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육하원칙을 활용해서 간결하게 글을 쓰는 비법(과 늘려 쓰는 비법)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10. 13. 14:11
    728x90
    반응형

    육하원칙를 활용해서 간결하게 글을 쓰는 비법(, 그리고 늘려 쓰는 비법)

    혹시, 러디어드 키플링을 아시나요? 아... 오랑우탄이 매달린 키플링 가방 말고요. 그 가방이 이름을 따온 인물 말입니다. 모르시겠다고요? 그렇다면 혹시 '정글북'은 아시나요? 그렇죠? 아시죠? 정글북 책은 안 읽어 보셨더라도, 디즈니 애니매이션 이미지는 어디선가 보셨겠지요. 반쯤 벌거벗은 채 빨간 팬티만 입은 소년이 지혜로워 보이는 흑표범과 푸근해 보이는 곰과 정글을 누비는 만화요.

    러디어드 키플링은 정글북 원작을 쓴 영국 작가입니다. 무려 1800년대에 태어나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도 전인 1936년에 죽었으니, 너무 옛날 사람이라서 우리가 잘 알 수는 없겠죠. 하지만 키플링은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지나친 인종주의적 성향 때문에 비판받았지만, 문재 하나만큼은 뛰어났던 위대한 작가입니다. 100년도 더 전에 태어난 외국 작가 책을, 우리가 알고 있을 정도로요.

    각설하고, 키플링이 손녀 딸을 위해서 쓴 동화, '아기 코끼리 코는 왜 길어졌을까?(The Elephant's Child)' 마지막 대목을 보면, 흥미로운 시가 한 편 나옵니다:


    제목: 성실한 하인 여섯 명

    나에겐 성실한 하인 여섯 명 있지.
    (난 녀석들에게 내가 아는 모든 걸 배웠어.)
    녀석들 이름을 말해 보자면,
    '무엇을', '어디서', '언제', '어떻게', '왜', '누구'야.
    평소에 나는 녀석들을 세상으로 내보내.
    사방팔방 세상 끝까지 보낸다고.
    녀석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나면
    편히 쉬라고 휴식 시간을 주지. (이하 생략)

    (번역: 이재원, 2024)




    작가인 키플링이 일할 때 부리는 하인이 누구라고요? '무엇을', '어디서', '언제', '어떻게', '왜', '누구'랍니다. 네, 이 친구들... 우리 모두 어디선가 많이 봤지요. 바로, 신문 기사를 작성할 때 기본 틀로 사용하는 육하원칙(六何原則)입니다. 키플링은 우리가 어떤 글을 쓰든지 최소한 이 여섯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선명하게 내놓아야 독자와 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육하원칙은 '독자가 읽었을 때 의미가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둘러싼 구체적인 정보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육하원칙를 길잡이 삼으면서 글을 쓰게 되면, 이야기가 추상적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꼭 신문 기사가 아니더라도, 글을 쓸 때 육하원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단단한 땅에 굳건하게 발을 딛고 구체적으로 내용을 쓸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알지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육하원칙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데요?"


    이렇게 물으실 줄 알았습니다. 그렇죠. '글을 쓸 때 육하원칙이 유용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죠. 이걸 몰라서 글을 못 쓰진 않죠. 그러니까, 우리는 이걸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쉽게 기억하고, 바로 적용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고요. 그래서 제가 다년간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개발한 노하우를 공유하려고 합니다. 바로 '세 줄 일기'입니다.

    자세하게 설명드리기 전에, 예시부터 제시하겠습니다.


    <민경재 사회복지사 세 줄 일기>

    2024년 10월 7일 월요일. 날씨: 보송보송 구름타고 파란하늘 높이높이 여행가고 싶은 날.

    (누가/무엇) 1. 후배 다섯 명이 글쓰기 모임에 나를 초대했다.
    (내용/의미) 2. 주말에 짬을 내서 보내준 글을 수정해 갔다. 호응이 좋다.
    (감정/생각) 3. 휴, 다행이다! 도움이 된다니 뿌듯하고 신난다.


