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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시, 우리가 보고 싶나?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5. 5. 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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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인옥 사회복지사 세 줄 일기>

     

    2025년 4월 23일, 수요일. 날씨: 분명 봄인데, 여름이 바짝 쫓아오고 있다


    (누가/무엇) 1. 아빠가 아침부터 가족 채팅방에 사진 몇 장을 보냈다. 나와 동생이 어릴때 찍었던 사진이다.
    (내용/의미) 2. 채팅방에 있는 남편과 제부가 보리라 생각하니 순간 부끄러워져 '왜 이런걸 올리냐'고 말했다.
    (생각/감정) 3. 아빠는 평소 먼저 연락하지 않는데, 혹시 우리가 보고 싶나?


    <확장판> 

     

    제목: 혹시 우리가 보고 싶나?

     

    글쓴이: 허인옥(성산종합사회복지관, 2025)

    첨삭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5)


    아빠가 아침부터 가족 채팅방에 사진 몇 장을 보냈다. 나와 동생이 어릴 때 찍었던 사진이다. 내가 20살 무렵 아빠와 단 둘이 여행가서 찍었던 사진, 가족이 함께 오락실에서 놀았던 사진, 친척들과 다 같이 캠핑을 갔던 사진 등 사진마다 추억이 아련하게 서렸다. 채팅방에 있는 남편과 제부가 보리라 생각하니 순간 부끄러워져 ‘왜 이런 걸 올리냐’고 말했다. 추억도 좋지만, 조금은 민망한 그 시절 내 얼굴을 남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 가족 채팅방은 무척 수다스러운데, 아빠는 늘 이모티콘으로 답장했다. 그런데 딸 둘 모두 결혼하고 나니, 아빠가 변했다. 언젠가부터 가족 채팅방에 아빠가 먼저 운을 띄웠다. ‘신혼여행 가서 재밌냐? 연락도 없네..’, ‘이번에 엄마랑 여행간 사진’ 그 외에도 오늘처럼 달랑 사진만 보낸다. 사진을 왜 올리냐고 가볍게 타박하고 생각해보니 아빠는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지 않고는 딸들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혹시 우리가 보고 싶나?’ 나는 아빠에게 사진첩 속에 있는 옛날 가족사진을 몇 장 보내준 뒤, 퇴근하고 저녁 한 끼 먹자고 답장했다.

     

    그날 저녁,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와 남편 넷이 함께 저녁을 먹었다. 엄마가 제철이라고 싸준 버섯과 두릅을 들고 삼겹살집에 갔다. 즐겁게 수다를 떨며 밥을 다 먹어갈 즈음 엄마는 말했다. “앞으로 집밥 먹기 싫으면 종종 와. 저녁 사줄게” 그러자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서 다음 주 언제 올 건데?”라고 말한다. ‘아! 정말 내가 보고 싶었구나.’ 나는 나도 보고 싶었다고, 자주 만나고 싶다고 낯부끄러워 얘기는 차마 하지 못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또 오겠다고만 말했다.

     

    다음 주, 소고기를 사달라고 핑계를 대며 다시 부모님을 찾았다. 그리고 아빠에게 용기 내어 물었다.

     

    “아빠, 저번 주 가족 카톡방에 옛날 사진 왜 올렸어요?”

    “회사에서 네이버 드라이브를 우연히 봤는데 옛날 사진이 뜨더라고.”

    “아, 옛날 사진이 그렇게 뜨기도 하는구나”

    “너 예전에 기억나? 비가 많이 오던 날 캠핑 가서…”

     

    아빠는 봇물 터지듯 추억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캠핑갔는데 폭우가 왔던 일, 계곡에서 동생과 떠내려갔던 일 등. 그때는 위험했고 힘들었어서 그만큼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이야기한다. 엄마는 나지막이 혼잣말했다. ‘그런 애가 어느덧 이렇게 컸네...’

     

    우리 가족은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다. 엄마는 때마다 챙겨주는 반찬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아빠는 뭘 자꾸 사준다고 말한다. “아빠가 당연히 소고기 사 주지. 언제든지 오기만 해.” 그리고 이야기 소재를 툭툭 내뱉는다. 가령 이번처럼 자식을 찍은 엽기 사진이나 본인 근황 사진을 보낸다. 나도 그렇다. 본가에 시간을 마련하여 가는데도 시간이 남아도는 척하며 들린다. 우리 가족은 그렇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아도 다들 안다. 서로 무척 믿고, 아끼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이 글은 소재도 평범하고 문장도 평범하지만, 매력이 있습니다. 찬찬히 읽다 보면 마음을 시나브로 빼앗깁니다. 이유가 뭘까요? 무뚝뚝한 아빠와 (아빠를 빼 닮아서) 무뚝뚝한 딸 사이에 말 없이 오가는 마음을, 정확하게 포착해서 글로 섬세하게 표현했으니까요. 글감을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초점을 잘 잡아 내용을 정리했으니까요. 아울러, 글쓴이가 자신을 수용하는 태도가 참 멋집니다. 

     

    2. 세 줄 일기를 두 단락으로 늘려 쓰셨을 때, 문득 허인옥 선생님 아버님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요청 드렸지요. "허인옥 선생님, 아버님께 여쭈어 보시면 어떨까요? 옛날 사진을 왜 올리셨냐고요." 진짜로 여쭈어 보셨군요? 그리고 함께 추억 속으로 여행 다녀오셨군요? 좋습니다. 잘 하셨어요. 현실을 글에 담아 쓰셨는데, 글이 밖으로 나와서 현실을 바꾸었네요. 무척 흥미롭습니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허인옥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허인옥 선생님께서는 인천사협 '성숙을 담는 글쓰기' 클래스(제 3기)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세 줄 일기, 이렇게 씁니다(다양한 사례와 원리)>

     

    세 줄 일기, 이렇게 씁니다(다양한 사례와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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