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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복지사, 사람을 만나다 (표지수 사회복지사 편)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6. 27.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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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문) 사회복지사, 사람을 만나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만, 어떤 사람은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강점관점실천연구소와 인천시사회복지사협회가 함께 진행하는 '성숙을 담는 글쓰기(제 2기)'에 참여한 사회복지사들 마음 속에도 그런 사람이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과 만난 날, 마법에 홀린 듯 힘이 나고 보람을 느낀 날, 사회복지사로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날, 에 대해서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 귀한 글을 온 세상 동료들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사회복지사, 사람을 만나다 (표지수 사회복지사 편)

    부제: 우리는 미친X이 맞았다

     

    글쓴이: 표지수 (인천종합사회복지관 복지공동체과 팀장, 2024)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근 후 친구와 함께, 단골 맥주집을 찾았다.

     

    사장님: 사회복지사라고 했지? 어디서 근무한다고?

    나: 인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해요!

    사장님: 정말? 나 10년 전에 거기서 봉사 활동 했는데?

    나: 정말요? 무슨 봉사 하셨어요?

    사장님: 밑반찬 전달 봉사 했어.

    나: 어? 저 밑반찬 담당하고 있어요!

    사장님: 어? 혹시 허성인(가명)님 아직도 밑반찬 받으셔?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나. 단골 맥주집 사장님이 내가 근무하는 복지관 봉사자였다니. 사장님 덕분에 허성인 아버님 얼굴이 문득 떠올라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야 이 미친X아.” 육두문자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우리 복지관에서는 인근 고등학교 남은 급식을 가져와 소분하여 반찬이 필요한 가정에 전달한다. 말복 날, 급식 메뉴로 한방 삼계탕이 나왔다. “어르신들 진짜 좋아하시겠다!” 좋아하실 모습을 상상하며, 기분 좋게 닭다리, 닭가슴살, 대추, 인삼 골고루 퍼담는다. 그런데 다음날 옆 팀 선생님이 전화를 바꿔준다. “허성인 아버님이신데요, 화가 많이 나셨어요. 밑반찬 관련 민원 같아요.”

     

    “야 이 미친X아.”

     

    화들짝 놀란 나는 “아버님, 욕설은 하지 마시고요. 무슨 일이죠?” 여쭙는다. 아무래도 약주를 거하게 드신 듯하여 일단 말씀을 가만히 들었다. “이걸 먹으라고 가져다 준 거야? 닭 뼉다구는 너나 처먹어. 음식물 쓰레기도 아니고(생략)...”

     

    횡설수설 욕설이 난무하는 10분, 결론은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푹~ 고았더니 살이 잘 발라져서 그래요. 뼈만 드리지 않았어요.” 친절히 설명해도 아예 귀를 막고 듣지 않으신다. 결판을 내러 외근 메이트와 함께 가정방문을 나선다.

     

    반지하 방 내려가는 계단부터 막걸리 냄새가 진동한다.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초파리를 해치고 열려있는 현관문을 두드린다. 바닥에는 국물과 쉬어버린 깍두기가 엎어져 있다. 어제 전달해드린 반찬을 식탁도 없이 바닥에 그대로 놓고 드셨나 보다. 자초지종 뼉다구(?)에 대해 설명했더니, 전화로는 그렇게 화를 내놓고 허옇게 쳐진 속눈썹만 꿈뻑거리신다. 상황을 파악했으니 그냥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갑자기 울컥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 그리고 여기 미친X이 어딨어요?” 아... 누르지 말아야 할 핵폭탄 버튼을 눌러버리고야 말았다.

     

    허성인님: 내가 언제 선생님한테 미친X이라고 했어? 복지관 미친X 말한 거지. 나한테 음식물 쓰레기 먹으라고 준 X.

