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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연구: 술술술 읽히도록 이야기 단락 쓰는 방법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6. 2. 2. 13:01728x90반응형

"일요일 오후, 한가롭다. 우리 가족은 일요일 오전에는 교회에 가고, 오후에는 편안하게 그냥 쉰다. 이때 나는 보통 늘어지게 자고 싶은데, 침대에 누울라치면 늘 딸과 갈등한다. 딸은 세상에서 낮잠을 가장 아깝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황금 같은 주말을 자느라 허비하다니! 아마도 딸은 엄마가 평일에는 내내 일하고, 주말에는 피곤하다며 틈만 나면 자려고 하니까 못마땅한가 보다. 그래서 난 늘 딸 몰래 낮잠을 시도한다. 이날도 방에 슬그머니 들어가 이불을 덮는 순간, “엄마, 또 자려고?” 딸 목소리가 내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이 글은, 내가 쓰지 않았다. 나에게 글쓰기를 배운 학생(사회복지사)께서 쓰셨다. 일상 생활 중에 겪으신 일을 글로 쓰시면서 내면을 성찰하셨는데, 이 도입 단락을 '끝내주게' 잘 쓰셔서 문장 단위로 조금 자세하게 해설해 보려고 한다.
먼저, 첫 문장부터: '일요일 오후, 한가롭다.'
문장을 아주 간단하게 쓰셨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누구나 한가로운 휴일 오후 장면을 자연스럽게 각자 머리 속으로 그려보리라. 나 같은 경우는, 아내가 주방에서 카레라이스를 달콤하게 끓이거나 된장국을 칼칼하게 끓이며 늦은 점심밥을 차리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딸내미가 난장판이 된 거실을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떠올리는 세세한 장면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여유롭고 나른하면서도 아쉽고 아까운 일요일 오후 정서는 거의 비슷하겠다.
어떤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배경과 인물부터 소개해야 한다. 이야기에는 결국 '주인공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되었는지'를 담아야 한다. 그러니 이 주인공이 누군지, 언제 어디에서 행동을 시작하는지부터 써야 한다. 그러니까 기능으로 말하자면, '일요일 오후, 한가롭다'는 '언제'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어디서'는? 생략할 수 있다.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에 그대라면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집에 있겠지.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자거나, 쇼파에 널부러져서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있겠지.
'한가롭다'는 사람이 눈앞에 펼쳐진 장소에 형성된 분위기를 보면서 쓰게 된다. 따라서 '한가롭다'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면서, 동시에 그가 해당 장소를 보고 판단한 결과를 표현하는 말이다. 그래서 '일요일 오후, 한가롭다' 이 문장에서 독자는 세 가지 정보를 동시에 얻는다. (1) 시간: 일요일 오후이니, 점심밥을 먹고 난 후 특별히 할 일 없이 보내는 시간을 가리키겠군. (2) 장소: 통상적인 느낌이라서 아마도 집 안이겠군. (3) 글쓴이: 집안 풍경을 나른하게 지켜보면서 어딘가에서 앉거나 누워 있겠군.
두 번째 문장: '우리 가족은 일요일 오전에는 교회에 가고, 오후에는 편안하게 그냥 쉰다.' 이제, 조금 더 구체적인 정보가 나온다. 글쓴이는 1인 이상 가족에 속하고, 이 가족은 일요일 오전에 대체로 개신교 교회를 다닌다. 만약에, 이 문장을 먼저 썼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나쁘지 않았겠다. 하지만 덜 효과적이었으리라. 두 번째 문장은 단순히 구체적인 정보만 실어 나르니까. 그래서 아마도 글쓴이는 (최소한 무의식적으로) 첫 문장을 짧게, 감정과 분위기를 담아 써서, 독자를 부드럽게 끌어당기고 싶지 않았을까.
세 번째 문장: '이때 나는 보통 늘어지게 자고 싶은데, 침대에 누울라치면 늘 딸과 갈등한다.' 여기에서 새로운 정보가 등장했다. 글쓴이는 부모이고 '딸'을 뒀다. 침대에 누우려고 하면 부모와 갈등한다니, 딸이 그리 어리진 않겠다. 여기까지, 글쓴이는 딱 문장 세 개만 써서, 대단히 효율적으로, 시간 배경, 공간 배경, 주인공을 소개했다. 보통,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독자를 새로운 세상으로 끌어 당기는데, 나를 포함하는 독자는 글쓴이 안내를 받아서 아주 부드럽게 집 안까지 들어섰다. (누구나 따라하면 좋을 기술!)
네 번째 문장: '딸은 세상에서 낮잠을 가장 아깝다고 생각한다.' 글쓴이와 딸이 왜 갈등하는지가 나온다. 아마도, 딸은 어려서 에너지가 많겠지. '노느라 바쁜데 왜 자요?' 이렇게 생각할까. '세상에서 가장 아깝다' 최상급 표현을 써서 강조했으니,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리라. 이야기는 아무리 사소해도 갈등이 있어야 재미있다. 어떤 일이 이야기가 되려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이 뭔가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추구하는 상대가 나타나면 갈등이 생기고 이야기가 이야기다워진다. 물론, 여기 소개된 가족 갈등은 귀엽다.
