) 행위다. 이때도 순서가 있다. 늦은 밤, 그대가 집에 돌아왔다고 가정하자. 초인종을 누르거나 열쇠로 문을 열리라. 그 다음에는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와서 불부터 켜리라. 그 다음에 차려 입은 옷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 입으리라. 설명도 비슷하다. 설명하려는 대상에 관해서 큰 이야기부터 소개한 다음,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불을 밝힌다. 수다떨면서 친구가 모르는 이야기를 내가 꺼냈을 때 어떻게 하나? 그때처럼 쓰라.
7. 논증은 논리적인 근거가 핵심이다
論證? 부디, 용어에 압도되지 마시라. '왜냐하면 ~ 때문이야' 대화 중에 이런 어구를 읊었다면 그대는 이미 논증을 사용했다. 논리학이니 삼단논법을 배워야만 논증을 쓸 수 있지는 않다. (물론, 배우면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이나 글을 훨씬 쉽게 가려낼 수 있다.) '왜냐하면 ~ 때문이야' 안에 그럴 듯하게 들리는 내용을 채울 수 있다면 충분하다. 논증문을 쓰려면, 내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뚜렷하게 정리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정리하면 된다. 이 정도면 구조로 충분하다.
8. 언제나 독자가 왕이다
글쓰기 초심자는 상당히 자주 독자를 고려하지 않고 글을 쓴다. 무시로 내가 쓰고 싶은 말에 빠져서, 너무 어렵게 쓰거나, 너무 장황하게 쓰거나, 흥미롭지 않게 쓴다. 마치 눈을 감고 자동차 운전대를 잡은 상황과 같다. 어디까지나 글쓰기는 소통 수단이다. 상대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쓸모가 없다. 그러므로 부디 기억하시라: '독자에게 노동을 시키지 말라' 독자가 뭔가 많이 안다면 어렵게 써도 된다. 하지만 독자가 뭔가 잘 모른다면? 쉽고 또 쉽게 써야 한다.
9. 압축하고 풀어내고
언제나 내 글을 읽을 독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고려하고, 글을 쓰는 목적을 깊이 생각하면서 글 구조를 짜라. '내가 쓰고 싶은 내용' 말고 '독자가 읽고 싶어할 내용'을 떠올리라. 내가 '어째서 이 글을 쓰려는지' 목적을 계속 상기하라. 독자와 목적(주제)에 따라서, 어떤 부분은 길게 풀어 쓰고 싶지만 간결하게 압축해야 하고, 어떤 부분은 짧게 넘어가고 싶지만 조금 더 길게 풀어서 써야 한다. 내용을 압축하거나 풀어내려면 반드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10. 딱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 인생에 관해서 세 가지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딱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2005년에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축사를 읽었다. 그때까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세 가지 꼭지로 기가 막히게 간단하게 정리했다. 왜? 인간은 타인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남이 쓴 글을 읽을 때 많아 봤자 세 가지 정도 이야기만 기억한다. 우리도 스티브 잡스를 흉내내자. 욕심을 줄이고 딱 세 가지만 쓰라.
<사회복지사 자기-돌봄 글쓰기 모임 - 글로위로, 2023년 작품집>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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