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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효과(딸에게 배우는 사회사업)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5. 8. 28. 12:03728x90반응형

나: 봄아, 이제 쉬하고 세수하자.
봄: 싫어! (슬슬 피한다.)
나: 봄아~ 이리 와. 엄마 가야 해. 빨리 쉬하고 세수 해야지.
봄: 싫다니깐! (본격적으로 도망간다.)
아침 7시 30분. 우리 집도 바쁘게 돌아간다. 아내는 부지런히 아침밥을 준비해 놓고, 먼저 씻은 후에 안방에서 화장한다. 나는 아내 호출을 받고 거실로 나와서, 아직 잠이 덜 깬 봄이에게 '다음 단계 행동'를 권유해야 한다. 봄이는 눈치가 빨라서 벌써 아빠를 피해서 거실 커튼 뒤로 숨었다. '빨리빨리 움직여야 해.' 마음이 조급해진다.
목소리를 낮게 깔고 '쉬하고 씻어야 해.' 라고 말해 보지만, 봄이는 아예 귀가 없는 듯 들은 척도 안 한다. 어떻게 해야 할꼬. 생각해야 하는데 내 몸이 먼저 움직인다. 봄이 양쪽 겨드랑이를 판 후에 들어 올린다. 그리고 버둥대는 아이를 그대로 화장실로 옮긴다. 원래는 신발을 신기는데, 지금은 그냥 맨발로 들어간다. 아이 변기에 봄이를 억지로 앉힌 후 반바지와 팬티를 내린다. 어깨를 지그시 눌러 변기에 앉힌다.
성공...(?)은 개뿔! 봄이는 '으앙~ 싫어, 싫단 말이야!' 울먹이며 일어나 버린다. 그리고 쪼르르 달려 나와 다시 커텐 뒤로 몸을 숨긴다. '아잇, 이 짜식이?' 혀를 끌끌 차며 봄이에게 다가선다. 봄이는 이 다음에 어떤 일이 생길지 너무 잘 알아서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서서 강력하게 진지를 구축한다. 흠...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억지로 끌어낼 수는 없겠다.
문득, 꽃게 장난감(?)이 떠올랐다. 밀가루 반죽에 찍어서 쿠키를 굽는 틀! 어젯밤에 봄이가 까르르 웃으며 신나게 가지고 놀았는데. 근데, 열심히 눈알을 굴리며 찾아 봐도 없다. 다른 녀석들은 다 보이는데 꽃게만 안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손에 잡히는 코끼리를 들고 꼬셔 본다.

나: 봄아, 코끼리야 코끼리. 히이이잉, 코끼리가 쉬하고 씻으려는데, 봄이한테 도와 달래.
봄이: (쳐다도 안 보면서) 나, 코끼리 싫어!
나: 그래? 그러면 나비는 어때?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봄이: (갑자기 아빠를 올려다 보면서) 나비? 나비가 아빠한테 뭐라고 그랬어?
나: (반색하면서) 응, 나비가 봄이한테 도와 달래. 쉬하고 세수하고 싶대.
봄이: 정말? 나비는 좋아.
나: 그렇지? 봄이 나비 좋아하지? 우리, 화장실에 가서 나비가 쉬하고 세수할 때 도와 줄까?
봄이: 좋아, 가자!
아싸, 역시 (봄이가 좋아하는) 나비를 활용했더니 통했다. 나는 얼른 봄이에게 신발을 신기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먼저 쉬부터. 엄마와 아빠가 쓰는 큰 변기 옆에 놓아 둔 작은 변기에 봄이를 앉혔다. 나비가 변기 위를 팔랑대며 나는 흉내를 내면서 슬슬 꼬셨더니 순순히 따른다. 봄이는 편안하게 쉬하고, 어깨를 부르르 떨고, 팬티와 바지를 추켜 올린다.
나: (나비를 흉내내며) 우와! 봄아, 고마워. 네 덕분에 편안하게 쉬했어. 우리 이젠, 거품 놀이 할까?
봄이: (신나서) 좋아! 우리 봄이 비누를 뿌리고 거품 놀이 하자.
나: 좋아. 거품나면 봄이가 나비 몸도 씻겨줘, 알았지?
봄이: 응, 내가 살살 씻겨 줄게. 그러면 재미있을 거야.


나는 얼른 세면대에 거품 비누를 뿌리고 물을 틀어서 거품을 만들었다. 뜨뜻한 물을 흩뿌리니 거품이 풍성하게 올라오면서 세면대를 가득 채운다. 언제나 재미있는 거품놀이! 봄이는 두 팔을 하얀 거품에 두 팔을 담그고 이리 저리 휘젓는다. 거품을 손에 담아서 팔에도 바르고, 나비에게도 발라 준다.

이제는 나비 차례. 나비한테도 거품을 꼼꼼하게 발라 달라고 봄이에게 요청하니, 진짜로 섬세하게 구석구석 비누 거품을 발라 준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슥삭슥삭 비벼 준다. 봄이는 여전히 매우 자기중심적이지만, 조금씩 타인에게 관심을 보인다. 특히, '언니'로 성장하고 싶어해서 봄이에게 뭔가를 제안할 때나, 봄이가 보인 잘못된 행동을 수정하고 싶을 때, 우리 부부는 약간 정색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봄이, 언니 아니야? 언니는 이렇게 해야 해.(혹은 그렇게 하면 안 돼.)" 효과는? 썩 좋다.