    나: 그 미친X이 저희에요, 아버님.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아니에요. 삼계탕이에요. 삼계탕. 말복이라서 아버님 건강식 챙겨드릴 생각에 저희가 기대하고, 땀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전달해 드렸는데, 아버님은 저희 마음도 몰라주시고, 욕하시고, 저 진짜 너무 속상해요. 그리고 아버님 맨날 술 안 드신다고 해놓고 술 드시잖아요. 안주로 드시라고 열심히 반찬 드리는 거 아니에요. 아버님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지내시라고 우리 선생님들이랑 매일 무겁게 양손 가득 음식 전달해 드리잖아요. 아버님도 알아주시고 술도 줄이시고 건강하게 지내시려고 노력하셔야지. 왜 욕하세요!

     

    매번 ‘네.’, ‘죄송합니다.’ 라고만 말하다가 갑자기 터져버린 우리 모습을 보고 아버님도 적잖게 당황하셨다. 이미 잔뜩 술에 취하셨으니 아무리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어도 상황을 정리할 순 없다. 아버님은 지금 알겠다고 말씀하시고 다음에 또 그러실 거다. 또 술 드실 거고, 반찬 투정도 하실 거다. 하지만 이번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아버님께 속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앞으로 안 그럴게.” 내가 예상한 대로, 고개를 푹 숙이시고 아버님이 내뱉은 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외근 메이트와 함께 이미 쉬어버린 깍두기, 엎어진 삼계탕을 치우고 닦았다. 썩은내가 진동하지만 아버님 앞에서 티를 낼 수도 없고, 인상을 찌푸릴 수도 없는 우리가 너무 처량했다. 그래서 더더욱 아버님이 미웠고, 조용히 음식물을 챙겨 집에서 나왔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야근까지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허성인 아버님 댁을 지나가다, 습관처럼 현관문 틈으로 잘 계신지 확인한다. 다음 날 아침엔, 모닝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에 아버님 댁 창문 불이 켜져 있는지 확인한다. 외근 나가는 길에 괜히 아버님 댁을 지나친다. “이 정도면 우리 스토커 아니야?” 외근 메이트가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미친X이 맞았다. 온갖 욕을 다 먹고도 아버님을 걱정하며 근처를 서성이는 우리는 사회복지사다.

     

    <안내> 

    _ 본 글을 쓰신 표지수 팀장님에게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표지수 팀장님께서는 인천시사회복지사협회가 기획한 '성숙을 담는 글쓰기, 회전목마(제 2기)' 클래스에 참여하셨습니다. 

    _ 인천시사회복지사협회 김성준 회장님, 박정아 사무처장님, 차수현 주임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우와~ 걸작을 쓰셨습니다. 전체적으로 꼭 필요한 내용만 선택해서 간결하게 쓰셨지만, 정말로 드러내고 싶었던 대목에서는 과감하게 표현하셨어요. 한 마디로, '간결하게 쓰라'는 주문을 완벽하게 이해하셨다고 생각합니다.  

     

    2. 가끔씩 우리는 썩은내가 진동하는 배설물도 치워야 합니다. 모닝 커피를 들고 즐겁게 산책하고 싶은 청춘 사회복지사도, 때로는 이렇게 험한(?) 일도 처리해야만 합니다. 때로는 상스러운 육두문자도 들어야 합니다. 바닥에 흩어진 쉰내나는 깍두기와 아까운 삼계탕을 걸레로 훔치면서, 표지수 팀장님과 외근 메이트는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하셨을까요. 그동안 날이면 날마다 뼈가 빠지도록 반찬통을 들고 계단을 오르셨을 텐데, 그 마음이 산산조각 나서 흩어진 듯하여 눈물을 삼키셨겠지요. 아버님께 적나라하게 말씀하셨던 행동을 적어도 겉으로는 적극적으로 지지하긴 어렵지만, 그 마음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3. 이렇게나 젊은 사회복지사가 이렇게나 제대로 현장에서 겪은 일을 글로써 정리하시는데, 앞으로 5년, 10년 후에는 얼마나 더 성장하실까 싶어 기특하고, 자랑스럽고, 기대합니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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