    <글쓴이 소개>

    민경재 사회복지사는 평범한 여성 사회복지사입니다. 워킹맘으로서 남편과 함께 열심히 일하면서 아이 둘을 키웠습니다. 직장 생활과 육아 모두 잘 해내고 싶었지만 어느 하나도 충분히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종종 떠올리며 살았습니다. 언제나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었지만 동료든 주민이든 사람을 만날 때는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글쓰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세 줄 일기는 다섯 가지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 날짜입니다. 연도, 월, 일, 요일까지 구체적으로 모두 씁니다. 둘째, 날씨입니다. 날씨를 쓸 때는 비유를 사용하면 좋습니다. 날씨를 사람이나 동물에 빗대서 쓴다고 생각해 보세요. 위 예시 글에서는 '구름'을 말처럼, 사람이 올라탈 수 있는 동물에 비유했습니다. 그래서 표현이 생생해졌습니다. 비유를 쓰면 자연스럽게 표현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셋째, 일기 본문 첫 번째 줄입니다. 첫 번째 줄에는 '누가'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적습니다. '구체적'이라는 말은, 눈앞에 그림이 그려진다는 뜻입니다. 첫줄부터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뜬구름을 잡으면 안 되겠지요. 그런데, '누가'와 '무엇'을 쓰면 자연스럽게 '언제'와 '어디서'도 딸려 나옵니다. 위 예시 글 첫 줄에서도 '누가'와 '무엇'을 쓰다 보니 '글쓰기 모임에'라고 장소가 등장합니다.

    넷째, 일기 본문 두 번째 줄입니다. 두 번째 줄에는 첫 줄에 언급한 사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적거나, 해당 사건이 일어난 이유('왜')나 사후 결과를 씁니다. 첫 줄은 사건 뼈대이므로, 구체적인 정황이나 맥락은 깊게 담지 못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줄에 조금 더 상세한 정보를 담습니다. 위 예시글에서도 '후배들 글을 수정해 줬다(어떻게)'와 '호응이 좋다(결과)'가 나옵니다.

    다섯째, 일기 본문 세 번째 줄입니다. 구체적인 사건 정보는 두 번째 줄에서 대략 마무리짓습니다. 이제 해당 사건을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감정)나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사고)를 가급적 솔직하게 적습니다. 위 예시 글에서도, '다행이다'와 '뿌듯하고 신난다'가 나옵니다. 여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사건은 사건일 뿐입니다. 사건을 겪고도 내가 느끼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면 무의미합니다.


    잠시 돌이켜 생각해 봅시다. 세 줄 일기에서 첫 번째 줄과 두 번째 줄에는 위에서 언급한 육하원칙이 오롯이 들어가 있습니다. 첫 번째 줄에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이 나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줄에는 '어떻게', '왜'가 나옵니다. 말하자면, 내가 겪은 구체적인 사건에서 중요한 뼈대만 골라서 간략하게 정리하면, 자연스럽게 세 줄 일기 속 첫 번째 줄과 두 번째 줄을 완성하게 됩니다.

    저는 글쓰기 초심자에게 세 줄 일기가 아주 훌륭한 글쓰기 연습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세 줄 일기를 배우고 연습하면 글쓰기 초심자라면 (거의) 누구나 보이는 증상(?)을 치료할 수 있거든요. 어떤 증상일까요? '군더더기'랍니다. 글쓰기 초심자는 글 내용을 잘 정리할 수 없어서 생각나는 대로 씁니다. 그래서 자주 삼천포에 빠지고, 조금은 덜 중요한 이야기를 대단히 많이 씁니다.

    한편, 세 줄 일기는 애초에 길게 쓸 수 없으니, 내가 겪은 일에서 중요한 부분만 남기게 됩니다. 이 '중요한 부분'이 바로 '육하원칙(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이고요. 따라서 세 줄 일기 정체를 딱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요약'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바로 이겁니다. 시간도 지면도 제한되어 있는데, 내가 표현하고 싶은 말을 독자에게 잘 전달하려면? 중요한 부분부터 써야겠지요.