이젠 핸드 로션을 발라야 한다. 평소 같으면 싫다고 또 도망다녔을 텐데, 지금까지처럼 봄이에게 '나비를 도와 달라'고 부탁하니 일이 쉽게 풀린다. 우선 봄이 얼굴에 로션을 예쁘게 펴 바르고, 봄이 손에 나비를 쥐어 주면서 로션을 짜 주니 안쪽까지 섬세하게 발라 준다. (봄이는 아빠를 닮아서 손재주가 있고, 섬세하다.)
'아싸, 부드럽게 미션 성공!' 쾌재를 부르며 화장실 문을 걸어 나오는데, 문득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방금 상황을 정리해 보자. (나는 어떤 조건에 처했을까?)
(1) 나는 어린 아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고 유도해야 하는 아빠다.
(2) 봄이는 바람직한 규범을 익히고 습관으로 만들어야 하는 딸이다.
(3) 나는 봄이가 아침에 쉬하고 세수하면 좋겠지만, 봄이는 그냥 다 싫다.
(4) 나는 '특정 행동을 행하지 않고 싶어하는 딸'을 설득하고 협상해서 하게 만들어야 한다.
(5) 협상은 양쪽이 서로 원하는 바가 있고, 그 원하는 바가 서로 겹쳐져야만 성립한다.
(6) 나는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으려는 상대(딸)를 꼬셔 내야 한다. (대단히 불리하다.)
(7) 상대(딸)을 꼬시려면, '내가 원하는 바'가 '딸이 원하는 바'와 겹쳐진다고 말해야 한다.
자고로, 변화는 스스로 움직이는 자에게 나타난다. 아무리 겁을 주고 위협해도, 사람은 스스로,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바를 상대가 알아듣고 마음으로 수용해서 행하도록 만드는 일? 곰봄 따져 본다면, 본래 대단히 어렵고,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사회사업을 깊이 생각해 본다. 사회복지사는 늘 바쁘다. 왜? 일은 많고 시간은 없다. 사회복지사는 언제나 힘들다.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책임은 많이 져야 하지만 실질적 권한은 매우 적다. 이런 조건은 명백히, '(신자유주의적) 관리주의(managerialism)' 역사 때문에 생겼다. 1980년대에 영국(마가렛 대처)과 미국(로널드 레이건)에서 보수 정권이 들어선 이후, 복지국가 체계는 재편되었다. 이전에 비해서 국가 복지 총 비용은 줄어들었고, '세금이 들어가는 모든 일'에 책임성을 요구하면서 세세하게 따져 묻게 되었다. ('그대, 돈을 제대로 쓰고 있나요?')
그런데 사람을 돕는 일에서 '(경제학적) 효율성'을 제일 중요하게 따지게 되면, 어떻게 되나? '제대로 돈값한다'고 말해야 하므로, 확실하게 검증할 수 있는 '양적 기준'으로 모든 일을 평가하고 일하게 된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주관적으로 얼마나 만족스러워하느냐'가 아니라 '돕는 행동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효과를 나타냈느냐'로 평가하게 된다. 그래서 숫자('몇 명을 도왔냐?', '서비스 몇 건을 연결했냐?', '몇 번 상담했냐?' 등)가 대단히 중요해진다.
여기서, 핵심은 사회복지사가 '늘 숫자에 좇기면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빨리빨리, 많이많이 일을 처리해야 하므로, 모든 서비스는 표준화되고 모든 질문도 표준화된다. ('체크리스트'가 많이 쓰이게 된 배경.) 그러니 어떤 사람을 도우려면 뭔가 빨리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따위는 세세하게 알 필요가 없고, 그럴 여유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양적으로만 접근해서는 그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바쁜 엄마-아빠 아침 일정에 맞춰서, 빨리 쉬하고, 빨리 씻고, 빨리 발아야 하지만, '싫어!' 라고 외치며 커텐 뒤에 숨는 우리 딸, 봄이처럼.
빨리빨리 뭐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을 앞세운다면(시스템상 그럴 수밖에 없지만), 봄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바(아침 루틴 완수)와, 봄이가 원하는 바(재미) 사이에서 공통 주파수(재미있게 쉬하고, 씻고, 바른다)를 찾지 않는다면, 최소한도 이렇게 꼬시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어차피 봄이는 안 움직인다. 부족한 여유를 짜 내서라도, 조금은 느긋하게, 봄이가 좋아하는 바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렇게 상상해 보자. 그대는 기차를 타고 A도시로 가고 있다. 기차는 궤도 위에서만 달린다. 자동차처럼 자유롭게 달릴 수 없다. 그런데 B도시에 가고 싶다.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B도시로 향할 수 있도록 철로를 놓고 연결하든지, 아예 기차에서 내려서 자동차로 갈아타든지. 하지만 둘 다 불가능하다면? 특히, 애초에 기차에서 내릴 수 없다면? 금지되어 있다면? 어차피 B로는 갈 수 없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하다. 언젠가 B로 가는 선로를 놓겠다고 마음 먹되, 지금 당장은 기차 안에서 B도시 문화를 일부 재현하는 방법.
보통 사회복지사는, 일은 많고 시간은 없으니, 만나는 모든 사람을 질적으로 도울 순 없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도와야 하는데 기존에 사용하던 양적인 접근 방법으로는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질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빨리빨리 앞에서 이끌려고 하지 말고, 그 사람이 원하는 바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바와 그가 원하는 바를 겹쳐 보려고 애써야 한다. 이렇게 해도 움직일지 안 움직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이 방법이 현실적으로 어쨌든 그가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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