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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물러가라!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7. 12. 07:32728x90반응형
글쓴이: 백운현 (사회복지법인 푸른초장 대표이사, 2024)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나는 대학시절 장애인 시설에서 꾸준히 자원봉사했다. 버스를 타고 30분쯤 변두리로 나가서, 30분쯤 걸어가면 거대한 장애인 시설이 보였다. 정기적으로 봉사하면서 이용인과 친밀하게 지냈다.
어느 따뜻한 봄날, 마당 벤치에 앉아서 20대 지영씨와 대화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살아서 좋겠네요?” 그러자 지영씨는 곧바로 반박했다. “그럼 저랑 바꿔 살래요?” 나는 순간 당황해서 말을 못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지영씨가 외진 곳에 살아서 답답해하고, 가끔 시내로 나가서 외식하고 노래방도 가는 시간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시설은 왜 변두리에 있어야 할까?’
장애인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인가? 장애인을 부담스러워하는 주민이 넣는 민원을 피하기 위해서인가? 넓고 저렴한 땅이 필요해서인가? 지영씨와 대화를 나눈 후 마음 속에서 온갖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올랐다.
내가 언젠가 장애인 시설을 준비한다면 도심 속에서 평범한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품게 되었다. 도심은 현실적으로 땅값이 비싸고 주민 민원이 폭발할까봐 걱정됐지만, 잘 준비해 보기로 했다.
나는 11년 동안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우수시설을 방문해 보고, 장애인 사역을 먼저 시작한 선배 목사님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정도 여건이 마련되었을 때, 더 미루면 영영 시작하지 못할 듯해서 장애인 시설을 세울 장소를 실제로 찾아보았다. 비용 문제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변두리 저렴한 땅을 선택해야 했다. 한적한 변두리에 자리 잡은 넓은 땅을 둘러보았는데, 주변 환경도 아름답고 땅값까지 저렴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2000년 겨울, 우리 부부는 아파트에 ‘장애아동 전문 놀이방’이라고는 이름을 붙이면서 장애인 공동체를 소박하게, 그러나 대담하게 시작했다. 큰 규모로 많은 이용인과 함께 살아갈 순 없었지만, 좋은 이웃들을 만날 수 있었고 지역사회 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있어서 매우 인기가 높았다. 그러자 곧 이용인이 많아져서 4층짜리 상가주택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나, 이용인이 더 많아지고, 이용인 평생계획을 준비해야 해서 건축 계획을 세웠다. 주변에 전원주택이 자리 잡고 있어서 아름다운 동네 입구 부지를 매입해서 건축을 시작했다.
“장애인은 물러가라!” “장애인과 함께 살 수 없다. 당장 떠나라!”
성난 주민들이 현수막 수십 개를 공사현장과 마을 주변에 걸고 놓고 시위해서 1년 여 동안 무척 고통스러웠다. 내가 죽을 것 같이 힘들어서 건축을 포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더니 부모님들이 흥분해서 말했다.
“목사님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죽을까요?” “억울해서 물러날 수 없어요.”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발품을 오래 팔아서, 시(市)에서 이제 막 개발을 해서 아직 건축이 진행되지 않은 신도시 개발지역을 찾아냈다. 허허벌판이었지만, 아직 건축이 진행되지 않고 토지 분양만 하고 있어서, 정말 좋았다. 우리는 포기하기 직전에 기적적으로 신도시에 멋진 장애인 공동체를 건축할 수 있었다.
“민지씨는 어느 미용실에 가나요?”
“네, 민지씨는 OO미용실 파마가 잘 나와요.”
“상희씨는요?”“네, 상희씨는 OO미용실 커트가 잘 어울려요”
푸른초장 주변에는 미용실이 10개가 넘는다. 푸른초장 이용인은 자신에게 맞는 미용실을 선택한다. 마트, 병원, 식당, 커피숍도 본인이 결정한다. 우리 이용인이 자주 가는 식당 사장님은 단골손님이 오면 크게 환영하고 서비스도 풍성하게 주신다.
“맛있는 떡 좀 가져왔어요.”
늦은 저녁, 마을 상인회 회장님인 OO떡집 사장님이 오셨다. 이웃 빵집에서 케익도 몇 개 후원받아 함께 들고 오셨다.
“매번 이렇게 맛있는 떡과 간식을 챙겨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이용인이 사장님 너무 좋아해요!”
“팔고 남은 떡 조금 챙겨 왔어요. 우리 동네에 좋은 이웃이 있어 참 좋아요.”
유난히 목소리가 큰 사장님 웃음소리에 온 동네가 따뜻해진다.<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백운현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백운현 선생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심화반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동네에서 함께 어울려 살다 보니, '결사 반대' 대상이었던 푸른초장과 이용인 분들도 그렇게나 죽을 각오로 반대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그냥 '좋은 이웃'이라는 사실을, 결국엔 모두 알게 되었네요. 막상 넘고 보니 낮은 벽이었달까요. 약간 허탈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마음 속에 높게 세운 모든 벽은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무척 낮죠.
그래서 '경험'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모르는 대상을 두려워하니까요.
누구나 쉽게 걷는 똑같은 길을 엄청나게 고생하며 멀리 돌아오셨지만, 이제 뒤따르는 사람들은 조금 더 쉽게 걷겠지요.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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