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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 우주가 도왔다!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4. 23.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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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우주가 도왔다!

     

    글쓴이: 권송미(사랑누리장애인단기보호센터 원장, 2024)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했다. 비가 와서 공기가 꿉꿉해지고 기압이 낮아지면 우리 사랑누리(장애인 거주시설) 직원들은 긴장한다. 발달장애와 뇌전증 장애를 중복으로 가진 대영 씨는 이런 날씨에 뇌전증 발작이 종종 온다. 그래서 지켜보느라 온종일 살얼음판이다.

     

    갑자기 원내가 소란하다. 민은씨가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 외친다. 목소리도 우렁차고 비가 오는 날이라 소리가 안으로 울려서, 청각 자극이 있는 재운 씨가 괴로워한다. 어제 효과를 보았던 방법을 썼다. , 재운 씨가 좋아하는 노래를 내 휴대전화로 틀어서 재운 씨 손에 쥐여 주니 조금씩 안정된다.

     

    어제 직원들이 모두 쉬는 법정공휴일이어서, 나 혼자서 낮 근무와 밤 근무를 24시간 연속으로 했다. 퇴근해야 하는데, 원내 상황이 어려우니 쉬이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체력이 떨어져 오늘은 너무 힘들다.

     

    “엄마 엄마” 외치던 민은씨가 점심 밥상을 엎었다. 날아오르는 반찬 그릇을 보는데, 꼭 슬로우모션 같았다. 와장창 그릇들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쉬지 않고 일했는데 잠도 부족해서 나도 정신이 멍한가 보다. 어찌어찌 치우고 핸드폰 캘린더 일정을 살핀다. 뭔가 이상하다. 그런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래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당장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 민은씨를 토닥인다. 방 밖 소란스러운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들리지 않았다.

     

    따르릉! 휴대전화 벨 소리가 따갑게 울려 눈을 떴다. 큼큼 소리내어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무 일 없이 내내 깨어 있었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네. 강사님, 주차는 하셨나요? 주차할 곳이 많지 않아서 헤매실 것 같아서요.”

    순간 머릿 속이 벼락 맞은 듯했다. 가만가만 오늘이 며칠이지? 캘린더에 일정이 없었는데…. 맞다! 내가 어제부터 오늘까지 재운씨에게 휴대 전화를 맡겼지? 어쩌지? 어쩌지? 아, 출발부터 해야겠다.’

    “제가 아직 가고 있어요. 도착해서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가방만 들고 달려 차에 도착했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거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대전지역 5개 복지관이 모여서 여는 인권교육인데, 어쩌면 좋으냐? 울고 싶었다.

    ‘점심 먹고 알아차렸다면 좋았을 텐데... 아니, 아니, 재운 씨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지 말걸. ’

    점심 후 순간 잠이 들었던 내가, 일정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가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교육하는 곳까지 30분 남은 시간 29분. 정말 최선을 다해서 운전했다. 적색신호가 걸려서 내비게이션 예상 도착 시간이 1분씩 늘었다 줄었다 할 때마다 내 심박수도 반복해서 높아졌다 낮아졌다. 

     

    교육장 앞.

    “기관 앞에 주차하시면 안 돼요. 교육받으러 오셨어요?”

    인사를 건네는 선생님께 다짜고짜 차 열쇠를 쥐여 주었다.

    “선생님. 인권교육 강사입니다. 시간이 다 되어 죄송하지만, 이동 주차 부탁드리겠습니다.”

    전력을 다해 3층으로 뛰었다.

     

    다행이다. 관장님 인사 말씀이 길다. 사진 촬영도 해야 한단다. 화장실 다녀올 시간이 있구나.

     

    강의가 끝나고, 나에게 강의를 의뢰하셨던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전화했다. 수화기 너머 선생님이 껄껄 웃으며, 말씀하셨다.

    “온 우주가 권송미 선생님을 도왔네요. 내가 오늘 못 가게 되어서, 선생님께 오늘 못 뵈어 아쉽다고 인사하려고 전화했는데…. 강의 잘하셨지요? 다음에 또 만나요.”

     

    그렇다. 온 우주가 도왔다. 주차 안내 전화를 못 받았다면? 신호가 딱딱 맞아서 30분 걸리는 길을 27분만 에 주파하지 못했다면? 도착한 순간 주차를 도와 줄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마지막으로 하필이면 오늘 관장님께서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으아!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길고 긴 하루가 끝난다. 온 우주가 나를 도와주었으니 힘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안내> 

    _ 본 글에 나오는, 장애를 가진 사람 성명은 모두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_ 본 글을 쓰신 권송미 원장님에게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권송미 원장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글로위로' 심화반에 참여하셨습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문장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번역투 문장을 크게 줄이셨고, 이제는 한국어답게 풀어쓰시네요. 무엇보다도, 동사 뒤에 ‘ㅁ’을 붙여서 억지로 명사로 만드는 습관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대단히 높게 평가합니다. 문장을 쓰는 습관은 운명과도 같습니다. 좀처럼 바꾸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많이 바꾸셨습니다.)

     

    2. 내용상 군더더기도 눈에 띄게 많이 줄었습니다. 이제 와서 솔직하게 말씀드리지만, 처음에 권송미 원장님 글은 거대한 군더더기 덩어리였답니다. 핵심 주제에서 벗어나는 (배경) 이야기도 워낙 많이 쓰셨고, 비슷한 표현을 비슷한 방식으로 중복 표현하셨지요. 그런데 이제는 정말 간결하게 쓰시네요.

     

    3. 부디 안심하세요. 이 글은 절대로 길지 않아요. 표현하시려던 글감에 딱 맞는 길이입니다. 일반적으로 글 길이는 상대적입니다.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 어떤 맥락에서 쓰는지에 따라서 글 길이는 결정됩니다. 쓸 내용이 적은데 많이 쓰면 글이 늘어지고, 쓸 내용은 많은데 적게 쓰면 글이 불친절해집니다. 이런 감을 익혀가시는 듯해서 보기 좋습니다. 

     

    4. 꾸준히 노력하셔서 크게 발전하셨는데, 권송미 원장님 최대 강점은 줄지 않았네요. 부드럽고 섬세한 문학적 필치 말입니다. 참말로 다행스럽습니다. 아무리 글 실력이 향상되어도 개성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거든요. 그 누구도 따라서 쓰지 마시고 본인 글을 쓰세요. 권송미만 쓸 수 있는 글을 쓰세요. 강점과 개성을 잃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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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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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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