    원래, '일기(日記)'는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 기록'입니다. 하지만 저는 '일기(一記)'라고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기(一記)'는 하루 동안 일어난 일 중에서 '딱 하나'만 고른다는 뜻입니다. 특히, 글쓰기 초심자는 작은 글감을 '딱 하나'만 골라서 집중해야 좋습니다. 그래야 삼천포로 빠지지 않고 군더더기를 적게 쓰게 됩니다. 핵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민경재 사회복지사 세 줄 일기를 두 편 더 소개합니다. 글쓴이가 첫 번째 줄과 두 번째 줄에 육하원칙(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내용을 잘 담았는지 확인해 보시죠.


    2024년 10월 9일 수요일. 날씨: 맑은 가을 하늘 바라보며 세종대왕께 감사하고 싶은 날.

    (누가/무엇) 1. 딸 친구들과 서울랜드에 갔다.
    (내용/의미) 2. 여기저기 북새통이다. 줄을 서고 또 선다. 딸은 까르르 신났다.
    (감정/생각) 3. 나도 충분히 행복하다.

    2024년 10월 12일 금요일. 날씨: 해는 뜨겁고 바람은 살랑살랑 둘이 대결하는 날.

    (누가/무엇) 1. 금요일 밤, 남편이랑 딸이랑 편의점 데이트를 나간다.
    (내용/의미) 2. 각자 취향대로 고른 음식을 테이블에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눈다. 술을 한 캔 더하고 싶으나 참는다. 글쓰기 숙제해야 한다.
    (감정/생각) 3. 글쓰기를 마쳤다. 내일 시댁에 마음 편히 다녀와도 된다. 오예! 신나는 주말.


    눈치 빠른 분은 알아채셨겠지만, 글 전개 방식을 기준으로 분석한다면, 세 줄 일기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줄과 두 번째 줄에서는 '작은 사건' 즉 '이야기'를 요약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줄에는 그 이야기를 겪으면서 내가 느낀 감정과 내가 떠올린 생각을 설명합니다. '이야기'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주인공이 보인 행동을 기술하지만, '설명'은 대상에 대해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한 덩어리인 세 줄 일기를 두 덩어리로 자른 후에, 각각 세부 내용을 조금 더 붙여서 정리하면, 길이가 두 단락 정도 되는 글로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냐고요? 어떤 사건을 딱 세 줄 안에 요약해서 정리했으니, 좀 자세하게 더 알고 싶은 부분이 여러 보이거든요. 세 줄 일기를 쭉 읽으면서 느껴 보시고, 자연스럽게 궁금증을 놓아주면 됩니다.


    그렇다면, 세 줄 일기 내용을 조금 더 확대해서 다섯 단락 정도 되는 글로 늘려 쓴다면, 어떻게 써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세 줄 일기에 담은 이야기가 얼마나 큰지 가늠해 보아야 합니다.

    비유컨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영화는 러닝 타임 90분 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우겨 담아서, 따라가려면 숨이 차면서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편, 어떤 영화는 이야기 진행 속도가 너무 느리고 별 이야기가 안 나와서 보는 내내 지루합니다. 그렇습니다. 보통 좋은 영화는, 등장 인물이든 에피소드든, 90분에 딱 알맞게 편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 줄 일기를 근사하고 멋지게 썼다고 해서 이야기를 언제나 쉽게 늘릴 수는 없습니다. 시간을 들여서 충분히 생각하면서, 줄과 줄 사이에 숨겨놓은 배경 이야기나 맥락, 혹은 세부 사항을 느껴봐야 합니다. 늘어날 길이만큼, 세 줄 일기를 쓸 때 나타난 이야기 밀도나 깊이를 유지할 수 있겠다고 느껴져야, 실제로 늘려 쓸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쓸 거리가 있어야' 쓸 수 있습니다.

