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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5살 편의점 사장이(었)다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6. 12. 07:15728x90반응형
나는 25살 편의점 사장이(었)다
글쓴이: 표지수 (인천종합사회복지관 복지공동체과 팀장, 2024)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나는 25살 편의점 사장이다. 1년 중 해가 가장 긴 하지에도 어둑한 새벽 냄새를 맡으며 출근하러 길을 나선다. 느을 막히는 고속도로에는 택시 한 대도 없이 가로등 불빛만 번진다. 하루 종일 매장 청소, 검품, 발주까지, 모든 일을 나 혼자 한다. 문득, 오전 11시 30분이 그리워진다. 점심시간이 되면 동료와 함께 점심으로 뭘 먹을지 즐겁게 골랐는데... 클라이언트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던 시간도 그립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길고 길었는데도. 그런데, 지금 나는, 외. 롭. 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손님을 붙잡고 질문하고, 교대 시간이 되어 알바생이 와도 이런 저런 농담을 시시콜콜하게 주고받으며 퇴근을 미룬다. 상온배송 기사님, 택배 기사님, 본사 직원, 담배 회사 직원 모두, 자기 할 일만 하고 쌩 가 버리는데, 너무 아쉬워서(?) 커피 마시고 가라고 애원한다. 팔뚝에 문신을 가득 새긴 금목걸이 손님이 와서 비속어를 사용하며 센 척을 해도 말을 걸어줘서 고맙다.
교대 10분 전, 알바생과 정산을 맞추고 있는데 아기 엄마 손님이 유모차를 끌고 들어왔다. 유모차엔 어린 아이가 타고 있었고, 그 뒤로 6살 정도 된 아이가 칭얼거리며 따라 들어왔다. “너 진짜 한 대 맞아야 정신 차릴래? 나가!” 아이에게 소리치며 문밖으로 내쫓는다. 무슨 영문인진 모르겠으나 아동학대로 의심된다. “무슨 일이세요?” 하고 일단 엉엉 우는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자 엄마가 같이 운다. 유모차에 탄 아기도 운다. 갓 스무살이 된 알바생도 울 것 같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진정을 시키고 다른 손님들의 눈을 피해 안쪽 테이블로 안내해 녹차를 드렸다. 손님은 길고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에게 왜 화를 냈는지부터 시작해서 둘째 임신 후 남편과 이혼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 왕년에 스튜어디스 준비를 했다는 이야기에 도착했다. 나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은 손님은 연신 고맙다며 하리보 젤리(아이가 운 이유) 두 봉지를 기분 좋게 계산하고 갔다.
퇴근은 1시간이나 늦어졌는데, 매출은 단돈 3천원. 손님에게 늘 영혼 없이 “자주 오세요.”라고 인사말을 내뱉었는데, 이번만큼은 진심이었다.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세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거다.’
부모님께 편의점을 정리하겠다고 통보했다. 앞으로 뭘 할지 묻는 엄마 말에 ‘사회복지사’ 하겠다고 말했다. 성공에 대한 자신감은 있지만 다시 돌아가야겠다. 돌아가면 내 월급이 얼만지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돌아가야겠다. 그냥 사람이 좋아서 돌아가야겠다. 부모님께선 언제나처럼 딸을 굳게 믿어 주셨다.
나는 이렇게 난리법석 사회복지 판으로 돌아왔다. 수익을 얻는 직업보다도 사람을 얻는 직업이 좋아서 돌아왔다. 물건이 오고 가는 장면보다 마음이 오고 가는 장면이 훨씬 더 즐거워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오늘, 지금도 외근 메이트와 함께, 화가 잔뜩 난 클라이언트를 어렵게 달래고 와서도 즐겁게 점심 메뉴를 고르고 있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표지수 팀장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표지수 팀장님께서는 인천시사회복지사협회가 기획한 '성숙을 담는 글쓰기, 회전목마(제 2기)' 클래스에 참여하셨습니다.
_ 인천시사회복지사협회 김성준 회장님, 박정아 사무처장님, 차수현 주임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걸작을 쓰셨습니다. (자랑스럽고 또 자랑스럽습니다.)
2. 문자로 이렇게 쓰셨죠? “사회복지사로 다시 돌아온 이야기는 명확하면서도 짧은 글에 담을 수 없어서... 7줄 숙제를 어겼습니다.” 표지수 선생님께서 약간 오해하신 듯해요. 7줄 글쓰기는 ‘살’이 아니라 ‘뼈대’입니다. 당연히, ‘사회복지사로 돌아온 이야기’ 즉, 내용은 너무 많죠. 도저히 7줄로 줄일 수 없죠. 세세한 감정과 고민을 어떻게 7줄로 줄이겠어요. 하지만, 뼈대는 다릅니다. ‘7줄로 쓰라’는 말은 세세한 내용을 우겨 넣으라는 뜻이 아니라, 좀 더 중요한 구조를 발라내라는 뜻입니다. 비유컨대, 표지수 선생님 말씀은 “살이 너무 쪄서 다이어트를 할 수 없어요.” 인데요, 아뇨. 살이 아무리 찐 사람도(표현할 내용이 아무리 많아도), 얼마든지 다이어트를 할 수 있습니다(뼈대는 발라낼 수 있습니다).
3. 일반적인 사회복지사와 달리, 표지수 선생님은 기본적으로 간결하게 쓰시기 때문에, 정말로 좋습니다. 다만, 간결하게 쓰면 설명이 부족해질 수 있어요. 설명이 부족해지면 글이 뻑뻑하게 느껴질 수 있고요. 간결하다고 무조건 좋지는 않지요. 그러니 늘 고민하세요. '독자가 내 글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가?' 라고요.
아무도 투덜거리지 않았다(내가 25살에 편의점 사장이 되었던 사연)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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