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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수 없는 마음을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5. 7. 30. 07:34728x90반응형

<이재원, 세 줄 일기>
2025년 7월 29일, 화요일. 날씨: 말해 뭐해. 숨이 막힌다. 너무 더워서.
(누가/무엇) 1. 어지럽게 찢겨진 봄이 책을, 싹 다 버리겠노라고 아내에게 선언했다.
(내용/의미) 2. 그러나 이상하게 한 권도 버릴 수 없었다. 결국, 모두 다시 책장으로.
(생각/감정) 3. 밤마다 봄이에게 읽어준 추억이 떠올라서. 모두 봄이 같아서, 차마.
<확장판>
제목: 헤어질 수 없는 마음을
글쓴이: 이재원(2025)
"여보, 우리 안방 책장에 꽂힌 봄이 책 다 정리하자. 군데군데 너무 많이 찢어지고, 해어졌잖아. 응, 안방 청소할 때마다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발에 걸리적거려서 안 되겠어. 그리고 어떤 책은 아예 안 보잖아. 봄이 새 책도 많은데, 굳이 이렇게 책장 가득히 두고 볼 필요는 없잖아. 그래, 그렇게 하자. 내가 치울게. 어떻게 치울 거냐고? 그냥 다 버릴려고. 당신은 물건을 못 버리니까 이렇게 쌓아두겠지만, 난 다르다고. 눈 딱 감고 싹 다 버려주겠어!"
우리집에 있는 봄이 책은 대부분 아내와 가장 친한 친구가 주었다. 이 친구가 낳은 딸 아이가 봄이보다 딱 2살 연상이라서, 책 뿐만 아니라 예쁜 옷이나 장난감 등 온갖 육아 용품을 때마다 얻어 썼다. 아내 친구네는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아내 친구가 손이 넉넉하게 커서, 받아오는 물건 상태가 거의 모두 좋았다. 특히, 책 같은 경우는 늘 거의 새 책을 받았다. 우리는 재활용품으로 얻은 간이 나무 책장을 침실에 놓고 받아온 책을 모두 꽂아 놓았다.
다행히, 봄이는 책을 무척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책을 무척이나 많이 좋아한 아빠를 빼닮아서? 피는 못 속이니 그럴 수도.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 아빠가 태교한다고 책을 많이 읽어줘서? 그래, 생각난다. 밤마다 봉긋하게 솟은 아내 배에 손을 얻고 태교 동화책을 읽었지. 그런데, 사실 그때는 조금 힘들었다. 뱃속에 있는 아이가 좀 멀게 느껴졌달까. 아직 뇌도 안 자란 태아에게 읽어준다고 효과가 있을까 싶었다. 솔직히, 그땐 '억지로' 읽었다.
하지만 봄이가 태어난 후에는 조금씩 달라졌다. 아이가 뒤집고, 기고, 일어서고, 걷는 동안, 말도 조금씩 배웠고, 서서히 말이 통하니 좀 더 즐겁게 책을 읽어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아이가 어리니까, 기본 생활에 관련된 책, 그러니까 목욕이나 대소변 가리기, 혹은 인사하기나 옷 입기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봄이는 겁이 많아서 새로운 활동을 익힐 때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엄마 아빠와 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순조롭게 모든 활동에 적응했다.
봄이는 엄마, 아빠처럼 가족이 등장하는 책이나 강아지와 고양이가 나오는 책을 유독 더 좋아했다. 우리 부부는 늘 봄이를 데리고 집 주변에 있는 공원에 자주 다니면서 산책했는데, 본인 경험과 비슷해서 그런지 아이가 엄마 아빠와 산책하는 내용이 나오면 본인과 동일시했다. "이거, 봄이야?" 그리고 고양이가 나오는 책은 하도 여러 번 읽어서 그런지 처음부터 끝까지 본문 텍스트를 통째로 외워서 읊어댔다. "야옹야옹 고양이는 호기심이 많아요..."
너덜너덜 누더기가 되어버린 책을 싹 다 버리려고 정리했는데, 나는 어느새 책을 버릴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찢어진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면서 지나온 추억을 반추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슬며시 웃으며 저절로 이렇게 말했다. "이게 다 봄인데." 어머나, 책을 못 버리겠구나, 싶었다. 뭐라고? 싹 다 버려? 단 한 권도 못 버리겠구만. 나는 우두커니 서서 책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슬프지도 않으면서 울컥했다가, 기쁘지도 않으면서 미소지었다.
결국, 완전히 찢어져서 버릴 수밖에 없는 몇 놈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거실 책장으로 옮겼다. 한 권씩 열어 보면서 손으로 어루만지고 책장 빈 곳에 정중하게 가지런히 꽂아놓았다. 언젠가 친구네 집에 갔다가 사방 벽을 아이 책으로 장식해 놓은 모습을 보고, 아이가 이미 컸는데 왜 다 쌓아두고 살지? 생각했는데, 이젠 알게 되었다. 친구 마음을. 약간 미친 사람처럼, 아이 책을 들여다 보며 울었다가 웃는 아빠 마음을. 헤어질 수 없는 마음을.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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