    세 줄 일기는 실질적으로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합니다. 첫째, 일상 생활 속에서 글로 정리하면 좋을 다양한 글감을 포착합니다. 세 줄 일기는 매우 짧아서 그 어떤 글감도 담아낼 수 있습니다. 둘째, 발굴한 글감에 세부사항을 붙여서 최소 다섯 단락 이상으로 길게 확대할 수 있을지 확인합니다. 세 줄 일기를 완성헀는데, 마음이 아쉬울수록, 세부 내용이 궁금할수록 길게 확대할 수 있겠습니다.

    세 줄 일기 글감이 좋아서 조금 더 길게 써 보고 싶다면, 일단 두 단락으로 써 봅니다. 그래도 아쉽고 궁금하다면, 다섯 단락 이상으로도 늘려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지 않고 궁금하지도 않으며 그래서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쓸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세 줄 일기나 두 단락 글로 만족하고 쓰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혹시라도 나중에 세부적인 내용을 떠올린다면, 쓸 수 있습니다.)

    세 줄 일기를 다섯 단락 이상으로 늘려서 쓰려면, 세 줄 일기 핵심 내용 위에 좀 더 풍성하게 덧붙일 세부 내용을 좀 더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길어지면서 글 구조가 좀 더 복잡해지므로, 이에 걸맞게 앞에서 살펴본 '세 줄 일기'나 '두 단락 글쓰기' 외에 또 다른 체계적 글쓰기 틀이 필요합니다. 이 틀을 따라가며 글을 쓰면 짧은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쉽게 늘려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곱 줄 글쓰기'를 제안합니다. 민경재 사회복지사가 본인이 쓴 세 줄 일기 중에서 한 편을 골라서 일곱 줄로 내용을 재정리한 사례를 보여 드립니다.


    민경재 사회복지사 세 줄 일기

    2024년 10월 9일 수요일. 날씨: 맑은 가을 하늘 바라보며 세종대왕께 감사하고 싶은 날

    (누가/무엇) 1. 딸 친구들과 서울랜드에 갔다.
    (내용/의미) 2. 여기저기 북새통이다. 줄을 서고 또 선다. 딸은 까르르 신났다.
    (감정/생각) 3. 나도 충분히 행복하다.


    민경재 사회복지사 일곱 줄 글쓰기

    [인물]
    1. 낮 12시에 나가 밤 9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딸 친구들과 서울랜드에 다녀왔다.

    [사건]
    2. 어제 밤, 한글날 휴일을 즐기기 위해 편의점에서 늦게까지 수다를 떨며 맥주를 즐겼다.
    3. 그런데 딸 친구 엄마가 공지를 띄웠다. 내일 12시 서울랜드 가실 분!
    4. 아, 내 한글날 계획은 사라지고 딸과 서울랜드에 가야했다. 생각만 해도 힘들다.
    5. 역시나 도착부터 난관이다. 입구 쪽 놀이기구부터 줄이 어마어마하다.
    6. 줄을 서고 또 선다. 딸은 신났는데 나는 화려한 놀이공원을 뒤로 하고 집에 가고 싶을 뿐이다.

    [성장]
    7. 아홉 시간 동안 딸을 따라다니느라 힘들었는데 엄마 노릇 했다. 피곤하지만 뿌듯하다.


    일곱 줄 글쓰기는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첫째, '인물'(1~2줄)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이야기 주인공을 독자에게 소개합니다. 만약, 독자가 주인공을 잘 안다고 판단되면,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간략하게 밝혀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독자가 주인공을 모른다고 가정하고 쓰면 좋습니다. 나만 읽거나 제한된 독자만 읽는다고 가정하고 쓰면 글쓰기 실력을 높이기 어렵습니다.

    일곱 줄 글쓰기를 구성하는 두 번째 부분은 '사건(2~5줄)'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사건을 좀 더 자세하게 기술하되, '갈등' 요소가 선명하게 드러나면 좋습니다. '갈등'이란 '주인공이 직면한 어려움'이라고 쉽게 생각하세요. 어려움은 주인공과 대립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주인공이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딜렘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려움이 없으면 글이 재미없어집니다.

