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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의자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7. 11. 07:16728x90반응형
A. 7줄 글쓰기
[인물/현재]
1. 원내 경로당행사를 위해 체육관의자를 옮겼다.
[이야기/과거]
2. 접이식 철제의자, 파란색, 검색하면 제일 저렴하게 뜨는 의자.
3. 시골집에서 신택지 연립주택으로 이사, 엄마가 의자사러가자고. 신난다!
4. 새 의자를 사면 공부가 저절로 잘되겠지? 두근두근.
5. 엄마는 가구점에서 고심하다가 파란색 접이식 의자를 골랐다.
6. 집에 오는 내내 입이 닷발 늘어져.[깨달음/현재]
어느 틈에 사라진 물건들. 잊혀졌던 인연.
B. 확장판 글쓰기
새 의자
글쓴이: 김정현 (안동성좌원 복지기획과 팀장, 2024)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체육관 행사를 준비하느라 한쪽 구석에 모아둔 의자를 꺼낸다. 흔한 파란색 철제 접이식 의자. 인터넷 쇼핑몰에서 낮은 가격순으로 검색하면 먼저 나온다. 한 시간 정도 앉아 있으면 슬슬 허리와 엉덩이가 아프다. 좌석을 다 배치하고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기대 본다. 딱딱한 느낌이 익숙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고향 동네가 시로 승격되었다. 곧바로 도시 개발사업이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는데 내가 살던 시골집도 개발 구역에 포함되어 이웃들과 우리 가족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만 했다. 이층 연립주택이 십여 동 모여 있는 주택 단지로 가면서 냉장고와 탈수기, 컬러TV를 처음 샀다.
옛집을 떠나와서 섭섭했는데, 새 집에 새 물건을 들여 놓으니 갑자기 도시사람이 된 듯 왠지 어깨가 으쓱해졌다. 새 집에 어울리는 새 마음을 품고 공부해 볼까 생각하며 책상 앞에 앉으려는데 의자가 없다. 손때 묻은 의자를 어디로 치우셨는지 궁금하지는 않았고 ‘이 참에 새 의자도 사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엄마를 크게 불렀다.
“엄마, 의자가 없어서 공부를 못 하겠어.”
엄마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의자를 사러가자고 말씀하셨다. ‘어떤 의자를 살까? 휜색에 바퀴가 달린 놈이 좋겠지? 방석은 최대한 푹신해야 오래 공부할 수 있다고 엄마를 졸라야지, 등받이가 넘어가는 기능까지 바라면 좀 욕심인가 히히.’ 앞서가는 엄마를 촐랑촐랑 따라가며 어떤 의자가 좋을까 신나게(?) 고민했다.
가구점은 주택단지 지하에 있었다. 냉기가 도는 계단을 내려가 가게 철문을 여니 철제 캐비닛, 파티션, 갈색 서랍장 등등 사무용 가구가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내가 원하는 의자가 과연 여기에 있을까....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엄마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뚱한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는 사이 엄마는 사장님에게 우리 애가 공부를 잘 한다는 둥, 새로 이사 와서 애 공부방을 만들어 주려 한다는 둥, 묻지도 않은 말을 꺼내며 의자를 보여달라고 말한다. 직원이 매장 한켠에 놓여있는 제품을 보여 줄 때마다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가격을 물어보고 다른 물건을 찾는다. 시커먼 가죽을 씌운 바퀴 의자를 지나 가구점 직원은 점점 더 구석으로 간다. 엄마는 한참 만에 환하게 웃으며 겨우 파란색 철제 접이식 의자를 들고 나왔다.
“좁은 집에 의자만 크면 뭐 하나. 옛날에 외삼촌은 방바닥에 엎드려서도 공부만 잘 했다....”
닷발이나 튀어나온 입을 꾹 다물고 새 의자를 끌다시피 들고 걸어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새 물건이지만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의자는 가볍고 튼튼해서 공부할 때 뿐만 아니라 장롱 위에 물건을 얹고 내릴 때, 베란다에 선반을 달 때, 못을 박을 때 휘뚜루마뚜루 좋았다. 그래도 나는 그 의자가 내내 싫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또 한 번 이사하면서 그 의자도 없어졌는데 별로 아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의자뿐만 아니라 여러 물건이 한동안 내 손에 익었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인간 관계는 어떤가. 어떤 이는 한동안 죽고 못 살 것처럼 친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흐지부지해져서 연락도 안 하고, 어떤 이는 근근히 안부만 확인하며 지낸다. 지금 당장 모두에게 연락하고 만나자며 호들갑을 떨 수는 없지만, 손때 묻은 추억을 떠올리며 고마웠다고 항상 그립다고 마음 속으로나마 인사해야겠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김정현 팀장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김정현 팀장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심화반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뭔가, 마법을 부리셨나요? 현재/흔한 철제 의자에서 시작해서, 과거/어린시절 의자 가게로 넘어가셨다가, 다시 현재/인간관계로 넘어오는 솜씨가, 대단히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서 독자는 무방비 상태로 마음을 빼앗깁니다. 역시, 문장을 여럿 쓴다고 글이 되지는 않습니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이 서로 유기적으로 손을 잡아야 합니다. 김정현 선생님 글발은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응집력에서 나옵니다.
2. 결론/주제 부분에서 '고마웠다고, 항상 그립다고 마음 속으로나마 인사해야겠다' 이 대목이 특히 좋습니다. 삶이란 늘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는 강물 같지요. 영원할 것 같지만 그리 영원하지도 않고, 스치는 듯하지만 쉽게 지나가지지도 않는. 어쩌면 사실은 내가 끝없이 움직이는데 늘 그들이 움직였다고 내가 착각했을 수도 있겠네요. 내용이 무척 깊어서 길어올릴수록 새 물이 고입니다그려.
3. 김정현 선생님께서는 이미 견고하게 자기 세계를 완성하셨는데, 그래도 계속 배우셔서 매번 감탄합니다. 먹물을 거의 빼시고 좀 더 자연스럽게 쓰시니 글이 양털 안감처럼 더 보드랍게 느껴집니다. 선생으로서, 독자로서, 더 곱게 쓰실 글을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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