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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3. 2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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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글쓴이: 민경재(안산시초지종합사회복지관 분관 둔배미복지센터 센터장, 2024)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아들 졸업식에 간다. 꽃다발을 한 아름 들고 A초등학교 교문을 지나 오른쪽에 있는 체육관 2층으로 향한다. U자형 계단을 올라 문 앞에 서니 학생들이 열과 줄을 맞춰 앉아 있고 그 뒤로 학부모석이 마련돼 있었다. 나는 아들을 보고 싶어서 학생석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현수막이 무대 위로 높이 걸렸다. 졸업식 시작을 기다리며 두리번거리다 무대에 시선이 멈춘다.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입학했던 날이 엊그제인데...” 너무나도 상투적인 말인데, 왠지 마음이 짠해져서 졸업식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눈물이 왈칵 터졌다.

     

    나는 서른 넷에 결혼해서 서른 여섯에 첫 아이를 낳았다. 나이만 들었지, 실수투성이 초보 엄마여서 아이를 잘 돌볼 수 있기도 전에 복직해서 출근해야 했다. 아침마다 전쟁이 벌어졌다. 나는 육 개월 된 아들을 포대기에 둘러 업고 8시까지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서 죽어라 뛰었다. 그리고 직장에 늦지 않기 위해 또 죽어라 뛰었다. 직장에 출근해서도 하루종일 뛰듯이 정신없이 지내고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나마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있어서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었을 때는 하교한 이후 돌봄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근로자복지관 방과후교실에 보내고 싶은데, 아이가 복지관까지 가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았다. 여러 모로 고민하다가 태권도학원에 어렵게 부탁해서 방과후교실 등·하원 문제를 간신히 풀었다. 스케줄을 정하고 나니 아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지 또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입학일에 맞추어 며칠 동안 휴가를 냈다. 입학식에 가서 학교도 둘러보고 준비물도 챙기고 하교 후 잘 이동하는지 확인했다. 아들은 입학 다음 날 아침에 내게 말했다. “엄마,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듬직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오늘은 준비물도 많으니, 엄마가 같이 갈게.” 아들은 그날 이후 혼자서 학교에 갔다.

     

    아들이 2학년이 되었을 때, 태권도 관장이 바뀌고 복지관 방과후교실까지 태워줄 수 없다고 통보받았다. 고민스러웠지만 2학년 때까지는 복지관에 다녀보기로 했다. 복지관 셔틀버스 타는 곳을 알아보았다. 학교에서 셔틀버스 타는 곳까지 아이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렸다. 이틀 동안 아이와 같이 길을 걷고 셔틀버스를 태워 보냈다. 그렇게 생활이 이어졌다. 어느날 복지관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성호(가명)가 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안 와요.” 어디로 간 걸까, 셔틀을 놓쳤을까, 괜찮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스칠 때 수화기 넘어 선생님 목소리가 울린다. “성호야! 어머니, 성호 왔어요! 셔틀버스 기사님이 성호를 못 보고 지나쳤나 봐요, 여기까지 걸어왔데요!!” 나도, 선생님도 그날 펑펑 울었다. 셔틀 타는 곳에서 복지관까지 가기 위해서는 6차선 도로 길을 걷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하고 여러 아파트 단지를 지나며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어린 아들이 혼자 걸었을 그 길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겨울 방학이 되었다. 아들이 열 살, 딸이 여섯 살이었다. 아들은 여동생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혼자서 공부방에 갔고 친구네 가서 점심을 먹었다. 개학을 해서도 오랫동안 동생 등원을 도왔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엄마, 은희(가명)가 아침에 말을 안 들어서 힘들어요” 그제야 아들이 보인다. 어릴 때부터 아들은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침마다 동생 챙기느라 시간에 쫓겨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 엄마가 데려다 줄게.” 다시 내가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지 이 주 정도 지났을 때 아들이 내게 물었다. “엄마는 안 힘들어요?” “힘들지, 힘들어도 엄마니까 해야지.” 아들은 그 이후 다시 동생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었다. 그러다 힘들어지면 다시 내가, 괜찮아지면 다시 아들이 했다.

     

    아들은 본인이 마주한 일상을 담담히 살아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복지관에 혼자 걸어갔을 때도 ‘가야 하니 갔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학교 준비물을 제때에 챙겨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단 한 마디도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렇게 살았다. 아들이 도와준 덕에 내가 살았다. 이 기특한 아들이 무대에 올라 졸업장을 받는다. 이제 아들은 나보다 키가 크고, 나보다 잘 웃는다고, 아들이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한껏 웃으며 졸업사진을 찍는데 표정이 마냥 밝고 예쁘다!

     

    <안내> 

    _ 본 글에 나오는 민경재 센터장님의 자녀 이름은 가명입니다.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민경재 센터장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민경재 센터장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심화반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우와~ 대단히 잘 쓰셨습니다, 라고만 쓰면 과찬이라고 말씀하시겠지요? 바로 근거를 대겠습니다.

     

    2.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에피소드를 잘 선택/배치하셨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민경재 센터장님께서 아드님과 함께 어떻게 죽어라 뛰어다니셨는지(?) 한 방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마치 사과를 돌리면서 빈틈없이 깎듯이 각 에피소드도 훌륭하게 요리하셨습니다. 먼저 상황을 던지시고, 그 상황에서 중요한 요소를 순리대로 부드럽게 전개하셨습니다.

     

    4. 전체 글 구성을 우리 클래스에서 배우신 대로 정확하게 설계하셨습니다. 먼저, 나중에 일어났지만 인상적인 장면(졸업식)을 제시하시고, 이야기를 쭉 서술하신 후에, 다시 첫 장면으로 연결되도록 쓰셨지요(C-A-B-D-C). (이 부분이 가장 훌륭합니다. 결국 구조를 안정적으로 짜야만 글이 좋아집니다.) 

     

    5. 마지막 대목도 훌륭합니다. 민경재답게,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고 소박합니다. 표현도, 감성도 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던지는 메시지가 독자 마음에 더욱 묵직하고 강력하게 다가옵니다. 

     

    6. 이 글을 열 번이 넘게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완벽한 글이라고 말할 순 없겠습니다. 하지만 민경재 선생님께서 그동안 우리 글쓰기 클래스에서 배우신 내용을 스스로 거의 완벽하게 소화하셔서 쓰셨다고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실용적) 글을 쓰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고, 배운 내용을 소화하려고 노력한다면, 반드시 실력을 높일 수 있다'고요. 이 글을 읽노라니, 제가 옳았다고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에게 이보다 더 값지고 보람찬 순간은 없답니다. (제 마음, 아마 모르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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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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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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