    일곱 줄 글쓰기를 구성하는 세 번째 부분은 '성장(1~2줄)'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글쓴이가 보거나 들은 사건을 관조하면서 느낀 감정을 적거나 마음에 떠올린 생각을 정제해서 씁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온갖 현실 속 '어려움'은 대체로 끝내 극복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담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성장이란, 수용하는 태도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예시로 든 세 줄 일기와 일곱 줄 글 사이에 차이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처음에 쓴 세 줄 일기에 아래 부분을 새롭게 덧붙였습니다. 세 줄 일기에서 다룬 사건이 일어난 날 이전에 발생한 상황입니다. 말하자면, 글쓴이(주인공)는 휴일(한글날)을 아마도 집에서 편안하게 쉬면서 보내려고 계획한 듯합니다. 하지만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딸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야 하는 어려움에 처합니다.


    <덧붙인 부분>

    2. 어제 밤, 한글날 휴일을 즐기기 위해 편의점에서 늦게까지 수다를 떨며 맥주를 즐겼다.
    3. 그런데 딸 친구 엄마가 공지를 띄웠다. 내일 12시 서울랜드 가실 분!
    4. 아, 내 한글날 계획은 사라지고 딸과 서울랜드에 가야했다. 생각만 해도 힘들다.


    정리하자면, 글쓴이는 두 가지 요소를 세 줄 일기에 덧붙였습니다. 첫째, '시간'을 늘렸습니다. 세 줄 일기에 모두 담지 못했던 다른 시간대(사건 전날)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둘째, '휴일에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다'는 갈등 요소를 붙였습니다. 그러자 '놀이 동산에 가서 딸을 위해 (몹시 피곤하게) 하루 종일 줄을 선다'는 내용과 날카롭게 대조됩니다. 세 줄 일기보다 긴장도가 높아집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요소만 더 언급하겠습니다. 결국,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는 '인과 관계'로 이어집니다: (1) 나는 바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워킹맘이다. (2) 매일 바쁘니 휴일이 되면 쉬고 싶다. (3) 하지만 아이에게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 (4) 휴일에 쉬고픈 마음과 아이를 돌봐야 하는 책임감이 부딪힌다. (5) 결국, 책임감을 선택했고, 하루 종일 줄만 섰지만, 잘 버텨냈다. (6) 뿌듯하다.

    글쓴이는 위와 같은 '인과 관계' 맥락 속에서 실제로 글에 표현한 이야기 요소를 선택하고 펼쳤습니다. 세 줄 일기를 늘려서 좀 더 길게 글을 쓰려면 반드시 집중해서 생각해야 하는데, 바로 쭉 이어지는 '인과 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겪은 경험을 차분하게 떠올리면서, 스스로 이렇게 질문해 보세요. '나는 왜 거길 갔지?', '나는 왜 그렇게 느끼고, 말하고, 행동했지?', '도대체 왜? 왜? 왜?'


    자, 이제 마지막 단계로서, 세 줄 일기를 다섯 단락으로 늘려 쓴 글을 읽어 보겠습니다.


    제목: 엄마 계획 vs 딸 계획

    글쓴이: 민경재 사회복지사(2024)
    첨삭 지도: 이재원(2024)

    낮 12시, 밖에 나가서 밤 9시가 넘어서야 돌아왔다. 초등학교 3학년 딸 친구 다섯, 친구 동생 둘, 엄마 다섯, 모두 열두 명이 서울랜드에 다녀왔다. 나는 눈이 퀭하고 당장 침대로 가고 싶은데 은희는 서울랜드에 다녀온 이야기를 늘어놓느라 더 쌩쌩하다.