다섯 번째 문장: '더군다나 황금 같은 주말을 자느라 허비하다니!' 앞 문장을 읽으면서, 딸에게 에너지가 많겠다고 예상했는데, 딱 맞췄다. 주말이 '황금 같이 (귀하)'단다. 그러니 '허비(허망하게 사용)하지 말'란다. 확실히, 딸은 부모인 글쓴이와 뭔가 많이 활동하고 싶어한다. 이 문장은 앞 문장과 아주 잘 붙는다. 앞 문장은 딸이 품은 '생각'을 언급했다. 생각은 추상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문장은 마치 딸이 입을 벌려서 표현한 말 같다. (글쓴이가 휴일 오후에 자면, 아마도 딸이 딱 이렇게 표현했겠지.)
여섯 번째 문장: '아마도 딸은 엄마가 평일에는 내내 일하고, 주말에는 피곤하다며 틈만 나면 자려고 하니까 못마땅한가 보다.' 더, 더, 더 세부적인 정보가 나왔다. 글쓴이는 엄마다. 그리고 전업 주부가 아니라 '일하는 엄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회사원? 아마도. 일하는 엄마는 늘 두 마리 토끼(일과 육아/가정)를 잡느라 힘들다. 언제나 피곤하다. 그러니 주말이 오면 피곤하겠지. 당연히 틈만 나면 쓰러지겠지. 딸은, 아직 어리다. 엄마와 함께 놀고 싶어하니까. (그러니 어쩌면, 엄마가 행복해야 할 수도?)
일곱 번째 문장: '그래서 난 늘 딸 몰래 낮잠을 시도한다.' 글쓴이는 독자를 슬며시 웃긴다. 그리고 동시에 울린다. 그대가 일하는 엄마라면, 주말에 딸 몰래 낮잠을 시도하는 이 엄마 행동이 정서적으로 너무나도 이해되겠지. 딸과 놀 시간이 주말 밖에 없는데도, 그래서 한편으론 놀아주고 싶지만, 몸이 피곤하니 어쩔 수 없이 틈만 나면 자려고 시도하는 엄마 마음. 그래, '웃프다'고 표현해야 맞다. 이 문장에서 '그래서'를 썼는데 적절하다. '그래서'는 뭔가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때 쓴다. 이야기를 앞으로 움직인다. (아마도 갈등이 커지겠지.)
여덟 번째 문장: '이날도 방에 슬그머니 들어가 이불을 덮는 순간, “엄마, 또 자려고?” 딸 목소리가 내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독자는 한가로운 가족 풍경으로 초대받았다가 글쓴이의 딸이 방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미는 방안까지 쑥 들어왔다. 글쓴이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독자가 상황과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정보를 풀었다. 독자는 이 단락을 술술술 읽게 되는데, 세부 정보가 한 단위씩 순서대로 풀려나와서 그렇다. 이야기를 딱 알맞게 풀어내는 글쓴이 솜씨가 대단하다. 무엇보다 흐름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서 대단하다.
문장 별로 분석했으니, 이제는 차원을 높여서 단락 단위에서 분석해 보자. 이 단락은 세 덩어리로 나눌 수 있다. ① 사실: 내가 휴일 낮에 쉬려고 자면 딸과 갈등한다. ② 이유: 딸은 일하는 엄마와 주말에라도 많이 놀고 싶다. ③ 결과: 그래서 딸은 오늘도 자려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글쓴이는 본인이 겪은 사건을 이야기로 재현하면서, '사실 - 이유 - 결과'로 정리했다. 이야기 뼈대는 결국 '인과 관계'다. '언제, 어디서, 누가'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어떻게'로 이어지지만, 끝에는 '왜?'가 나와야 한다. 이 단락에서도 '왜'가 가장 중요하다.
이 글을 평가하면서 한 마디로 '술술술 넘어간다'라고 썼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글쓴이가 두 가지 글 요소를 잘 섞었다. 첫째, 내용이 추상적으로 시작해서 구체적으로 끝난다. 둘째, 이야기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왜?'를 쉽고 분명하게 썼다. 특히, 두 번째 구조 요소가 자연스럽게 흐른다. 이야기를 쓸 때 무조건 시간 순서대로 내용을 배열하면 지루해진다. 내용과 내용을 '왜?'로 잘 연결해야 한다. 독자가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래서 그렇게 되었구나'를 정서적으로 자연스럽게 납득해야 한다. 흐름을 직관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써야 한다.
(나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를 자주 언급한다.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는 무조건 화려하지 않다. 다만, 모든 인물, 사물이 '딱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 마음 편히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감독 손이 스스르 나와서 관객 손을 잡고 스크린 안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그만큼 부드럽다. 모든 등장 인물이 움직이는 이유가 명확하다. 인지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딱 보면 바로 이해한다. 이 글이 딱 그렇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렇게만 쓰면 어떤 내용을 써도 안심할 수 있다.
2026년 2월 2일
새벽에 이재원 記.
<권선미 사회복지사 피드백>
"여덟 문장, 한 단락 글을 이렇게 분석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그냥 몇 장면을 선택해서 글을 썼는데, 뒷걸음질 치다 집 잡은 꼴 같아요. 하하. 역시 '술술술 잘 읽히게' 글을 쓰려면 작은 '점'을 잘 선택해야 해요. 피드백 주신 글 읽으면서 다시금 깨닫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재원 선생 재피드백>
늘 말씀 드리지만, 본인 마음 속에 글쓰기 엔진이 없다면 절대로 잘 쓸 수 없어요. 그러니까 권선미 선생님께서 그동안 살아 오시면서 글을 읽고 쓰시면서 쌓으신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표현되었다고 보셔야 해요. 다만, 앞으로는 '눈에 안 보이는 엔진'을 눈에 보이도록 정리하셔야 합니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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