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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D+1274)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5. 8. 6.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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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D+1274)

    “봄아, 제발 가만히 있어 줄래?” 

     

    우리 딸, 생애 최초로 여권 사진 찍느라 세 식구가 밤중에 야단법석을 떨었다. 

     

    나: "여보, 우리도 일본 여행 갈까? 봄이도 태어난지 40개월이 넘었고, 애가 똘똘하니까 이젠 조금 멀리 가도 될 듯."

    아내: "맞아요. 봄이 꽃잎반 친구, 도하도 이번에 오사카 다녀왔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환율 효과가 지속되어서 싸고 좋았대요."

    나: "흠... 근데, 해외 여행 가려면, 여권이 있어야 하잖아? 사진 찍어서 구청에 여권을 신청해야겠군."

    아내: "그래요. 좋아요. "

     

    요즘엔 인터넷 사진 인화 서비스가 잘 돌아가서, 사진관에 가지 않아도 싸게 사진을 뽑을 수 있다. 해서 그냥 집에서 사진을 찍기로 결정. 나도 여권을 갱신해야 해서, 아내에게 나와 봄이 여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1차로 내 사진부터 찍었다. 

     

    아내: "으아, 오빠~ 너무 피곤해 보여."

    나: (사진을 확인하고) "아냐... 내가 그새 늙어서 그래."

    아내: "흐흐흐. 그럴 수도요. 하지만 관리하면 좋아져요."

    나: "그래, 좀 더 신경 쓸게."

     

    다음으로, 봄이 사진을 찍었다, 라고 쓰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찍지도 않았고 안 찍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찍긴 찍었으되, 완벽하지 않았다. 여권 사진은 국제 기준을 따르는데, 요구 사항이 굉장히 엄격하다. 귀도 확실하게 나와야 하고, 안경은 빛이 반사되면 안 되고, 무엇보다도 정. 면. 을. 봐야 한다(얼굴을 한 쪽으로 돌리면 안 된다). 

     

    상대는 요즘 부쩍 장난끼가 늘어난 봄이. 이 친구가 여권 사진을 이해할 리도 없고, (따라서) 가만히 서 있을 리도 없다. 실제로 봄이는 엄마가 사진을 찍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슬쩍 움직이거나 딴 곳을 보거나 엄마한테 와락, 달려 들었다. 그리고 해맑게 웃었다. 

     

    우리 부부는 10여 분 동안 어떻게든 봄이 사진을 찍으려고 애썼다. 크게 소리도 질러 보고, 봄이가 좋아하는 멍멍이도 눈 앞에서 흔들고, 가볍게 화도 냈다가, 슬쩍 겁도 줬다. 

     

    "봄이, 여권 사진 찍지 말자. 봄이만 집에 두고, 엄마 아빠만 일본 가야지."

     

    우리는 어느 순간, 배꼽을 잡고 나뒹구며 깔깔대고 웃기 시작했다. 말은 안 나누었지만, 웃는 눈을 보고 서로 마음을 읽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성취할 수 없는 목표를 세웠달까? 자기들 마음대로 무리하게 목표를 세운 후에, 온갖 난리 부르스를 추다가 문득 현타가 왔달까. 하긴, 봄이 얼굴에는 장난이 가득 들었는데, 어떻게 차렷하고 서 있겠나. 우리에겐 단 몇 초지만, 봄이에겐 10년 일수도. 

     

    잠시, 봄이 속마음을 들어보자: 

     

    '맞아요! 내가 안방에서 드럼을 치며 신나게 놀고 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끌고 왔잖아요. 여권이 다 뭡니까? 음식인가요? 장난감인가요? 아니라면서요. 난 몰라욧! 그냥 놀고 싶을 뿐.'

     

    결국, 우린 봄이 사진을 수십 장 찍어대다가, 아주 완벽하진 않지만 여권은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사진을 한 장 얻었다. 그래, 불가능한 목표에 도전했는데, 한 장이 어디냐. 완전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 한 장을 허락해 준 봄이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나: "봄아! 이제 우리 자자. 빨리 샤워하고 치카치카하자!"

    봄이: (요리조리 도망다니면서) "싫여! 더 놀고 싶어! 이히히히"

     

    에라이... 오늘도 일찍 잘 순 없겠군. 피곤해서 침대에 뻗어서 기절한 아내 발을 쓰다듬고, 봄이를 들쳐 안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안 벗겠다고, 더 놀겠다고 필사적으로 버티는 봄이를 달래서 속옷을 벗긴다. 물 온도를 적당하게 맞춰서 샤워 꼭지를 들이댄다. 봄이 머리를 뒤로 젖히고 꼼꼼하게 머리를 감긴다. 커다란 타월로 이 작은 몸을 감싸고 안방으로 나른다. 

     

    봄이: "아빠, 땅콩이 이야기 들려줘." (매일 이 이야기를 들어야만 잠에 드신다.)

    나: "음냐 음냐... 그래 이리 와. 아빠한테 안겨. 옛날에, 강아지 땅콩이가 살았어. 땅콩이는 엄마랑 함께 살았는데, 어느날 산택 다녀오다가 봄이랑 만났어."

    봄이: (마치 지금 땅콩이를 만난 듯) "어, 안녕? 나는 봄이야. 너는 이름이 뭐니?"

    나: "응, 나는 땅콩이야. 나는 엄마[인간 보호자]랑 함께 살아... 음냐 음냐"

     

    그리고 불이 꺼지고, 봄이는 새근새근 잠들었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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