    어제 밤, 편의점에서 늦게까지 놀며 가을밤을 만끽했다. 그런데 딸 친구 엄마가 “내일 휴일인데, 12시에 애들 데리고 서울랜드 가실 분!” 공지를 띄웠다. 은희가 글을 봤다. 아, 그때부터 은희는 내일 서울랜드에 가야 했다. 다음날 내 계획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은희 계획만 남았다. 생각만 해도 힘들다.

    서울랜드 도착, 역시나 입구부터 놀이기구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다. 바이킹 먼저, 바이킹 가운데는 바깥쪽보다 줄이 짧은데 은희는 바이킹 바깥쪽이 더 신난다며 긴 줄에 선다. [오랜만에 놀이공원에 왔으니 엄마 노릇 하려고 1분 30초 동안 달리는 ‘달나라 열차’에 도전했다. 그런데 오르락내리락 어마어마한 속도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정말 끔찍했다. 다시는 하늘로 향하는 놀이기구는 타지 않겠다. 은희는 어질어질한 나를 바라보며 “엄마 그러니까 내가 타지 말랬잖아” 나를 살피며 위로한다.] 나는 딸이 놀이기구를 타고 오는 동안 다른 놀이기구 줄을 선다. 줄을 서고 걷고 기다리고 뱅뱅 돈다, 시간이 흐르고 밤이 되었는데 총천연색 천구가 놀이공원을 환하게 비춘다. 밤이 깊어질수록 아이들은 더 밝게 웃고 한껏 목소리를 높인다. 딸은 신났는데 나는 당장이라도 화려한 놀이공원을 벗어나서 뒤로 하고 집에 가고 싶다.

    밤 9시, 집에 도착해 오늘 남편에게 휴식을 허락한 유세를 부리며 밥을 얻어먹었다. 씻고 입병이 나서 연고를 가득 발랐다. “은희야, 엄마 입에 연고 발라서 말 못 해, 엄마한테 말 시키면 안 돼.” 당부한다. 은희는 “엄마 그럼 말은 하지 마, 듣기만 하면 돼.”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은희는 쫑알쫑알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엄마가 급류타기 줄을 서주고 갔는데도, 친구랑 엄청나게 기다렸어. 친구가 그냥 가자고 했는데 내가 기다린 시간이 아까우니까 끝까지 가보자고 했다. 급류타기 진짜 재밌더라, 흔들리고 물도 시원하게 튀겨! 또 타고 싶어” 친구하고 놀 때는 생각보다 시큰둥하더니 집에 와서 떠드느라 흥분상태다. 입이 아파 대답도 못 하고 피곤해 얼굴은 구겨지는데 뿌듯하다. “엄마, 우리 아빠랑 오빠랑 서울랜드 또 가자. 언제 갈까? 나는 너무 가고 싶으니까, 꿈나라에서 서울랜드 갔으면 좋겠다.” 은희는 한 시간을 훌쩍 넘긴 후에 잠이 들었다. 그제야 나도 잠을 청한다. 휴일, 내 계획이 흔적 없이 사라져도 괜찮다. 충분히 행복하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놀랍도록 잘 쓰셨습니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눈을 씻고 찾아 보려고 해도 전혀 안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세 줄 일기에서 다섯 단락 글쓰기까지 한 체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서 쓰셔서 기가 막히게 훌륭합니다.

    2. 핵심 주제에 비추어서 어떤 부분을 생략하고(초록색 글자) 어떤 부분을 늘려 써야 할지 고민하신 듯합니다. 글에 휩쓸려 내려가지 않으시고, 단단하게 중심을 잡으시면서 글을 수족처럼 부리셨습니다. ('메타 관점'을 잡으셨습니다.)

    3. 문장을 부드럽게 쓰셔서 술술술 넘어갑니다. 문장이 이렇게나 좋아졌으니, 그동안 얼마나 신경을 쓰시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지 가늠이 되네요. 역시, 어떤 기술을 익히려면, 충분히 고민하면서 노력을 축적해야 합니다. (머리를 숙입니다.)


    <민경재 사회복지사 피드백>

    세 줄 일기를 쓰면서 글감을 발굴하고, 일곱 줄 쓰기로 글 흐름을 세웠습니다. 이를 확장하며 숨겨진 이야기를 펼치다 보니, 처음에 떠올린 감정, 의미가 좀 더 구체화되었습니다. 그렇게 펼친 이야기를 여러 번 소리내 읽으면서 글 흐름을 방해하는 내용을 지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경험을 통해서 깨닫고 수용한 부분에 주목하면서 의미를 담아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어떻게 읽으셨나요? 글쓴이가 일곱 줄을 쓰며 설계도를 먼저 그린 후에, 다섯 단락으로 늘려 쓰니, 내용적으로 상관없는 삼천포로 빠지거나, 의미없이 길어지는 군더더기가 치고 들어올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특정 대목에서는, 핵심 주제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 내용을 충분히 풀어서 썼습니다. 그래서 글이 짧은데도 꽉 찬 느낌이 들고, 충분히 썼는데도 무척 간결한 느낌이 듭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글쓴이는 일곱 줄 글에서 첫 줄을 늘려서 다섯 단락 글 첫 단락을 썼습니다. 숫자를 언급하는 등 구체적인 정보를 붙이니 좀 더 선명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글쓴이는 일곱 줄 글에서 두 번째 줄에서 네 번째 줄까지를 합쳐서 다섯 단락 글 두 번째 단락을 썼습니다. 내용으로 따져 보면,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한 단락으로 모아서 써야 좋습니다.

    다음으로, 글쓴이는 일곱 줄 글에서 다섯 번째 줄과 여섯 번째 줄을 묶어서 세 번째 단락을 썼죠.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서 기다리는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다', '나는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다' 이 두 문장이 핵심이므로, 대기 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긴지, 언제까지 기다렸는지, 기다리면서 어떤 일이 생겼는지, 하루 종일 줄 서고 기다리면서 나는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붙여서 썼어요.

    다섯 단락 글에서 네 번째 단락은 일곱 줄 글에는 없는 부분으로서, 글쓴이가 새롭게 채워 넣었네요. 왜? 딸을 즐겁게 만들어 주느라 하루 종일 고생한 엄마가 집에 돌아와서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 맞아요. 엄마는 너무 피곤해서 입병까지 났죠. 하지만 순수한 딸은 엄마 마음도 모르고 '오늘 하루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었는지'를 엄마에게 신나게 이야기하고 싶어합니다.

    글쓴이는 다섯 단락 글 마지막 단락을 딸이 한참 조잘대는 내용으로 채웠습니다. 피곤하고 힘든 엄마 마음을 구구절절 토로할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딸이 얼마나 흥분하며 떠들었는지 길게 보여주죠. 그리고 딸 이야기를 전부 들어준 엄마는 한 두 마디로 마음을 표현합니다: '(나는) 괜찮다', 그리고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이야기가 생생하면 장면을 보여주기만 해도 충분히 훌륭하답니다.

    지금까지, 육하원칙을 기반으로 세 줄 일기를 어떻게 쓰는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해 드렸고, 세 줄 일기를 어떻게 두 단락 글 혹은 일곱 줄 글로 늘려 쓰는지와 최종적으로 어떻게 다섯 단락 글로 확장하는지도 실질적으로 보여 드렸습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세 줄 일기] - [두 단락 글]/[일곱 줄 글] - [다섯 단락 글]을 어떻게 연결해서 학습하고 연습하면 좋을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간단합니다. 우선은, 지금 당장이라도 쉽게 쓸 수 있는 [세 줄 일기]를 많이 써야 합니다. 삼각뿔 모양 피라밋을 연상하면 좋겠습니다. [세 줄 일기]는 기초 공사에 해당합니다. 튼튼하게 기초를 잘 세워야만 건물을 높게 세울 수 있듯이, 세 줄 일기로 기초를 튼튼히 연마해야 윗 단계인 [두 단락 글쓰기]나 [일곱 줄 글쓰기]로 부드럽게 올라가 더 윗 단계[다섯 단락 글쓰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